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인구 절반이 70세 이상의 고령층… '농촌 소멸' 시대 눈앞에 도래
'귀농'은 감소하는데 '귀촌' 증가 추세…농업외 소득 증진 방안 찾아야
들녘에 황금빛 벼이삭 물결이 일렁인다. 극한 폭염을 이겨낸 농산물을 수확하는 시기인데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해내기 버겁다. 때문에 가을이면 농촌마다 일손 구하느라 비상이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에 따르면 1980년 1082만명이던 농가인구는 지난해 말 200만4000명으로 급감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말 200만명 아래로 내려간다. 가구 수 기준으로는 이미 2023년(99만9000가구) 100만가구가 무너졌다. 지난해 말 97만4000가구로 줄었다.
게다가 농가인구의 절반 정도는 거주인구 상위 10% 읍·면에 모여 산다. 하위 10% 읍·면에는 농가인구의 1.6%만 거주할 뿐이다. 전국 1403곳 읍·면 가운데 거주인구 2000명 미만 읍·면이 400곳을 넘어섰다. 저출산과 고령화, 수도권 인구 집중이 초래한 '농촌 소멸'이 현실화했다. 또한 지역별 농가인구 불균형도 심각하다.
농가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등장한 걱정거리는 농사를 지을 인력 부족이다. 기계화율이 높은 논(벼)농사와 달리 고추·마늘·고구마 등 사람 손으로 작물을 수확해야 하는 밭농사는 더욱 그렇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계절근로(E8) 비자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초청해 농가에 인력을 공급하고 있다. E8 비자는 외국인 근로자가 농가와 계약해 농번기에 국내에 체류하며 일한 뒤 농한기에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제도다.
지난해 E8 비자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 근로자는 6만7778명. 정부는 농촌 현장의 요구를 수용해 올해부터 별도 연장 신청 없이 국내 체류기간을 최장 8개월로 늘렸다. E8 비자 대상자도 지난해보다 41.2% 많은 9만5700명을 배정했다.
하지만 E8 비자와 외국인 근로자를 늘리는 것만으로 농촌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 주로 동남아시아 출신인 외국인 근로자의 농기계 활용 등 작업 숙련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주체인 국내 농가인구의 고령화도 심각하다. 지난해 농가인구의 절반 이상(50.8%)이 70세 이상이다. 50세 미만은 16.3%에 불과했다. 농촌 소멸을 막거나 속도를 늦추려면 보다 젊은 내국인을 농촌에 유입시켜야 한다.
귀농·귀촌 인구 증대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때 연간 1만명 이상으로 관심의 대상이었던 귀농이 지난해 8243가구로 감소하는 등 시들해졌다. 생각한 만큼 농사일이 수월하지 않은 데다 농업소득이 시원찮기 때문이다.
지난해 농가 평균소득은 5060만원으로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6576만원보다 1516만원 적었다. 그나마 농업소득은 958만원에 불과했다. 숙박·음식점 등 관광·레저 소득이 2014만원으로 두 배 넘게 많았다.
그나마 다행은 최근 귀촌이 늘어나는 점이다. 지난해 농촌살이를 선택한 귀촌 가구는 31만8658가구, 42만2789명으로 각각 전년 대비 4.0%, 5.7% 증가했다. 같은 기간 귀농 인구가 20% 넘게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귀촌 인구 대부분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촌'에 살기 위해 귀촌을 선택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서 귀촌 선택 이유로 자연환경(19.3%)과 정서적으로 여유 있는 삶(19.0%)을 꼽았다. '농촌=농업'으로 여기지 않는 인식의 변화가 엿보인다.
물론 귀촌을 결심한 이들이 마주하는 난관이 적잖다. 당장 주거 문제가 넘어야 할 산이다. 이를 간파한 전남 강진군이 관내 빈집을 리모델링한 뒤 월 1만원만 받고 귀촌인에게 제공하는 '강진품애(愛)' 사업을 도입해 성과를 거뒀다. 이를 통해 지난 2년간 78가구 218명이 강진에 정착했다.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마을에선 갈수록 늘어나는 빈집이 애물단지다. 인구 3만여명인 강진군의 성공 사례는 빈집 문제로 골치를 앓는 농산어촌 지자체들이 모델로 삼을 만하다.
주거를 해결한 귀촌인들의 다음 고민은 직업 문제다. 농사만 지어선 수익이 적기 때문에 농촌생활을 망설인다. 이 문제도 고속철도와 재택근무, 온라인 상거래 활성화로 지역간 거리가 좁아지면서 한결 가벼워졌다. 인터넷·SNS 시대를 맞아 농촌에서도 생업을 유지하며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농촌 공동화를 막으려면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도 농촌에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생산성 향상 등으로 '농업'을 살리는 방안과 농업외소득 증진을 통해 '농촌'을 살리는 방안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 도시에 다양한 산업이 존재하는 것처럼 농촌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도 소득 창출이 가능해야 농촌경제도 지속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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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이코노텔링 논설고문■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사, 중앙일보 산업부장·경제부장, 아시아경제 논설실장 역임.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저서: <통계를 알면 2000년이 잡힌다>,<내가 세계 최고, 숫자로 보는 세계 여러나라>공저-<그래도 우리는 일본식으로 간다>,<What's Wrong, Korea?>,<대한민국 신산업지도>,<코리안 미러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