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료는 토지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농협은 계통조직망을 이용해 값싼 비료를 영농적기에 공급함은 물론 균형시비 지도를 했으며, 외상판매로 농가의 구입자금 압박을 덜어주었다.
비료공급은 광복 이후 AID 원조자금으로 도입한 비료를 정부가 전량 인수해 금융조합·외자청·농업은행 등을 통해 공급하는 관수체제였는데, 그 절대량이 부족해 사실상 농민이 필요한 영농적기에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정부는 1951년부터 전체 물량의 약 20% 수준에서 민간참여를 허용하는 관민이원화의 공급체계로 전환했다.

농협은 창립 이듬해인 1962년부터 비료사업을 전개했다. 이에 앞서 1961년 정부가 비료의 자유유통을 금지시키고 전량 농협에서 공급하도록 함으로써 비료공급은 농협이 전담하게 됐다. 1982년에는 농협에서 주요 화학비료를, 시판상에서 일부 과수원예비료를 담당하도록 비료 공급선이 이원화됐다. 1988년부터는 비료 판매 자유화 시책으로 자유유통이 허용됐다. 농협은 비료공급을 정부 위촉사업으로 전담하던 시기는 물론이고, 시판상과의 이원화 공급 및 판매 자유화 이후에도 유통물량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한편 농협은 1998년 9월 30일 한국종합화학이 보유한 남해화학 주식 45%의 지분 인수 계약을 체결, 기존에 보유한 25%를 포함해 모두 70%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국내 최대 비료회사인 남해화학을 인수했다. 농협은 남해화학을 자회사로 편입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영농자재인 비료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남해화학 인수는 또 농협이 대규모 영농자재 회사를 인수해 직접 경영하는 첫 사례로 후일 농약사업까지 확대하는 기반이 됐다.
농협은 1962년부터 정부 위촉비료를 공급하게 됨에 따라 중앙회에 비료가수금 계정을 설치해 정부 비료사업회계를 농협 자체 회계와 구분 정리했는데, 1977년 정부의 비료계정운영요강 공포에 따라 1978년 1월부터는 비료계정특별회계를 설치했다. 그런데 정부가 비료회사들로부터 구입한 가격보다 농협이 공급하는 가격이 더 낮은 이중가격제를 실시함으로써 발생한 비료계정특별회계의 적자가 해마다 늘어 1987년 누적 적자액이 1조 249억원에 이르렀다. 더구나 정부의 위촉으로 시작됐던 비료사업이 1988년 판매 자유화에 따라 농협 자체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재정 보전이 이뤄지지 않자 누적 적자액은 1995년 최대 2조 6,422억원(이자율이 낮은 한은 차입금 5,700억원 포함)규모까지 증가했다. 정부 예산 반영이 매년 무산되고 적자 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자 농협은 1995년 비료계정에 입체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체계적인 농정활동을 전개해 비료계정 적자를 정부 세계잉여금에서 보전할 수 있게 비료관리법 개정을 이끌어냈으며, 우선 3,088억원의 입체금도 회수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농협은 비료계정 입체금을 회수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 매년 비료계정 누적 적자를 정부 예산에 반영하게 했으며, 2012년 입체금 회수가 완료돼 비료계정특별회계는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