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에겐 잡초란 말 없어 … 식물도 영혼이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는 친구로 여겨
농작물 못잖게 풀들도 유용한 가치 있고 꼭 제거하지 않고도 상생할 수 있는 방법 있어

#김매기를 한자로는 '薅(호)'라고 하고, 이미 주(周)나라 때 '체씨(薙氏)'란 관리로 하여금 이를 담당하게 했을 만큼 우리는 인간들의 삶에 불가분의 관계이면서 엄청난 영향을 미쳐온 존재였어요.
그런데 사실 이 땅의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요즘처럼 인정머리가 없던 적이 없었어요. 본디 '김'이라고 하고 이를 뽑는 걸 '김매기'라고 했지 노골적으로 '잡스런 풀'이라고 멸시하고 '제거(除去)'란 무시무시한 말로 필멸(必滅)의 대상으로 찍어버리진 않았으니까요.
마치 미국인들이 911테러와 연관 지어 알카에다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한테 한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와 전쟁을 벌여 그 승패가 풍흉(豊凶)의 모든 조건인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니 이런 말도 있죠. 풀을 보지 않고 김을 매는 것은 상농(上農), 풀을 보고서야 김매기를 하는 것은 중농(中農), 풀을 보고도 김매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농(下農)이라고요. 김매기야 말로 농부의 자질을 판가름하는 요소라는 얘긴데 근사한 표현 같지만 우리한테는 아주 '노 땡큐(No Thank You)'죠.
인간들이 구사하는 김매기 방법은 우리를 뿌리째 뽑기와 우리를 흙에 파묻어버리기 등 크게 두 가지죠. 밭매기의 경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밭 표면의 마르고 굳은 흙을 부숴 수분과 공기를 통하도록 하는 효과도 있긴 합니다. 밭매기에는 호미가 기본이고 때론 괭이나 긁쟁이, 후치 등도 동원돼 아예 사이갈이(中耕)를 겸하기도 하죠.
이에 비해 논매기는 조금 단순한 편인데 그만큼 인간들이 상대할 친구들이 밭에 비해 적기 때문이죠. 논매기는 모내기를 한 뒤 20일쯤이면 벼가 뿌리를 내리고 한 뼘나마 자랐을 때 하는 '애벌매기(초벌매기)'를 시작으로 세 번이나 하며 우릴 괴롭힙니다. 애벌매기한 다음 보름 뒤 '두벌매기'를 하고, 다시 보름 지나 '삼동(세벌매기)'을 하는데 애벌매기는 호미를 사용하지만 나머지 두 번에는 그냥 맨손으로 쓰적쓰적 볏고랑을 훑으며 지나기 때문에 '논을 훔친다'고 한답니다.
예전엔 삼동을 마치면 인간들이 우리를 향하던 무기인 호미를 씻어 걸어두는 '호미걸이(*호미씻이라고도 하죠)'란 의례를 하며 잔치(洗鋤宴)를 벌이기도 했죠. 여름내 뙤약볕 아래서 우리들과 쌈박질을 해댔으니 이때쯤이면 저들이나 우리들이나 지치기도 할 테고, 실제로 우리들의 성장기세도 한풀 꺾이는 시기여서 인간들이 승리를 자축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요.
논농사꾼들이 가장 치를 떠는 게 피(*옛날에 작물로 심었던 것과는 다른 종으로 '물피:水稗'를 가리킨다.)란 친구인데 삼동을 했는데도 미쳐 뽑히지 않은 피가 있으면 씨가 여물기 전에 '피살이'를 하기도 하죠.
#인간들이 우리한테 사용하는 방법가운데 가장 잔혹한 건 아무래도 제초제(除草劑)란 극약을 뿌려대는 거예요. 제초제는 생장점의 세포분열을 막거나 광합성을 저해하는 등 식물 고유의 생리기능을 방해해 죽도록 하는 흉기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선택성(選擇性)이냐 비선택성(非選擇性)이냐로 구분됩니다. 특히 비선택성 제초제는 풀이건 작물이건 가리지 않고 약액이 잎이나 줄기에 묻기만 하면 서서히 말라죽게 하는 무시무시한 놈입니다. 그러니 지들한테도 괜찮을 리 없을 게 뻔한데도 그저 우리들을 죽여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여기저기서 마구 뿌려대고 있으니 인간들이란 참 무모하고도 독한 종자들임이 틀림없어요. 지하수와 강물을 오염시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한테 피해를 준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 눈앞의 자기이익만 좇을 뿐 나 몰라라 하는 매몰찬 냉혈한이 어디 한둘입니까.
#인간들과 우리의 싸움은 생존이 걸린 거라 치열할 수밖에 없어요. 농사를 망치면 지네들이 죽으니 안달복달하며 막무가내로 우리를 없애려 들고, 우리는 저네들이 씨를 말리면 후손이 끊어져 멸종이 될 판이라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살아남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 맞서죠. 인간들의 무기는 뭐 뻔하죠.
호미와 괭이, 낫, 쇠스랑 등등. 요즘 경운기다 트랙터다 해서 기계화 영농이라 하지만 막상 작물 사이에 섞여 있는 우리를 솎아내려면 일일이 손이 가야하고 도구도 수동일 수밖에 없어요. 이런 사정으로 석기시대부터 사용된 호미며 괭이가 아직도 유용하게 쓰이는 겁니다. 검은 비닐로 멀칭을 해 우리들을 질식시키는 방법을 쓰더라도 삐져나오는 친구들은 어차피 손길이 가야하고요, 우리한테는 사약(死藥)인 제초제는 고엽제처럼 넓은 지역에 무차별 살포에는 유용하지만 대부분의 농사에는 세밀한 선택 투약이 어려워 결국 호미와 괭이 등 원시적(?) 농구의 신세를 지는 것이에요. 주병선의 노래 '칠갑산'이 가슴을 저미는 건 젊은 아낙이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애원(哀怨)때문이지만 그런 정서를 극대화하는 데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콩밭을 매는 배경설정이 있어 성공하고 있는 것이죠. 김매기는 봄부터 가을까지 줄기차게 이어지지만 작물이나 잡초나 가장 성한 때가 한여름이니 삼복 중 작업이 가장 힘들 테죠. 더구나 콩이란 놈은 장하기가 작물 가운데서도 으뜸이어서 이랑과 이랑 사이 고랑이 기다란 동굴처럼 이어지는데다 이파리에 제법 까실까실한 털까지 나 있어 손등이고 얼굴이고 쓸리면 화끈화끈 쓰라림으로 잠을 설칠 정도여서 김매기 중 최고로 힘든 게 콩밭매기이니 말해 무엇 하겠어요.(*보리와 밀은 까끄라기가 있어 콩잎의 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따갑지만 이삭이 패기 전에 김매기를 마치기 때문에 보리밭보다는 콩밭매기가 더 힘든 것이에요.)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태진아의 '사모곡'에도 호미가 등장하는데 '칠갑산'과 비슷한 효과를 내기 위한 거지만 그만큼 호미가 갖는 보편성과 대중성을 증명하는 것이죠.
'앞산 노을 질 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화전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인간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라며 우리를 없애는 데 죽을 둥 살 둥 발버둥친 게 인류의 역사라면 우리들은 그네들의 살기(殺氣) 가득한 마수를 뿌리치기 위해 별의별 전략 전술을 구사해온 역사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들의 생존전략과 전술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간단해요. 한국전쟁 때 '뙤놈군(中共軍)'처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로 밀어붙이는 거죠. 인간들이 한 것을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니 우리의 것은 '초해전술(草海戰術)'이라고 해야겠네요. 글자 그대로 인간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논과 밭을 아예 '풀바다'로 만들어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하는 겁니다.
잡초는 봄, 여름에 나서 그 해 여름, 가을에 죽는 일년생(一年生)이 있고, 뚝새풀처럼 가을, 겨울에 나서 겨울을 겪은 뒤 여름에 씨를 맺고 퍼뜨린 다음 생을 마치는 이년생(二年生)이 있는데 이것도 인간들을 지치게 만드는 전략이죠. 냉이, 망초, 뽀리뱅이, 달맞이꽃, 방가지똥, 지칭개 등은 첫해에 나서 로제트(Rosette: 짧은 줄기에 많은 잎들이 밀집해 장미꽃 모양으로 배열된 것)형태로 월동한 다음 봄에 꽃을 피우고 씨를 맺어 후손을 남기곤 미련 없이 죽는데 한해살이보다 집요함이 곱절로 '쎈' 편이어서 효과도 그 이상이니까요. 이는 풀바다를 만들기 위한 시간차 공격전술 중 하나인데 이 같은 해(年)단위 공격에다 계절별 시간차 공격전술까지 함께 구사하니 농부들이 김을 매고 돌아서기 무섭게 뒤에선 또 다른 친구들이 '짠~'하고 나타나 질리게 하는 겁니다. 김매기를 깐깐하게 한답시고 기생오라비 뭐 핥듯이 하다간 엉덩이에 풀이 난다는 얘기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거죠. 우리 잡초들의 풀바다 전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개망초밭이에요. 빈터가 생기거나 농사짓던 밭을 묵히게 되면 어김없이 망초나 개망초가 가장 먼저 들어와 점령해버리곤 하거든요. 이들은 한 개체에 수 만개에 달하는 작은 씨앗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물론 씨앗에는 깃털이 달려 있어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뜨립니다. 발아되는 개체수도 많지만 봄부터 빠르게 키워낸 거대한 몸집이 다른 풀들을 압도해 버리죠. 아무리 부지런한 농부라도 게으른 이웃에 망초나 개망초밭이 있으면 정말 망해버리고 맙니다.
풀바다를 만들기 위해선 뭐니 뭐니 해도 많은 씨를 넓게 퍼뜨려야 하는데 동원되는 방법 하나하나가 기가 막힙니다. 우선 잡초마다 생산하는 씨가 엄청나죠. 한 배에 난 열 자식 중 하나만 키워도 출산이 잦으면 집안이 금세 번성하는데 우리 친구들은 포기마다 많은 꽃을 피우고, 그 꽃자리마다 엄청난 양의 씨앗을 생산합니다. 대표적인 게 명아주와 쇠비름이죠.
초여름부터 밭을 뒤덮어 농민들을 분주하게 하는 잡초 가운데 하나가 명아주예요. 5월에 싹이 터 6월부터 여름내 꽃이 피고 지는데 한 포기에서 무려 7만여 개의 씨를 뿌려대니까요. 만약 인삼밭에 명아주가 몇 그루 자라게 내버려두면 졸지에 인삼밭이 명아주밭으로 변해버리는 건 일도 아니죠. 자고로 노인들이 애용하는 지팡이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청려장(靑藜杖)'이 바로 명아주의 줄기로 만드는데 지팡이 크기로 자라려면 7만분의 몇 확률을 뚫는 셈이니 그 많은 씨를 준비하는 명아주의 생존전략이 의뭉스럽기조차 합니다.
씨가 많기론 쇠비름도 한 끗발 하죠. 화초인 채송화와 모습뿐만 아니라 씨앗도 빼닮아 겨자씨보다 작은 알맹이들이 가득 차 있다가 다 여물면 씨주머니가 터지면서 사방으로 흩어지거든요. 씨앗이 아니라도 줄기가 부러져 흙에 떨어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뿌리가 내려 새 살림을 차리기도 하죠. 돌나물이나 미나리만큼 질긴 생명력이죠. 그래서 쇠비름을 꾸준히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해 장명채(長命菜)로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오메가 3라는 필수지방산을 비롯한 다양한 약성 물질을 가지고 있어 치매, 동맥경화, 당뇨병 예방은 물론 기력 회복에 효과가 입증됐다고 해요. 그리스의 1만 6000년 전 구석기 시대 동굴에서 쇠비름 씨가 발견됐다니 지금은 잡초 취급을 받지만 그만큼 식용의 역사가 긴 식물이죠. 더구나 동양에서 쇠비름은 붉은 줄기(火)에다 푸른 이파리(木), 하얀 뿌리(金)를 가졌고, 노란 꽃(土)에서 까만 씨(水)를 맺어 다섯 가지 기(氣)와 덕(德)을 갖춘 오행초(五行草)로 불리기도 한 명물이에요.
#잡초가 풀바다를 만들기 위해 씨앗을 퍼뜨리는 방법 또한 기기묘묘하죠. 민들레처럼 홑씨마다 솜털 날개를 달아 바람여행을 통해 퍼뜨리는 '낙하침투'형, 만지면 톡하고 터지면서 벌산하는 '봉선화 연정'형, 옷이나 머리, 동물의 털 등에 달라붙어 힘들여 떼지 않으면 하늘 끝까지 좇아가는 '스토커'형, 주로 빨간색이나 새까만 색의 열매로 새를 유혹해 퍼트리는 '요부(妖婦)'형 등등. 낙하침투 형엔 민들레 말고도 할미꽃, 엉겅퀴, 뽀리뱅이, 지칭개, 씀바귀, 고들빼기, 박주가리 등이 있고 봉선화 연정 형은 주로 콩과 식물이 채택한 방법으로 도득놈의지팡이, 돌콩, 여우팥, 자귀풀, 물봉선 등에서 볼 수 있어요. 또 스토커 형엔 씨앗의 끄트머리가 갈고리 사지창처럼 갈라진 도깨비바늘과 도깨비방망이, 진득찰, 뱀무, 도둑놈의갈고리, 도꼬마리, 참반디, 짚신나물, 파리풀, 쇠무릎, 주름조개풀, 미국가막사리, 멸가치 등이 있고, 특히 한방에서 씨앗 이름이 차전자(車前子)라 불리는 질경이도 비슷한 방법으로 씨를 퍼뜨리는데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살면서 이삭에 달린 씨앗을 사람과 동물, 차바퀴 등에 묻혀 옮겨요. 비가 오고나면 씨가 끈적여 더 잘 붙죠. 그래서 어디를 가다 질경이를 발견하면 머지않은 곳에 마을이 있다고 보면 되는 겁니다. 요부 형으론 대표적인 게 산딸기인데 새가 먹으면 강산인 새의 위액에 씨를 싸고 있는 코팅성분이 녹아 없어지면서 똥으로 배출된 곳에 살림을 차리게 되는 기제이죠. 그런데 제비꽃의 자손 전략은 남달라요. 봄에는 보통의 다른 친구들처럼 꽃을 피우고 수정을 해 '봉선화 연정'형으로 씨를 퍼뜨리지만 6월 이후에는 꽃을 피우지 않고 '단성생식'을 하는 열매를 맺죠. 단성생식이란 암컷 생식세포가 수정을 하지 않고 배아가 형성돼 발달하는 무성생식 방식 중 하나로 학문적으론 '아포믹시스(apomixis)'라고 하죠. 처녀생식이라고도 합니다. 제비꽃 말고 솜나물, 돌콩, 새콩, 미국민들레 등도 이 방식을 쓴답니다. 또 씨앗에는 젤리 상태의 지방산 덩어리인 엘라이오솜(Elaiosome)이란 게 붙어 있어 개미유충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기 때문에 개미가 이 엘라이오솜을 취한 뒤 씨앗을 집 근처에 버리게 해 개미를 통해 씨를 널리 퍼트릴 수 있는 겁니다.
이밖에 씨앗이 아닌 '몸줄기'로 개체를 퍼뜨리는 무성생식의 도사(?)풀들도 있는데 잘린 줄기를 아무렇게 던져 놓아도 곧 뿌리를 내리는 '꺾꽂이'형, 줄기가 기면서 흙에 닿는 부분마다 뿌리를 내리는 '기차놀이'형 등이 있죠. 꺾꽂이 형엔 미나리, 돌나물, 쇠비름 등이 있고 기차놀이 형엔 뱀딸기, 칡, 닭의장풀, 사위질빵, 담쟁이 등이 있어요. 그런데 잡초라 불리는 탓인가 웬만한 친구들은 씨 번식을 하는 것들도 때론 꺾꽂이 방식으로 때론 기차놀이 방식으로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아요. 그저 유전자를 퍼뜨리기만 하면 된다는 게 우리들의 '철학'이니까요.
#잡초라고 허접쓰레기 대접을 받는 풀들은 예로부터 약용으로 쓰이는 동시에 민초들한테는 반찬거리 역할을 톡톡히 했어요. 하지만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할 턱이 없듯이 언제부턴가 배가 조금 불러졌나 싶더니 너도나도 '더럽게' 몸을 챙기는 풍조 속에 이 '잡스런' 풀들이 죄다 한약재가 되는 줄 모르고 비싼 돈을 주고 한약을 사먹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풍경입니까. 잘 나기로 치면 두 번째가 서러운 현대인들이 잡초를 굳이 돈을 들여 사 먹는 어리석음은 씁쓸한 패러독스이자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죠.
#잡초의 미덕은 약용, 식용 말고도 여러 가지죠. 우선 가뭄 때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수분을 끌어오려 작물한테 제공하는 가하면 토양 표층에 부족한 광물질도 함께 운반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잡초는 태생적으로 척박한 땅에서도 견디는 힘이 있는데 이는 강력한 뿌리 덕분이에요. 이런 잡초의 뿌리가 땅의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면서 흙을 스펀지처럼 만들면 작물의 뿌리도 이를 타고 내려가 수분과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잡초는 또한 왕성한 흡수력으로 미나리처럼 토양의 독성을 빨아들여 중화시키고 그를 통해 흙의 상태를 가늠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돼지풀이 무성하면 그 땅은 산성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그런 원리예요.
#인디언들에겐 잡초란 말이 없다죠. 그들은 작물과 잡초를 구별하지 않아요. 모든 동물뿐만 아니라 모든 식물은 영혼이 있고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는 생명으로 자신들의 친구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잡초가 마땅한 것들도 인디언들한테는 식재료이자 약재이거든요. 사실 모든 잡초는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아 생명력이 강한 것들인데 이를 위해 각기 특유의 성능을 가진 물질을 만들어 낸다고 하죠. 예를 들어 물기라곤 조금도 없는 바위에서 자라는 돌나물에서 고품질 고농도의 장수물질이 발견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뿐만 아니라 모든 곡물과 채소들이 모두 야생으로 자라는 것을 길들여 현재의 품질로 개량한 것이죠. 지금도 즐겨먹는 나물은 야생이고 농사 현장에선 잡초 취급을 받는 것들이 많아요. 냉이, 씀바귀, 달래, 고들빼기, 비름, 소리쟁이, 질경이 등이 대표적이죠.
실상이 이런데도 우리를 그 험한 '잡초'란 이름을 붙여 괄시하고 웬수처럼 대한다는 건 무지와 폭력이 아니겠어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은 약 40만 종이라고 해요. 그 가운데 300여 종은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지금 우리처럼 쓸데없는 존재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 같은 잡초는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하는데 종이 달라질 뿐 아니라 그 종이 '잡초'인지 아닌지도 때와 장소(문화권)에 따라 계속 달라지죠. 하지만 이제부턴 '잡초'란 없는 겁니다. 눈을 크게 뜨고 생각을 돌려서 보면 농작물에 못지않게 다른 풀들도 유용한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꼭 제거하지 않고도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보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인디언 사회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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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 다니다 1982년 중앙일보에 신문기자로 입사했다. 주로 사회부,문화부에서 일했다. 법조기자로 5공 초 권력형 비리사건인 이철희ㆍ장영자 사건을 비롯,■영동개발진흥사건■명성사건■정래혁 부정축재사건 등 대형사건을, 사건기자로 ■대도 조세형 사건■'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유명한 탄주범 지강현사건■중공민항기사건 등을, 문화부에서는 주요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들을 시리즈로 소개했고 중앙청철거기사와 팔만대장경기사가 영어,불어,스페인어,일어,중국어 등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엔 초짜기자임에도 중앙일보의 간판 기획 '성씨의 고향'의 일원으로 참여하고,1990년대 초에는 국내 최초로 '토종을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종자전쟁에 대비를 촉구하는 기사를 1년간 연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토종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 대한상의를 비롯 다수의 기업의 초청으로 글쓰기 강의를 했으며 2014인천아시안게임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