최근 미국 부채 눈덩이… 사람 일 알 수 없어 세계 중앙은행의 금사재기 촉발
미국이 빚더미에 앉았다. 그래서 반세기 전 미국이 디폴트를 선언했던 시절의 얘기가 많이 나온다. 1971년 '닉슨쇼크'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 '쇼크'가 무엇인지 아는 이가 많다. 하지만 그 이후는 모른다. 닉슨쇼크 이후 미국과 닉슨, 그리고 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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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빚쟁이 나라다. 국가 부채 규모가 2025년 11월 기준 38조 달러로 GDP 대비 130%에 이른다.
연간 갚아야 할 이자만 1조 달러가 넘는다. 2025년 기준으로 보면 예산이 7조3000억 달러니까 예산의 약 14%를 이자로 내야 한다. 증가 속도 또한 무섭다. 2024년과 비교했을 때 부채가 2조1800억 달러 늘어났다.
세상이 세계 최강국 미국의 디폴트를 우려하는 것도 납득이 된다. 물론 그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법이다. 불안 심리로 개인이나 기업, 나아가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경쟁적으로 금을 사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금값이 파죽지세로 오른 배경에도 미국의 국가 부채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1971년 '닉슨쇼크'에 관심을 두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초강대국 미국이 국가 부채로 디폴트를 선언한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시 "달러 35달러에 금 1온스를 바꿔 주겠다"는 '금태환'을 일방적으로 정지시켜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이로써 미국은 1944년 미국 주도로 구축된 국제 통화질서인 '브레튼우즈 체제'를 스스로 깬 것이다.
■ 디폴트 선언한 미국, 돈도 국채도 못 찍는다!
닉슨쇼크와 관련해 대중이 아는 것은 보통 여기까지다. 닉슨쇼크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국가 부채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른 2025년, 우리는 닉슨쇼크의 원인보다는 결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유야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디폴트의 우려를 낳은 '원인'은 '과도한 빚'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것은 그 '다음'에 있다.
우선 봐야 할 것은 채권자-채무자 관계다. 보통은 채권자가 힘이 세다. 채무자에게 "돈 내놔"라며 다그칠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채무자가 힘이 더 셀 때도 있다. 그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닉슨쇼크 당시 미국과 다른 채권국 사이 관계가 그랬다. 모두 알다시피 그때도 지금도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다. "나 돈 못 줘, 배 째" 하면 힘없는 채무국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내 돈 내놔"라며 다그칠 수도 없고 총칼 들이밀며 두드려 팰 수도 없다. 오히려 힘센 채무국이 큰소리칠 수도 있다. 채권국에 거꾸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닉슨쇼크 당시 미국이 그랬다. 그때 미국은 '돈 가뭄'에 시달렸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돈을 너무 많이 풀었다는 것이다.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었고, 결국 디폴트를 선언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는 새 국채 발행도, 돈을 더 찍어내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둘째, 무역수지가 나빠지고 있었다. 1970년까지는, 규모가 급속도로 줄어들기는 했어도, 그럭저럭 흑자를 유지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1971년은 불안했다. 특히 그해 4월, 큰 폭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며 1971년은 연간으로 전후 처음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닉슨에게는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다음 해인 1972년,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것이다. 재선을 노리는 그에게 경제 문제는 결정적이었다. 만일 임기 중 기축통화국으로서의 패권을 잃거나, 전후 처음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한다면, 대통령으로서, 그 자체로 치욕일 뿐 아니라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게 뻔했다.
닉슨에게는 위기였다. 자칫하면 달러패권을 잃고 전후 첫 무역적자를 기록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얻을 수도 있었다. 선거에서 질 수도 있었다. 그는 뭔가 해야 했다. 비록 디폴트를 선언하기는 했어도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힘'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군사적ㆍ경제적 최강국이었다. 전후 재건을 이끌고 자유 진영 전체를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실제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공산주의와의 전쟁으로 미국은 엄청난 돈을 찍고 결국 위기를 맞았던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당시 미국과 닉슨은 무엇을 원했을까? 다음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비록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는 못해도 여전히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어 했으며, 둘째, 달러 가치를 떨어뜨려 미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무역수지를 흑자로 돌리고 싶어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닉슨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강한 미국'을 앞세우는 동시에 고물가ㆍ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 경제를 되살리고, 이를 통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빚도 못 갚고 약속도 못 지킨 미국이었다. 과연 이 같은 중차대한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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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 ❙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 ❙ 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 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식민과 제국의 길』『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