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어느 사서 (史書)에도 나오지 않아 나관중이 만든 ' 관우 신화 '일 뿐

중국 소설 중 우리나라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삼국지』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터다.
그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인물이 관우라는 사실도 부인할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원병으로 온 명나라 장수들의 영향으로 서울에도 그를 기리는 '동묘'가 있을 만큼 우리의 '관우 사랑'은 깊고도 넓다.
한데 사실과 비교해가며 『삼국지』에 다양하고도 흥미로운 이견을 제시하는, 『삼국지 바로 읽기』(김운회 지음, 삼인)를 본다면 '관우 신화'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우선 조조에 투항했던 관우가 온갖 회유책을 뿌리치고 유비의 가족을 호위해서 유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오관참장(五關斬將)이 허구임을 적시한다. 관우는 동령관, 낙양관, 기수관, 형양관, 활주관을 지나며 길을 막는 공수, 맹탄, 변희, 왕식, 진기를 단칼에 베고 유비를 찾아간다. 그야말로 관우의 뛰어난 무공, 둘도 없는 충성과 의리의 화신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일화다.
한데 이것 나관중이 지어낸 완전한 '소설'이란다. 소설에 따르면 관우 일행의 탈출로는 허창에서 원소 진영에 있다는 유비를 찾아 북쪽으로 450킬로미터 이상을 갔다가 유비가 떠났다는 이야기에 다시 여남을 향해 남쪽으로 300킬로미터 이상을 가는 희한한 코스다. 그래야 위에 적은 '오관'을 지난다. 그런데 당시는 조조군이 원소군과 관도대전이란 한판 승부를 벌이던 때였으니 관우는 전란 중에 두 형수를 마차에 모시고 전장의 한복판을 가로지른 셈이다. 이를 두고 '바로 읽기'의 지은이는 한국전쟁 중에 두 부인과 함께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대전으로 내려오는 격이라 꼬집는다.
실제 어느 사서(史書)에도 '오관참장'은 나오지 않으니 이는 나관중이 만든 '관우 신화'라 할 만하다. 게다가 김운회 교수는 조조가 관우를 회유하기 위해 갖은 환대를 했다는 이야기도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조조가 관우에게 내렸다는 편장군이란 벼슬이 실은 대장군에서 잡호장군까지 나뉜 장군 벼슬 중 마지막 7등급에 해당하는 잡호장군의 일종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현의 마궁수로 시작한 관우로서는 난생 처음 황제로부터 장군 관직을 받은 셈이었지만 『삼국지』가 묘사하듯 조조가 관우를 끌어들이려 안달복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지은이는 관우가 유비에게 돌아간 이유로, 관우가 40 안팎의 나이인 데다가 조조 진영엔 인재가 넘쳐났기에 출세엔 한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컸음을 든다. 나아가 관우의 귀환을 두고 중소기업 부사장(유비 진영 2인자)을 지내다 대기업 과장 대우(조조 진영)으로 가느냐로 고심한 결과와 같다고 하는 대목에 이르면 참으로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긴 한다.
이를 의식했는지 나관중이 관우를 신화하하는 바람에 '인간 관우'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없애버렸다고 단서를 달고 있지만 예술이 역사를 왜곡한 것이 어디 이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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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