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1 18:15 (월)
[이만훈의 세상만사] ㉗ 대변의 부활
[이만훈의 세상만사] ㉗ 대변의 부활
  • 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 webmaster@econotelling.com
  • 승인 2025.11.26 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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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먹이도 100% 소화되지 않아…"장수비결? 잘 먹고, 잘 싸야"
장 건강위해 한동안 항생제 쓴적이 없는 사람의 대변 이식술 나와
먹는 즐거움과 배설의 즐거움은 생명의 본능이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물은 먹이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한다. 생명의 원천은 먹이다. 에너지는 먹이를 소화해 얻는다. 그런데 어떤 먹이도 100% 소화되지 않는다.

찌꺼기가 남게 마련이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선 새 먹이를 먹어야 하니 앞서 소화과정에서 만들어진 찌꺼기를 반드시 밖으로 배출해야 한다. 이 순환이 잘 이뤄져야 생명활동이 활발하고 그 생명체가 건강하다.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싸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까닭이다. 먹는 즐거움과 배설의 즐거움은 생명의 본능이다. 먹는 것과 싸는 것이 괴롭고 힘들면 사는 것 자체가 괴롭고 힘들 테니까 원활한 생명활동을 위해 기본적이고 태생적으로 갖춰놓은 장치가 즐거움이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3대 쾌락 가운데 두 가지가 식도락과 배설의 기쁨이다. 연세가 100살이신 우리 엄니께서 지금도 늘 말씀하신다.

"장수비결?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게 제일이여!"

#인간에게 배설의 쾌락을 제공하면서 세상에 나오는 게 바로 '똥'이다. 우리가 먹은 음식이 몸 안을 돌며 제가 할 도리를 다하고 마지막 '똥구멍'을 통과하며 '셔언~한' 기쁨마저 주면서 짠하고 나타난 존재이니 얼마나 갸륵하고 고마운 '물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에서 변신하는 과정에서 얻은 냄새 때문에 똥은 가장 '더러운 그 무엇'의 대명사처럼 취급받아 왔다. 제 몸을 이롭게 하고 제 몸에서 나와 제 몸과 가장 익숙하고도 가까운 데도 가장 께름칙하고, 그래서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 이 돼버린 똥-. 방송에서 출연자가 똥을 "똥"이라고 말했다가 프로그램이 심의에서 징계를 받고, 신문 등 활자 언론에서조차 아예 똥이란 단어 자체를 금기시 해왔고 지금도 상황은 거의 마찬가지로 고금동(古今同)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똥이 어린 아기의 정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의학적으로도 똥 이식(移植)을 통해 병을 치료하는 등 똥의 가치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면서 방송에서도 이름을 되찾아 가는 등 '부활(復活)'하고 있다. 기록상 '똥'이란 말이 가장 이르게 확인되는 게 1459년 발간된 《월인석보(月印釋譜)》에서였으니 실상은 그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쓰여 온 순수한 우리말임에 틀림없을 텐데….

#똥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주제이기도 하다. 쾌변의 욕구는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처음으로 경험하는 원초적 욕구인데 특히 대변은 스스로 처리하기까지 부모의 뒤처리가 필요하여 아이들에게는 삶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이기 때문인 듯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유아는 성격발달의 두 번째 단계인 '항문기'를 겪는다. 이 시기 유아는 배설기관에 의한 쾌감에 경도된 채 배설과정에 독특한 관심을 품는다. 2009년 방영된 인기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정해리가 "빵꾸똥꾸야!"를 외치고 다닌 것도 어린 친구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 기간 부모의 배변훈련에 대한 유아 반응은 이후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항문기에 고착하면 고집불통, 구두쇠, 수집벽 등이 될 수 있다.

한편 아이들이 부모에게 똥 얘기를 하면 부모가 질겁해하니 재미있어 한다는 말도 있다.

하여튼 어린이들에게 똥은 그 자체로 재미다. 그 이상 재미있는 말이 없어 이제 갓 말 배우는 아이들도 '똥!'이라고만 하면 자지러진다. 동화책, 그림책 이름도 그래서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베르터 홀츠바르크),《강아지똥》(권정생) 등 똥이 많이 들어간다. 서점의 어린이 동화 코너에는 똥을 주제로 삼은 동화가 한 가득이다. 베스트셀러 동화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경우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머리에 똥을 단 두더지 모양의 인형을 함께 주는 한정판이 출시됐고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이런 흐름 속에 똥을 주제로 한 각종 전시회도 꾸준히 열려 성황을 이루고 있다. 2014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어린이 박물관 특별 전시로 마련된 '똥 나와라 똥똥!'전시회가 똥의 생성과정과 종류, 다양한 동물 똥 속에 숨은 비밀, 똥에 담긴 지혜와 가치, 똥의 순환과 생태, 똥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로 꾸며져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을 시작으로 세계 최초의 화장실 박물관인 수원 해우재(解憂齋)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 똥 展'(2017년),세종시립민속박물관의 '똥똥똥, 실례합니다'(2024년), 전북도립미술관의 '아이스크림똥전시회'(2025년) 등등. 이에 앞서 2001년 과천 서울랜드에서 열린 '똥 전시회'에서는 사자, 코끼리, 반달곰, 기린, 하마 등 26종의 동물과 7종의 조류 똥을 말리고 굳혀 악취를 제거해 동물 모형과 함께 관람시켰다. 이 같은 '똥바람'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젊은 층에도 확산돼 똥을 아예 액세서리로 삼기도 하는데 아기·동물·만화주인공 등의 엉덩이를 누르면 차진 똥이 나오는 열쇠고리가 있는 가하면, 색깔·모양·크기에 이르기까지 냄새만 빼고는 실물과 빼닮은 똥도 포장돼 팔리고 있을 정도다.또 똥 모양에 팥 앙금을 넣어 만든 '똥빵'도 BBC전파를 타고, 똥 맛 카레 vs 카레 맛 똥 중 선택을 묻는 철학적(?) 게임까지 유행한다.

뿐만 아니라 똥으로 가득 찬(?) 유머도 넘쳐난다. 똥 나라 아이들의 최고 놀이는 '똥딱지', 똥나라 무덤은 화장실, 똥 나라 개 짖는 소리는 '똥구∼멍', 똥 나라 쥐는 '뿌지쥐', 똥 나라 왕비는 '변비', 똥 나라 새는 '똥냄새', 똥 나라 뱀은 '설사', 똥 나라 냇물은 '똥구린내', 이 냇물이 모여 이룬 강은 '요강', 방귀를 세 글자로 말하면 '똥트림', 똥 나라의 사형제도는 '똥침' 등등. 하나 더. 사랑과 똥침의 공통점은? '깊을수록 아프고, 예고 없이 아파오는데 아픔이 오래간다. 구경하는 사람은 아플수록 재밌지만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참, 똥의 'ㄸ'만 나와도 헛구역질을 해대며 거악들을 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똥 유머란 금기를 깨는 짜릿함, 인간 발달의 자연스러운 부분, 그리고 사회문화적 변화를 포용하는 다채로운 요소들로 구성돼 있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고 있다. 똥 유머는 단순히 웃어서 넘길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반영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주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근래에 똥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 중의 하나가 악성 장(腸)질환을 잡기 위해 등장한 '똥이식'치료다. 항생제 오·남용으로 기존 항생제에 끄떡하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했는데 그 중의 하나인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Clostridiodes difficile)' 즉 약칭으로 '시디프'로 이를 정상인의 똥을 장내 이식해 없애는 치료법이다. 쉽게 말하면 과다한 항생제 사용으로 인해 정상장내세균이 파괴된 사람들에게 정상적인 타인의 대변을 환자의 장에 이식하면 타인의 대변에 들어 있는 정상장내세균들이 환자의 장에서 번식해 정상장내세균의 균형을 회복하게 하는 원리다. 정식 명칭은 '분변 미생물군 이식'이다. 시디프 세균은 '위막성대장염 (pseudomembraneous colitis)'의 주범으로 장내에 자리를 잡고 독소를 분비해 고열, 설사, 복통 등을 유발하는데 특히 조혈모세포이식 등 고위험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를 괴롭히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정상 똥'이란 정상적인 배변이 이루어지고 일정 기간 동안 항생제를 쓴 적이 없는 사람의 똥으로 현실적으로는 그때그때 쉽게 구하기 어려워 요즘은 아예 그런 똥을 구한 뒤 이를 종자삼아 키운다. 이렇게 얻은 똥을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치료제라고 하는데 2022년 '레비요타'라는 치료제가 최초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고, 얼마 전에는 아예 캡슐에 넣어 먹는 약도 개발됐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단순히 정상대변을 만들고 대장을 지키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토피, 천식 등의 자가면역성 질환과 항암면역치료법의 반응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어 주목된다. 장내 세균이 장내의 상피세포 및 면역세포와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해 인체의 면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장내 세균이 분비하는 대사물질이 자폐스펙트럼, 우울증, 파킨슨 등의 뇌신경 질환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2016년 보건복지부가 똥 이식을 '신의료기술'로 인정했고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적절한 환자에게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한편 이식할 대변을 전문적으로 선별하여 제공하는 '똥은행'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 은행은 2012년 미국 MIT에 처음 설립된 이후 서구 많은 나라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가장 큰 똥은행은 2013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된 '오픈바이옴(OpenBiome)'이다. 이 비영리기관은 미국 내 1000개 이상의 병원에 이식용 똥을 제공한다. 이후 2016년부터 캐나다와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에도 똥은행이 생겼고, 국내에서는 2016년 10월 바이오뱅크힐링(*분당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동호 교수가 이끌고 있음)이 최초로 똥은행을 설립했으며, 2017년 김석진좋은균연구소가 '골드바이옴(GoldBiome)'을 열었다.

대변 이식술이 아직은 시디프 감염증에 한해 시행되고 있지만, 앞으로 다른 장 질환이나 전신 질환에까지 적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 분당병원(이동호 교수)에 따르면 임상 연구에서는 궤양성대장염, 과민성장증후군 등 치료에 쓰지만 해외에선 자폐증, 당뇨병, 비만, 치매, 파킨슨병 등 다양한 질환 치료를 위해 연구 중이라는 것이다. 최근엔 암 환자 중 면역치료제가 듣지 않는 환자나, 코로나19 등 감염병 치료까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란 임상 연구들이 나오면서 더욱 기대를 모은다. 심지어 똥이식은 장수 관련 연구에도 동원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노화생물학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Biology of Aging) 연구팀은 최근 생애 주기가 짧고 노화과정이 인간과 비슷한 터콰이즈 킬리피시(African Turquoise Killifish, Nothobranchius furzeri)를 이용해, 나이든 물고기의 장에 어린 물고기의 변을 이식했더니 수명이 늘어나고 노화가 지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똥을 이용한 치료의 역사는 오래됐다. 4세기 중국 동진의 '신선전'의 저자 갈홍(葛洪·283~343)은 식중독과 심한 설사를 앓고 있던 환자에게 인간 똥물(黃湯) 먹여 낫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16세기 명나라 때의 의사로 '본초강목'의 저자인 이시진(李時珍·)도 발효된 똥물, 시선한 똥물, 마른 똥, 아기똥 등을 심한 설사, 열, 복통, 구토, 변비 등의 증상에 사용했다고 한다. 17세기 이탈리아 아콰펜덴테 지역의 히에로니무스 파브리치우스(Hieronymus Fabricius d'Aquapendente)는 동물의 분변을 질병이 있는 동물에게 먹이는 치료를 시행하기도 했다. 유목생활을 하는 아랍의 베두인사람들은 설사병을 치료하기 위해 낙타의 똥을 먹었다. 이질은 2차 대전 중 북아프리카 일부를 점령한 독일군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독일 군의관은 현지의 베두인들의 이질 비방을 알아낸 뒤 독일군에게도 신선한 낙타 똥을 먹도록 해 이질을 예방 및 치료할 수 있게 됐다. 낙타 똥에 있는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라는 유익 세균 덕분으로 이 균은 항생제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까지 위장관 질환과 비뇨기계 질환을 치료하는 면역조절제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됐다. 또 바시트라신(bacitracin)이라는 항생제가 이 균주로부터 분리돼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독수리는 썩은 고기를 먹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주는데, 썩은 고기를 먹고도 멀쩡한 독수리는 자신의 똥을 발에 묻혀 똥 속의 박테리아로 식사 중에 옮길 수 있는 유해세균을 방어하기 때문이다.

#흔히 무식하고 경우가 없이 막 돼먹은 작자를 두고 '뱃속에 똥만 든 놈'이라고 흉본다. 사실 먹은 음식물 찌꺼기가 똥구멍을 빠져나와야 똥이지 뱃속에 있을 때는 '아직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미제품(未製品)'일뿐이니 틀린 말이다. 어쨌거나, 한자로 사람의 똥을 '인중황(人中黃)'이라고 하는 걸 보면 과히 잘못된 것도 아닌 듯싶다. 그런데 점잔을 빼느라 이런 표현을 하는 게 아니고 한방에서 약으로 쓸 데의 이름인 만큼 그냥 맨 똥이 아닌, 법제(法製)된 똥을 가리킨다. 재래식 똥통에 껍질을 벗긴 대나무를 살짝 잠기게 놔두고 시간이 지난 후 대나무 안으로 스며든 맑은 똥물을 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또는 푸른 껍질을 벗긴 대나무 두 마디 가운데 윗마디에 감초(甘草)를 넣어 봉하고, 아랫마디만 똥통에 꽂아 두어 한 달 뒤 감초만 꺼내어 바싹 말려 쓴다. 《동의보감》《본초강목》등 대부분의 한의서에는 인중황은 성질이 차가워 유행성 열병, 열 때문에 생기는 모든 독과 부스럼, 균독 등을 치료하고, 어혈을 풀어 피를 맑게 하는데 쓴다고 나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554년 중종(中宗)이 57세 때 열병이 심해 청심원(淸心元), 소시호탕(小柴胡湯: 병증이 신체의 상하, 내외의 중간 부위에 처하여 가슴이 가득 충만된 듯 답답한 느낌이 있거나 모든 열성(熱性)병에서 춥고 더움이 왕래하는 증상, 식욕부진, 구토 등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는 처방)과 함께 들인 것으로 기록된 야인건수(野人乾水)가 바로 인중황이다. 야인건수는 감초를 넣은 대나무를 똥둑간에 박아 넣어 대변이 스며들게 한 뒤 말려서 만든 것이다. 전염병으로 열이 심할 때 먹으면 관속에 든 사람도 살아나온다고 해서 '파관탕(破棺湯)'이라고도 불렀다. 중종은 이 파관탕을 8번이나 복용했다. "제비 몰러 나가다~"로 잘 알려진 판소리 명창 박동진(朴東鎭·1916~2003)은 젊은 시절 목소리를 잃게 되자 산속에서 피를 토하고 온몸이 부어 사람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연습을 했는데 이 후유증을 똥물로 다스렸고,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잘 불러 유명한 일제강점기 때 판소리 명창 임방울(林芳蔚·1904~61)도 수련하면서 역시 똥물을 먹고 목이 트였다고 한다. 보릿고개가 심하던 시절 어린 것들이 허기를 메꾸려 진달래꽃을 많이 따먹곤 했는데 이따금 토사곽란(吐瀉癨亂)을 일으켜 떼굴떼굴 구르는 아이들한테 먹인 것도 똥물이었다. 우리 동네는 대나무가 나지 않는 곳이라 빈 소주대병의 주둥이를 솜으로 막은 뒤 오래된 똥통에 박아 '먈간 국물'을 얻었고, 이를 '똥술'이라고 했다. 시골에선 똥술이 귀한 비상약이라 1970년대만 해도 허리나 발목을 삐끗하면 민간요법으로 쓰이곤 했다. 이와 함께 사람 똥과 쌀겨, 감초가루 등을 넣어 만든 탕약인 '금즙(金汁)'은 감기와 만성기침 등의 치료제였다고 한다. 또 말린 사람 똥은 인시(人屎)라 하여 인중황과 같이 열독 등에 효과가 있다고도 했다. 일본 헤이안(平安)시대에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인《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에는 황룡탕(黃龍湯)이 나오는데 사람 똥을 건조시켜 분말로 만들어 달여 먹는 약이다. 교토대학귀중자료디지털아카이브에 보면 구운 똥(焼人糞), 남성의 똥끝 모음(男子屎尖) 등도 약재로 나온다. 한편 똥을 법제한 것이 인중황이라면 소변에서 얻은 것은 인중백(人中白)이라고 했는데 요강이나 오줌변소의 바닥에 가라 앉아 붙어있는 하얀 찌꺼기를 말한다. 한때 예비군 훈련장의 소변기마다 통을 달아놓고 수집했던 하얀 찌꺼기가 바로 그것이다. 하여튼 인중백은 열을 내리고, 출혈을 멈추게 하며, 상처를 아물게 하고 기침도 줄여주는 가하면 찔끔대는 소변도 잘 나오게 해주는 것으로 통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자고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종 포유류와 조류 등 야생동물의 똥도 약으로 활용됐다. 기원전 18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는 악어똥을 꿀과 탄산나트륨에 섞어 만든 고약을 여성의 성기 입구에 바르는 방법을 통해 피임을 했고, 영국에서는 치통 치료에 소똥을 사용했다. 또 프랑스에서 말똥을 강장제로, 박쥐똥은 진통제와 혈액순환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개똥 속담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다양하게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한의학자 허준(許浚·1539~1615)이 지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보면 개똥의 약효에 대해 '흰 개의 똥(白狗屎)은 살갗의 한 부분이 곪아 고름이 생기는 병인 종기를 치료하는데 효험이 있고, 체증이 오래되어 뱃속에 덩어리가 생기는 병인 적취(積聚·몸 안에 쌓인 기로 인하여 덩어리가 생겨서 아픈 병)를 치료하는 데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적고 있다. 이화여대 조미숙(趙美淑 ·64)교수의 논문 〈동의보감에 나타난 식재료와 이용방법〉의 탕액(湯液)편에 따르면《동의보감》에는 금부(禽部· 새와 관련한 내용)에 12가지 새똥, 수부(獸部· 포유류) 12가지 짐승 똥, 충부(蟲部· 곤충 등 벌레) 4가지 똥이 나온다. 우선 새똥은 가마우지 똥(鸕鶿屎 水老鴉屎 魚鷹屎 烏鬼屎 蜀水花), 붉은 수탉 똥(丹雄鷄糞), 흰 산비들기 똥(鵓鴿糞 野鴿糞), 흰 오리 똥(白鴨屎), 흰 비들기 똥(白鴿糞), 박쥐 똥(伏翼糞 夜明砂), 제비 똥(燕屎), 오골계 수탉 똥(烏雄鷄屎白), 오골계 암탉 똥(烏雌鷄糞), 제비 똥(越燕屎), 숫참새 똥(雄雀屎 靑丹 白丁香), 매 똥(鷹屎白) 등이다. 짐승 똥은 이리 똥(狼屎), 말 똥(馬屎), 숫집쥐 똥(牡鼠糞), 흰개 똥(白狗屎), 양 똥(羊屎), 당나귀 똥(驢屎), 쇠똥(牛糞), 살쾡이 똥(貍糞), 멧돼지 똥(野豬糞), 토끼 똥(兎屎 望月沙 玩月沙), 호랑이 똥(虎屎), 여우 똥(狐屎) 등이고, 곤충 및 벌레 똥으론 말똥구리똥(蜣螂屎), 지렁이 똥(蚯蚓糞 蚯蚓泥 地龍糞), 날다람쥐 똥(五靈脂), 누에 똥(蠶砂) 등 4가지가 나온다. (*이 가운데 박쥐가 새로, 날다람쥐가 곤충으로 분류된 것이 이채롭다.) 이밖에도 꾀꼬리똥(鶯糞)은 탁월한 미백(美白)효과(*중국 청나라 서태후(西太后가 새똥을 애용했고, 일본에서도 꾀꼬리 똥과 쌀겨를 섞은 화장품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뉴욕 센트럴파크 고급 스파에서는 '게이샤 페이셜'이라고 해서 새똥과 쌀겨 혼합물 마사지 상품이 있다!)가 있고, 장끼똥(雄野鷄屎)는 학질에, 두루미똥(鶴屎)는 악성 관절염에 각각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널리 쓰였다.

#똥은 그 주인의 건강을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특히 사람의 똥은 더할 나위없는 건강정보원(情報源)이어서 과거는 물론 오늘날에도 국가원수의 똥은 치열한 정보전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똥은 질병, 약물 복용, 식습관 같은 개인 건강의 비밀을 드러내는 핵심 단서이기 때문에 정보기관들은 국가 안보와 외교에 직결되는 지도자의 건강을 알아내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동원해 똥을 확보하려든다. 최근 중국에서 벌어진 김정은의 똥을 둘러싼 소동이 좋은 예다.

지난 9월 3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조어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직후 북한 수행원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흔적을 지우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이는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는 DNA 등 생체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날 러시아 언론인인 알렉산드르 유나셰프는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북·러 정상회담 종료 직후 북한 수행원들이 김 위원장이 앉았던 의자와 주변 실내 장식, 가구 등을 약 1분간 천으로 닦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올렸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사용한 컵 등도 치웠다. 이를 두고 미국 CNN방송은 "김 위원장의 DNA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회의실을 청소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출발해 전날 베이징까지 타고 온 특별열차에도 생체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전용 화장실이 설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김 위원장의 배설물을 통해 건강 상태를 파악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이 같은 시설을 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또 김 위원장이 호텔을 이용할 때는 식기류에서 DNA 정보가 담긴 체액 등을 제거한다고 한다. 닛케이는 "김 위원장은 평소 북한 내 군 시설이나 국영 공장 등을 시찰할 때도 차량 내 전용 화장실을 구비하고, 개인 욕실을 둔다"고 덧붙였다.

대규모 정상회의에서 개최국이 각국 정상들을 위해 전용 화장실을 마련하는 것은 단순한 편의를 위한 조치가 아니다. 이는 국제 의전과 보안 프로토콜의 핵심 요소다. 지도자의 건강 상태가 곧 정권의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상들이 공용 화장실을 이용할 경우 도청 장치 설치나 화학물질 노출 위험은 물론, 배설물을 통해 DNA나 건강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전용 화장실을 사용하면 배설물의 수거와 폐기를 경호팀이 직접 관리할 수 있어 타국 정보기관이 생체정보를 확보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소련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드 브레즈네프(Lonid Brezhnev· 1906~1982)가 국빈 방문으로 코펜하겐 당글레테르 호텔에 머물 때였다. 프랑스 대외정보국(SDECE)이 브레즈네프가 투숙한 방 바로 아래층 스위트룸을 빌린 뒤 천장을 은밀히 뚫고 변기 배수관을 분리해 그의 배설물을 채취했다. 확보된 시료는 곧바로 파리로 보내져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보드카 애호가로 알려진 브레즈네프가 심각한 간 손상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브레즈네프는 오래지 않아 건강 악화로 생을 마감했다. 이 기묘한 첩보 작전은 '프랑스의 제임스 본드'로 불린 대외정보국 국장 알렉산드르 드 마랑슈(Alexandre de Marenches·1921~1995)가 퇴임 후 직접 밝힌 일화로 1994년 4월 4일자 타임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시리아의 하페즈 아사드(Hafiz Asad·1930~2000) 대통령은 1999년 2월 후세인 요르단 국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암만을 방문했을 때 전용 변기를 보고 감탄했다. 그러나 그는 그 변기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와 요르단 정보기관이 협력해 특별히 제작한 장치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아사드가 화장실을 사용한 지 불과 몇 분 뒤 소변 샘플은 곧바로 이스라엘의 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모사드는 아사드가 과거 심장마비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당뇨와 암까지 앓고 있어 오래 살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 놀라운 작전은 2000년 1월 통신사 JTA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정확히 5개월 뒤 이스라엘의 협상파트너 아사드가 사망하면서 모사드의 분석은 놀라울 만큼 정확한 예측으로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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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 다니다 1982년 중앙일보에 신문기자로 입사했다. 주로 사회부,문화부에서 일했다. 법조기자로 5공 초 권력형 비리사건인 이철희ㆍ장영자 사건을 비롯,■영동개발진흥사건■명성사건■정래혁 부정축재사건 등 대형사건을, 사건기자로 ■대도 조세형 사건■'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유명한 탄주범 지강현사건■중공민항기사건 등을, 문화부에서는 주요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들을 시리즈로 소개했고 중앙청철거기사와 팔만대장경기사가 영어,불어,스페인어,일어,중국어 등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엔 초짜기자임에도 중앙일보의 간판 기획 '성씨의 고향'의 일원으로 참여하고,1990년대 초에는 국내 최초로 '토종을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종자전쟁에 대비를 촉구하는 기사를 1년간 연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토종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 대한상의를 비롯 다수의 기업의 초청으로 글쓰기 강의를 했으며 2014인천아시안게임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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