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의 고등학교 출신 비서 찾아내 '자동차엔진 개발' 브리핑 시켜

80년 초, 산업 통폐합 때 정 회장이 중공업을 포기하고 자동차를 선택한 내용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통폐합을 주도했던 국보위에서는 내부적으로 이미 중공업은 현대가 맡고, 자동차는 대우가 맡는 걸로 결정돼 있었다. 다만 대외적으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정주영 회장에게 결정권을 주는 형식을 택했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우에는 중공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현대와 대우를 묶어 중공업과 자동차를 통폐합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국보위의 부름에 정 회장이 갔을 때 그 자리에 대우 김우중 회장이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고 했다. 이미 어떤 움직임이 있었음을 정 회장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형식은 선택이었지만 '자동차를 내놔라'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정 회장은 자동차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국보위의 의중을 뻔히 알면서 그랬다가는 순순히 들어줄 리도 없었고, 온갖 압력도 예상됐다. 예를 들어 산업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설비는 고철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자동차를 지키기 위해 뭐가 필요할까. 여기에서 정주영의 생각은 '엔진'에 꽂혔다.
'우리는 자동차 엔진을 개발하려는 계획이 있다. 대우에 자동차를 넘기면 엔진 개발은 영원히 물 건너간다'라는 요지로 자동차를 지키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실세와 연결고리가 전혀 없었다. 대우 김우중 회장의 연결고리는 '경기고'였다. 김 회장은 52회였고, 국보위에서 경제와 과학을 담당했던 유종렬은 53회, 오명이 54회였다. (이들은 나중에 모두 청와대 경제담당 비서관과 경제과학 비서관으로 일했다)
"현대에는 경기고 출신이 없나?"
마침 비서실에 있던 이익치가 경기고 출신이었다.
"이 비서, 유종렬 씨 아나?"
"경기고 선배입니다."
이익치 비서는 당장 유종렬을 찾아가 인사해야 했다.
"제가 경기 59회입니다."
"현대에도 경기가 있었네."
겨우 연결고리를 찾은 정 회장은 이익치 비서에게 현대자동차와 엔진 개발 브리핑을 하도록 맡겼다. 이 말을 들은 정세영 회장이 깜짝 놀랐다.
"회장님, 자동차는 제가 브리핑해야죠."
"이번에는 빠져. 이 비서가 브리핑해."
회장도 아니고, 사장도 아니고 일개 비서가 이 중요한 브리핑을 한다? 자칫하면 오히려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여기서도 정 회장의 혜안이 돋보였다. 이번 브리핑은 내용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익치 비서에게 브리핑을 다 듣고 난 유종렬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이 애국자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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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