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6 06:15 (화)
◇김수종의 취재여록 ㉖ 석유로 읽는 미국 역사 (5) 알래스카의 천연가스
◇김수종의 취재여록 ㉖ 석유로 읽는 미국 역사 (5) 알래스카의 천연가스
  • 이코노텔링 김수종 편집고문(전 한국일보 주필)
  • diamond1516@hanmail.net
  • 승인 2025.09.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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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자리서 트럼프의 공개적인 구매 촉구는 '도전이자 기회'
겨울에 영하50도 이하로 떨어지는 극한 환경에서 가스'채굴과 수송'難
1,200㎞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알래스카 남쪽 항구로 운반해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 에너지의 약점을 보완 할 LNG발전소 관심 증폭
알래스카의 천연가스는 한국에 힘겨운 도전이 될 수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알래스카 푸르도베이 유전을 취재할 당시, 석탄 광산도 찾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앵커리지에서 북쪽으로 400여 ㎞ 떨어진 산속에 위치한 알래스카 최대의 우시벨리(Usibelli) 탄광이었습니다. 알래스카 주립대학의 김춘근 교수가 "석유를 취재하려면 석탄 에너지도 함께 보는 게 어떻겠느냐"며 탄광 회사에 협조를 요청해주었습니다.

마침 내륙 도시 페어뱅크스에 취재 계획이 있어 비행기로 이동할 참이었는데, 김 교수의 주선으로 탄광 취재가 추가되어 자동차로 3일간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김 교수는 대학에서 자원학을 공부하는 김정화 씨에게 나와 동행할 것을 권했습니다. "알래스카에서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혼자 하는 건 피곤하고 위험하다"며 벗을 붙여준 것이었습니다. 김정화 씨 역시 연구에 도움이 된다며 흔쾌히 동행했습니다. 탄광은 페어뱅크스를 다녀오는 길에 들렀습니다.

▪ 7m두께 석탄층이 시루떡처럼

멀리 빙하가 걸린 높은 산이 보이고, 산봉우리들이 첩첩이 겹쳐 있는 골짜기를 한참 운전해 들어가자 포크레인처럼 생긴 거대한 장비가 언덕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우시벨리 탄광이었습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장비만 움직였고, 언덕 아래에는 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우시벨리 광산은 노천탄광(open-pit)이었습니다. 채탄 방식은 수백 미터 땅속으로 들어가 캐내는 한국 탄광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드래그라인'이라 불리는 거대한 장비가 100m가 넘는 긴 팔 끝의 굴삭기로 석탄을 집어 올려 트럭에 실으면, 곧 가득 찼습니다.

석탄층 두께는 7m에 달했습니다. 이를 다 파내면 10~20m의 암반층이 나오고, 그 밑에는 또 비슷한 두께의 석탄층이 나타났습니다. 마치 시루떡처럼 암반층과 석탄층이 번갈아 쌓인 지층이었습니다. 한국의 탄광에서는 두께 50㎝ 석탄층만 나와도 '대박'이라고 기뻐하던 시절이었으니, 한눈에 봐도 노천광은 '거저먹기' 같았습니다.

▪ 인상적인 자연 복원 프로젝트

나는 이 탄광에서 또 하나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회사 직원이 노천광 옆의 큰 동산을 가리키며, "환경복원 프로젝트로 새로 생긴 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마치 서울 상암 쓰레기 매립장의 높이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흙과 돌부스러기 사이에 버드나무와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노천채굴로 긁어낸 암반을 드래그라인이 옆 골짜기로 옮기니 산이 되었고, 여기에 나무를 심고 비료를 주며 숲을 조성했습니다. 사슴 같은 초식동물이 찾아오도록 복원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는 광산 회사의 자발적 발상이 아니라, 환경운동과 주정부의 규제 덕분에 시작된 사업이었습니다. 알래스카 송유관이 순록이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받침대 위에 설치된 것과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이 노천광의 연간 생산량은 약 150만 톤이었고, 그 절반 이상이 한국으로 수출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호남화력발전소가 최대 고객이었습니다. 사회부 기자 시절 강원도와 충남 탄광 지역을 취재한 경험이 있어 한국 탄광의 열악한 조건을 알고 있었던 나는, 이곳의 자원 규모와 채굴 방식에 크게 놀랐습니다.

우시벨리 탄광의 확인 매장량은 약 6억 톤에 달합니다.

▪ 수산 자원의 보고, '물 반 고기 반'

자원을 돌아보며 알래스카의 면적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남한의 17배, 일본의 4.5배, 인도네시아에 육박하는 광대한 땅입니다. 태평양, 베링해협, 북극해에 둘러싸인 해안선의 길이는 약 5만 5천㎞에 달합니다. 석유·천연가스·석탄 같은 에너지 자원은 물론, 금·은·납·구리와 희토류 등 광물 자원도 풍부합니다.

또 어업은 알래스카 제2의 산업입니다. 여름철 앵커리지 시내 하천마다 연어떼가 올라왔습니다.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었습니다. 게다가 알래스카 면적의 40%가 산림으로 덮여 있으며, 한국보다 훨씬 넓은 면적이 경제림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2024년 현재 한국과 알래스카의 교역은 광물과 해산물 중심으로 제한적입니다. 한국은 약 6억 달러어치를 수입했는데, 주로 아연 등 광물과 수산물이었습니다. 한때 한국으로 수출되던 우시벨리 석탄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습니다.

▪ 알래스카 천연가스, 도전이자 기회

그런데 새로운 변화가 감지됩니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를 구매하기로 한 것입니다. 지난 8월 말,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알래스카 천연가스 구매를 공개적으로 촉구했습니다.

알래스카 푸르도베이 지역에는 확인된 천연가스 매장량이 약 35조 입방미터(1,250조 입방피트), 즉 약 25억 톤에 이릅니다. 문제는 겨울 기온이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지는 극한 환경에서 가스를 채굴하고 수송하는 일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LNG 운반선 건조에 강점이 있지만, 이를 실현하려면 1,200㎞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알래스카 남쪽 항구로 운반해야 합니다.

트럼프가 일본과 한국을 콕 집어 구매와 투자를 요구한 배경에는, 단순한 수입뿐 아니라 채굴과 파이프라인 인프라 구축에도 동참하라는 속내가 숨어 있을 것입니다. 일본은 1980년대 앵커리지 남쪽 쿡인렛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해 소비한 경험이 있지만, 한국은 알래스카 자원의 직접 개발 경험이 없습니다.

알래스카의 천연가스는 한국에 힘겨운 도전이 될 수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막대한 매장량, 국제 에너지 협상,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을 떠올리면, 알래스카는 한국과 앞으로도 긴밀히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AI 시대를 맞아 전력수요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건설기간이 오래 걸리는 원자력과 풍력, 간헐성이라는 약점을 가진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핸디캡사이에서 LNG발전소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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