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로 달릴 때 개가 다가서 쓰러졌지만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
서 선수의 우승드라마에 감동한 IOC가 런던 올림픽 참여 허용해

지난달 19일 서울 상암 월드컵 공원 평화 광장에서 제 1회 마포 서윤복 마라톤 대회가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도 성황리에 열렸다.
지금부터 78년전인 1947년 4월 19일. 제 51회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단신인 서윤복 (24살ㆍ키 1m 63cm) 선수가 2시간 25분 39초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육상계는 물론이고 마라톤 선수들에게는 말 그대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세계 최고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 한 서윤복 선수는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는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선수였다.
1947년은 우리나라가 36년간의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이 된지 2년이 지났지만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던 암울한 때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해방이 돼 독립국이 되었지만 북위 38도를 중심으로 남,북이 갈려 신탁통치하에 있었다. 조선체육인들은 해방이 되자 1945년 11월 26일 체육인 총회를 열어 몽양 여운형씨를 11대 조선체육회 회장으로 선임한 뒤 1948년 런던 올림픽 출전을 결의했다.
체육인이라면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며 꿈이다. 올림픽에 출전하려면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회원국으로 각 경기 출전 자격을 가진 국가만이 참가할 수 있게 규정돼 있다.

51회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된지 2년이 지났지만 광화문 중앙청 정부 청사 국기게양대에는 미국의 성조기가 걸려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해방 돼 독립국이 되었지만 미국의 통치를 받는 주권이 없는 나라였던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만방에 주권 국가가 된 것이다. 정부 수립 원년과 건국을 놓고 광복회를 비롯한 학자들 간의 이견으로 늘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서윤복 선수는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 출전할 때 성조기를 가슴에 달아야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서 선수의 감독이던 손기정 코치는 미국의 성조기 부착 강요를 받자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우승을 한 뒤 손으로 일장기를 가려야 했던 국가 잃은 슬픈 역사를 내세워 호소했다. 다행히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할 수 있었다.
무명의 서윤복 선수는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단독 선두로 달리자 세계마라톤계는 놀라움과 함께 경이로운 눈으로 서윤복 선수를 지켜 보았다.
이 때 집에서 나온 개 한마리가 선두를 달리는 서윤복 선수를 물려고 했다. 서 선수는 이를 피하려다 넘어져 무릎를 다쳤다. 운동화 끈도 풀어져 주저 앉았다. 그럼에도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당시 2시간 25분 39초 대단한 기록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발로 세계를 제패했다는 "족패천하"라는 글귀를 써주기도 했다. 마포구청이 뒤늦게 78년 만에 서윤복 선수의 모교인 숭문고와 함께 이대역과 대홍역까지 1.1km 구간을 지난해 서윤복 길로 조성했다.
또한 이화여대 앞 이대 녹지 쉼터를 서윤복 쉼터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리고 4월 19일 제 1회 마포 서윤복 마라톤 대회를 상암 월드컵 공원 평화 광장에서 개최했다. 서윤복 선수가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지 78년 만이다. 마포구청이 뒤늦게나마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마라톤 대회는 물론 여러가지 기념물을 조성한 것은 잘한 일이다.
서윤복 선수의 우승은 우리나라가 1948년 런던 올림픽 출전을 할 수 있는 다리가 됐다. 우리나라가 신탁통치 시절인 1947년 6월 2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IOC 총회가 열렸다. IOC 위원들이 서윤복 선수의 눈물 겨운 세계최고기록 우승에 감동해 우리나라를 임시 IOC 회원국으로 인정해 줘 런던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