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1 09:40 (목)
[이만훈의 세상만사] ㉒ 별의 '무진장 세계'
[이만훈의 세상만사] ㉒ 별의 '무진장 세계'
  • 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 webmaster@econotelling.com
  • 승인 2025.09.1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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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맨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넉넉잡아 9000여개 정도
인간 천명은 별자리에 깃들어 있단 믿음에 숙(宿)으로 정의
1초에 지구를 일곱바퀴 반이나 돌 정도로 빛의 속도 눈부셔
빛이 1년 걸리는 거리가 1광년…우주의 크기는 920억 광년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별을 보고, 별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들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기 시작한 이래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양(洋)의 동서와 시(時)의 고금이 다르지 않다. 심지어 달에 다녀오고, 화성과 금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통신ㆍ기상 등 특수용도의 많은 인공위성과 우주정거장까지 하늘에 띄워 운용 중인 오늘날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 잘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안하무인으로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초(超)강대국 미국도 허리케인 한 방이면 쩔쩔매고, 기습적인 폭우와 한파, 가뭄 등 기상이변엔 속수무책이다.

옛 사람들은 하늘에 나타나는 천체들의 운행을 '하늘의 무늬', 즉 천문(天文)이라 했다. 특히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에게 천문을 읽어 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통치의 기본이었다. 기원전 1830~1531년 무렵의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문서에 천문 현상을 바탕으로 풍년 여부를 미리 점친 내용이 있다.

천문이란 생각은 동양에서도 기록상 2000년 이상 오래된 것이다.《주역》<단(彖)><분(賁)>에 "하늘의 무늬를 보고 계절의 변화를 살피며, 사람의 무늬를 보고 온 세상을 교화시킨다(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는 대목이 있다. 이 같은 천문의 역사는 그만큼 오래 전부터 인류가 하늘을 두려워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조상님들이 한눈을 팔지 않고 꾸준히 천문을 살펴온 것은 자연의 오묘한 비밀을 탐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천문 현상으로부터 인간 세상의 길흉을 알아내려는 목적에서였다.

천문을 살피는 요체는 하늘의 뜻을 파악하는 데 있다. 이를 보고 정치지도자는 덕을 닦고 정치를 바로 잡는다. 백성을 구제하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재앙을 없애달라고 기원하는 것은 이를 통해 하늘이 감동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동을 주고 받는 것이 바로 '천인감응(天人感應)'이다. 별 보기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요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실천이다. 천문을 살피는 건 바로 하늘과의 '소통'이다.

#오늘날 우리는 눈부시게 발전한 천문학 덕분에 '하늘세계'의 비밀을 엄청나게 많이 알게 됐다. 조상들은 상상도 못 했을 정도로 정보도 많고 정밀하다. 그런데 이 같은 천문학은 점성술이나 점성학에 커다란 신세를 졌다. 비록 천문을 살피는 게 '과학적 목적'이 아닐지라도 정밀한 관측과 계산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그 결과를 수많은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하늘의 별에 이름을 붙이며 밤하늘을 살폈다. 중국에선 기원전 4세기쯤부터 3원(垣)과 28수(宿)의 구역으로 나누는 개념이 확립됐고,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조선 태조 4년(1395)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ㆍ국보 제228호)는 고구려 천문도를 토대로 돌에 새긴 것으로 한나라 때부터 들어온 중국 별자리 지식의 집약체이다.

우리나라에 중국식 28수 별자리 지식이 전해진 것은 대략 4세기쯤이지만 그 전에도 이미 독자적인 천문 지식이 전승되고 있었다. 충북 청원군 문의면 아득이 마을에서 발견된 '돌판천문도'는 최소한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밝혀졌고, 북한에선 함남 지석리에서 발견된 고인돌 덮개돌에 별자리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 고인돌은 기원전 30세기의 것이라고 한다. 또 울산 천전리, 고령 양전리, 함안 도항리에는 신석기 시대 암각화가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동심원들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De sterrennacht ㆍThe Starry NightㆍNuit Etoilee)'를 방불케 하는 별 그림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편 우리는 별을 나타낼 때 흔히 ☆ 모양을 사용하곤 한다. 별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관측을 해보면 ☆ 모양보다는 동그란 원 모양에 가깝다고 한다. 별을 ☆으로 기호화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로 그 뒤 일반화됐는데 우리 조상들은 원으로 표시하고 석각의 경우 크기와 깊이로, 종이그림의 경우 크기와 색깔로 밝기까지 구분했으니 탁월함에 무릎을 칠 따름이다.

#옛날 천문을 살피는 별보기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우선 별자리의 모양과 상태를 근거로 전쟁의 승부나 농사의 풍년여부, 수해나 가뭄 같은 재해, 제왕의 안위 등 국가와 군사 분야의 큰일에 대해 예측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천문 현상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 해서 해와 달의 운행 및 일식과 월식, 항성과 행성, 그리고 혜성의 움직임까지 포함된다. 이와 함께 유성과 운성, 구름, 바람, 서리, 비, 눈, 우박, 번개, 우레 등 기상 현상들까지 포함됐다. 국가의 운명이 걸린 일인 만큼 그야말로 하늘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눈을 부릅뜨고 살피고, 그 결과를 종합해 판단했던 것이니 단순히 점복(占卜)이니 점성술(占星術)이니 하면서 깔볼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를 천문학(天文學ㆍAstronomy)과 구분해 점성학(占星學ㆍAstrology)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국가적 대사가 아닌, 개인의 평생 운명에 대한 예측을 위해 전문적으로 별자리를 살피는 점성학도 있다. 이는 어떤 개인의 출생 시각의 천문 현상을 근거로 하는데 그 범위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황도 12궁과 5성, 해와 달로 한정된다. 기원전 5세기 메소포타미아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산명천궁도(算命天宮圖)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묘한 것은 전자의 점성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꾸준히 실행, 발전돼 궁극적으로 나중에 천문학으로 바통을 넘긴 뒤 소멸된 반면 후자는 우주선이 횡행하는 오늘날까지도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개인 점성학의 경우 동양에선 옛날에도 '사주팔자(四柱八字)'에 밀려 거의 맥을 못 쓰다가 오히려 근래에 수입돼 퍼진 문화 현상 중 하나다. 사주팔자도 출생 시각이 판단의 중요 요소지만 천문과는 무관해 서양식 개인 점성학과는 산명(算命)방식이 다르다.

#동양에서 널리 받아들인 중국식 별자리에서 삼원은 중궁(中宮)구역을 나타내는데 자미원(紫微垣), 태미원(太微垣), 천시원(天市垣)등이고, 28수는 하늘에서 달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대표적인 별자리들을 동·북·서·남 방향에 각각 7개씩 정해 이름을 붙여 구역을 나눈 것이다. 이 같은 별자리 이름은 지상의 이름을 하늘에 옮겨놓은 것들이다. 임금이 사는 궁궐과 관리들의 이름, 곡식창고, 궁궐 바깥을 감싸 도는 강(은하수)과 그 위를 떠가는 배와 나루, 도시, 강 건너 주둔하고 있는 군대와 여러 나라(지역)의 이름들이 들어 있다. 하늘에는 이런 별자리도 있다. 28수 가운데 북방 7수의 첫째인 남두육성(南斗六星)의 머리 부분 앞에 위치해 짖으면서 지키는 일을 주관하는 개자리 별(狗星) 두 개가 있다. 이 개자리 별 주변으로 농사를 짓는 농장인(農場人) 별 한 개가 있고, 별 두 개로 이뤄진 하늘의 닭인 천계(天鷄), 별 아홉 개인 하늘의 밭 천전(天田), 각각 별 아홉 개로 이뤄진 수로(水路)의 방죽인 나언(羅堰)과 물길 도랑인 구감(九坎) 등이 있다. 거기에다 남두(南斗) 자체가 곡식을 되는 됫박 별자리이다. 봇도랑, 방죽이 있는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개와 닭도 키우는 전원풍경이 아닌가! 이는 하늘을 땅의 거울처럼 여겨 하늘의 일이 땅에서의 일이요, 하늘의 마음이 곧 땅의 마음이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은 자연스레 사람의 탄생과 죽음도 하늘이 관장한다는 믿음으로 연결되는데 무슨 무슨 별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네 하는 탄생 설화의 근거다.

#우리는 흔히 숙명(宿命)이란 말을 쓴다. '宿'이 별자리란 뜻이자 잠잔다는 뜻이어서 인간의 천명이 별자리에 깃들어 있다는 믿음으로 이 말에는 우리네 생명의 근원을 별에서 찾는 우리 문화사적 에토스가 담겨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원한 개인 점성학이 모든 것이 변한다고 믿는 '역(易)'에 밀려 동양에서 별로 힘을 쓰지 못했지만 황동 12궁 등의 개념이 인도를 거쳐 불교를 통해 곳곳에 습합된 흔적이다. 지금도 장례에서 시신을 안치하는 목관 바닥판에 북두칠성 모양의 일곱 개 구멍을 뚫어 북두칠성이 망자의 사후세계를 안녕토록 보호한다는 칠성수호신앙 풍속이 전한다.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이 "남두사생(南斗司生) 북두사사(北斗司死)"라 했듯이 남두육성이 삶의 연수(延壽)를 주재한다면 북두칠성은 사후의 평안을 주관한다는 점성(占星)적 믿음이 이미 고구려 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매년 남두육성이 나타나는 7,8월의 여름철 한밤중이면 남쪽 하늘 지평선 가까이에서 은하수에 자루 부분이 잠긴 남두육성이 엎어진 국자 모양으로 뚜렷하고, 그 반대편 북쪽 하늘에 북두칠성이 뉘인 모습으로 걸린다. 동시에 남두와 북두를 볼 수 있고 국자 모양을 이룬 것도 비슷해 고구려인들이 이 둘을 남북의 방위수호 별로 삼았던 것이며, 위진(魏晉)시대 도교 천문에서는 생과 사를 주관하는 별자리로 간주했던 것이다. 칠성판은 이런 숙명론 전통을 받아들여 만든 상장례(喪葬禮) 천문민속이다.

# 우리가 잘 아는 회심곡(回心曲)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어머님 전 살을 빌고, 아버님 전 뼈를 받고, 일곱 칠성(七星)님 전에 명(命)을 받고, 제석님 전 복을 빌어…'

예전 우리네 정서로는 사람은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어머님 아버님께 몸을 받았다면, 명(命: 목숨과 운명)은 칠성님(北斗七星) 즉, 일곱별로부터 그 정기를 받는 다고 믿었다.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이 학문을 주관한다는 문곡성(文曲星)인데 이 별의 정기로 태어난 인물 중 대표적인 이가 고려 때 명신이자 명장인 강감찬(姜邯贊·948~1031)이다. 서울 봉천동 낙성대(落星臺)엔 강 장군의 탄생 설화가 얽혀 있다. 중국에서 온 사신이 지나가다가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져 어느 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중국 사신은 이를 이상히 여겨, 관원들을 보내 별이 떨어진 집을 찾게 했다. 한 관원이 중국 사신의 명을 받아 별이 떨어진 집을 찾아가니, 때마침 그 집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강 장군이다. 강 장군은 어려서 영특하고 학문을 좋아해 983년(성종 2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했다. 그가 관직에 나가 예부시랑(禮部侍郎)으로 있을 때, 송나라 사신이 와서 강감찬 장군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뜰 아래로 내려가 절하며, "문곡성(文曲星)이 오래도록 보이지 않더니,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文曲星不見久矣 今在此云)."했다. 고려 현종 원년(1010년)에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했을 때 고려에서는 강조가 30만 대군을 이끌고 나가 싸우다 패해 많은 신하가 왕에게 항복할 것을 권했으나 예부시랑으로 있던 강감찬 장군이 항복을 반대함으로써 위난을 면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018년 거란의 성종은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다시 소배압을 시켜 1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공케 했으나 고려는 강 장군을 상원수로 삼아 20만 대군으로 대적케 했다. 이에 장군은 홍화진의 물을 막고 적을 공격해 승리를 거뒀으며, 퇴각하는 적을 추격해 귀주에서 대첩을 거두니 바로 귀주대첩이다. 이 귀주 대첩은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충무공의 한산대첩과 함께 청사에 길이 남는 승전으로 손꼽힌다.

한편 '개작두'로 유명한 북송 때 판관(判官)포청천(包靑天ㆍ본명 包拯ㆍ999~1062)도 문곡성의 화신이다.

학문과 관련된 별자리로는 문창성(文昌星)도 있다. 북두칠성의 국자 머리 바깥쪽에 위치한 여섯 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로 이를 신격화해 문창제군(文昌帝君)으로 불리기도 한다. 교육, 학문의 신이며 특히 과거를 치르는 사람들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문창성은 일반적으로 괴성(魁星)이라고 불리며 붓과 벼루를 들고 오른 쪽 다리를 번쩍 치켜들어 북두칠성을 차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묘사된다. 문창성의 기를 받은 인물 가운데 퇴계도 있다. 퇴계의 학문이 절륜하다보니 하늘에 까지 알려져 학문을 관장하는 문창성이 내려와 진짜인지 시험해보곤 사실임을 확인하자 놀라 올라갔다는 얘기가 전한다.

조선은 문치주의 국가로 문인을 중시해 문운을 관장하는 규성(奎星)과 문창성, 삼정승을 상징하는 삼태성(三臺星), 천문을 관장하는 태사성(太史星),그리고 선비의 별자리인 소미(小微)4성(작은사자자리: 處士星, 博士星, 議士星, 大夫星)이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서 의사는 의론을 개진하는 선비로 오늘날로 치면 참정권을 행사는 모든 구성원을 가리킨다. 소미 4성 중 처사성과 관련된 인물로는 조선 중기 성리학의 기틀을 다진 영남학파의 거장, 남명(南冥) 조식(曺植ㆍ1501~1572) 선생이 있다. 조 선생이 죽기 얼마 전, 별을 관찰하는 관리인 태사(太史)남사고(南師古ㆍ1509~1571)는 "올해 처사성에는 광채가 없다"고 했다. 얼마 뒤에 조식이 죽자 당대의 또 다른 학자 율곡 이이(李珥·1537~1584)는 이를 두고 "조식이야말로 시대에 응한 비상한 선비"라고 말했다.

문곡ㆍ문창처럼 학문(文)과 연관된 별자리가 있으면 당연히 무(武)와 관련된 것도 있는 법, 무곡성(武曲星)이 바로 그것이다. 무곡성은 북두칠성의 일곱 별 가운데 자루 끝에서부터 두번 째 별로 점성학에서 무곡성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사람은 기골이 장대하고 심성이 담대한데다 강한 실행력과 독립심이 있어 전쟁의 신과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본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과 북송의 명장 적청(狄靑ㆍ1008~1057)이 무곡성의 화신들로 알려졌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순신과 적청은 모두 불후의 명장들로 엄청난 전승의 공적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질시와 시샘을 받았고, 개운치 않게 죽었다. 무곡성 정기의 특징 중 하나가 불의와 타협이 잘 안 되는 성격이라 그런 걸까.

#우리 조상들은 또 사람의 나이에 따라 그때그때 운명을 맡아보는 별이 있다고 믿었다. 바로 '직성(直星)'이다. 직성에는 제웅직성, 토직성, 수직성, 금직성, 일직성, 화직성, 계도(計都)직성, 월직성, 목직성이 있다. 천문의 기둥인 칠요(七耀: 해와 달에다 금·목·수·화·토의 5성)에다 제웅직성과 계도직성을 더한 아홉 개의 별이다. 제웅직성은 나후(羅睺)직성이라고도 하는데 계도직성과 함께 태양이 길인 황도와 달의 길인 백도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잘 보이지 않는 별(隱星)이다. 직성은 우리나이로 남자는 열 살, 여자는 열한 살부터 드는데 나후직성을 시작으로 해마다 토직성, 수직성, 금직성, 일직성, 화직성, 계도직성, 월직성, 목직성 순으로 찾아 온다고 한다. 그런데 수직성, 금직성, 목직성의 운수는 길하고, 토직성, 일직성, 월직성은 어중간(半凶半吉)하며 화직성은 흉하다. 또 계도직성은 매우 흉하며 가장 안 좋은 해는 나후직성이 들었을 때로 매사 조심에 조심을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나이에 따라 직성이 하나씩 들고, 아홉 직성이 다 들고 나면 다시 제웅직성부터 차례로 반복한다. 흔히 민간에서 얘기하는 '아홉 수'란 것도 여기서 유래하는데 무속에서는 그 해에 어느 직성이 드는가에 따라 그에 맞는 '직성풀이'라는 것을 한다. 길한 직성은 맞이하고, 흉한 직성은 쫓아내는 식이다. 대보름 풍습 중에 '제웅치기'라는 것이 있는데, 제웅직성이 든 사람의 직성풀이다. 이렇게 직성풀이를 하면 사나운 운수를 풀어내서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는 믿음에서 하는 민속이다. 바라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져 마음이 흡족하고 편한 상태를 나타낼 때 흔히 쓰는 '직성이 풀린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됐다.

#인간이 맨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넉넉하게 잡아 9000개 정도라고 한다. 밤하늘에 보이는 수많은 별들은 대부분 '은하수 은하'라는 우리 은하에 속해 있다. 이 은하는 지름이 약 10만 광년이나 되고 그 안에 약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 정도로 빠른 속도를 가지고, 그 빛이 1년 걸려 도달하는 거리를 1광년이라 하는데 오늘날 최첨단 과학으로 추정 가능한 우주의 크기가 920억 광년이라니 감히 '별의 세계'를 운운하는 것조차 경망스러울 지경이다. 우리가 보는 어떤 별빛은 그 별에서 10만 년 전에 출발한 것을 보는 것이다. 10만 년 전이면 석기시대이니 어쩌면 이미 사라진 별을 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프록시마 센타우리'인데 4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다. 빛의 속도로 태양까지도 8분이면 가는데 가장 가까운 별엔 4년이나 걸린다니 별빛을 본다는 게 얼마나 귀한 손님을 영접하는 일인가. 특히 우리가 밤하늘을 볼 때마다 가장 쉽게 찾는 북극성도 무려 400년 전, 가장 가까운 은하인 '안드로메다' 은하는 250만 년 전의 모습이라니 상상조차 뛰어넘는다. 우주가 대폭발 이후 팽창을 거듭해 130억 년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주의 나이 1초 이전의 역사는 아직 완벽하게 밝혀진 바 없다. 특히 우주 탄생의 비밀, 즉 도대체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우주가 태어나기 이전은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지구가 탄생한 건 약 46억 년 전이며, 가장 오래된 생물의 화석은 약 35억 년 전의 화석에서 발견된 스트로마톨라이트이고, 인간이 침팬지와 갈라진 게 불과 수백만 년 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서 온 것일까. 우리 조상들의 믿음처럼 별의 정기일까.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와 비율은 산소(O)가 65%, 탄소(C) 와 수소(H)가 각각 10%, 질소(N), 칼슘(Ca), 황(S), 인(P), 염소(Cl), 마그네슘(Mg) 등이 1% 미만이고 나머지는 미량의 철(Fe), 아연(Zn), 구리(Cu)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이 원소들은 또 어디서 온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원소들은 모두 우주에서 별의 핵융합과 초신성 폭발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 과정은 복잡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별은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가스와 먼지(星雲)가 중력에 의해 뭉쳐지면서 형성된다. 그런데 최초의 우주는 지금의 우주와 많이 달랐다. 훨씬 더 작고 뜨거웠으며 밀도가 높았다. 구성성분도 아주 달랐다. 지금의 지구와 대기권 안에 있는 질소, 산소 등의 원소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탄소, 칼슘 등의 원자와 그것들이 결합해서 생기는 복잡한 분자가 하나도 없었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서서히 식어갔고 제일 단순한 원자인 수소와 헬륨(He)이 맨 먼저 만들어졌다. 그리고 중력에 의해 여기저기서 물질이 서로 모여들어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은 장소들이 생겼고, 거기서 제 1세대 별들이 태어났다. 별이 태양보다 8배 이상의 질량을 가지게 되면 훨씬 많은 에너지를 방출하며 더욱 빠르게 진화한다. 최초의 핵융합 과정에서 수소 원자 4개가 모여 헬륨 원자 1개가 만들어지는데, 이때 질량이 감소하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 수소라는 연료를 모두 사용하면 헬륨 원자가 핵융합해 탄소를 생성하고, 그 다음엔 탄소, 질소, 산소 원자가 핵융합해 빛을 내고 별 안에 계속 더 무거운 원소들이 축적된다. 그리고 별의 중심 온도는 점점 더 높아진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철이 만들어지면 더 이상 핵융합을 통해 에너지를 얻을 수없는 상황이 된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핵융합 반응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핵융합 반응은 가벼운 원소를 결합하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핵융합을 해도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소비하게 된다. 별의 마지막 단계에서 핵융합 반응이 멈추면, 내부 압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데 이때, 별의 질량이 태양의 10배 이상인 경우 중심부가 급격히 붕괴하면서 엄청난 양의 중력 에너지는 곧 열로 바뀌는데 이 때 수초 간 보내는 에너지가 그 별이 평생 동안 보낸 에너지와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 이를 초신성(超新星· supernova) 폭발이라 하는데 별의 죽음에 해당하는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면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하면서,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순간적으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금(Au), 은(Ag), 우라늄(U), 납(Pb)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생성돼 우주로 퍼지게 된다. 이런 무거운 원소들은 은하 안팎을 떠돌다가 다음 세대의 별이 태어날 때 그 별 안에 포함되거나 그 주변에 형성되는 기체 원반에 섞여 들어간다. 우주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별은 세대를 거듭하고 무거운 원소들의 함량은 높아진다. 또 별들 주변에 있는 기체 원반 안에선 행성들이 태어난다. 그 행성들은 금속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의 복잡한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도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 별 안에서 생겨난 것이다. 우리 몸속의 탄소와 산소는 별의 내부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또 혈액의 헤모글로빈 속에 있는 철은 별의 내부에서 규소(Si) 핵 두 개가 만나면서 생긴 것이고, 뼈와 이를 이루고 있는 칼슘은 산소와 규소가 핵융합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이같이 우리는 모두 별의 먼지(stardust)로부터 만들어진 '별의 후손'이니 결국 내가 별이요, 너도 별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별을 보고, 별과 함께 살아간다. 화려한 불빛에 묻혀 사는 도시 사람들 보다 어둠이 친숙한 시골 사람들이 더 그러하다. 도시 내기들이 까탈스럽고 깍쟁이인 건 착하게 타고난 심성조차 너무 많은 빛에 깎인 탓이고, 시골뜨기들이 어리숙하고 순박한 건 상대적으로 그만큼 덜 빛 세례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밝음이 문명을 세웠다지만 때론 어둠이 빛보다 '빛나는' 존재일 수 있는 까닭이다. 하긴 문명이란 어둠을 벗어나려는 노력의 산물일 뿐이니까. 어쨌든 별과 더불어 산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우리민족의 맨 위 조상 단군(檀君)의 아버지 환웅(桓雄)께선 하늘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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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 다니다 1982년 중앙일보에 신문기자로 입사했다. 주로 사회부,문화부에서 일했다. 법조기자로 5공 초 권력형 비리사건인 이철희ㆍ장영자 사건을 비롯,■영동개발진흥사건■명성사건■정래혁 부정축재사건 등 대형사건을, 사건기자로 ■대도 조세형 사건■'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유명한 탄주범 지강현사건■중공민항기사건 등을, 문화부에서는 주요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들을 시리즈로 소개했고 중앙청철거기사와 팔만대장경기사가 영어,불어,스페인어,일어,중국어 등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엔 초짜기자임에도 중앙일보의 간판 기획 '성씨의 고향'의 일원으로 참여하고,1990년대 초에는 국내 최초로 '토종을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종자전쟁에 대비를 촉구하는 기사를 1년간 연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토종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 대한상의를 비롯 다수의 기업의 초청으로 글쓰기 강의를 했으며 2014인천아시안게임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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