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7 23:05 (목)
[김성희의 역사갈피] 중국 최초의 '직업 변호사'
[김성희의 역사갈피] 중국 최초의 '직업 변호사'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5.02.2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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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 기술이 뛰어나 송사를 벌이려는 선비나 평민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와 변호 부탁
선한것 고르고 악한것은 물리치는게 아니라 서로 대항 논리 만드는 작은 변론에 강해
정의보다 자기이익을 위해 법지식을 활용하는' 법꾸라지 '들이 판치는 세태에 떠올라
기원전 6세기 춘추 시대 정나라에 활약한 논변가이자 학자인 등석은 '중국 최초의 직업 변호사'였다.

『쟁경(爭經)』(자오촨둥 지음, 민음사)이란 책이 있다. 10년도 더 전에 나왔는데 중국사에서 설득, 협상, 논쟁의 역사 그리고 그 주역들의 주장을 정리한 책이다. 지은이는 중국 감남대학교 중문과 교수.

여기 등석(鄧析)이란 인물이 나온다. 기원전 6세기 춘추 시대 정나라에 활약한 논변가이자 학자다. 무려 2500년 전 인물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지은이가 등석을 '중국 최초의 직업 변호사'라 소개했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등석은 변론 기술이 뛰어나 송사를 벌이려는 선비나 평민이 끊이지 않고 찾아와 변호를 부탁했으며 심지어 송사가 없는 사민들도 소송 기술을 배우려 들었다.

등석은 큰 사건을 해결하면 옷 한 벌, 작은 소송을 해결하면 바지저고리 하나를 받는 등 변호 비용을 표준화하고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또한 정치 비판하는 꾀를 잇따라 냈다. 당시 '현서(縣書)'라 해서 백성들이 정치 비판을 거리 곳곳에 써 붙이곤 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재상 자산(子産)이 현서 금지 조치를 내리자 등석은 '치서(致書)', 즉 서신을 써서 정치를 비평하라고 꾀를 냈다. 치서를 금지하자 이번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정치 논평을 하도록 했다.

이런 것이 등석의 공이라면 공이다. 이번엔 그의 허물이다. 그는 논변을 '대변(大辯)'과 '소변(小辯)'으로 구분했다. '대변'은 '큰 말', 잘 하는 말인데 그 요체는 '선한 것을 고르고 악한 것은 물리친다(選善退惡)'이다. 반면 '소변'은 '작은 말', 곧 서툰 말을 가리키는데 핵심은 '다른 견해만을 펴서 말로써 서로를 공격하다(別言異道以言相射)'라 했다. 한데 등석은 말과는 달리 '소변' 능했던 모양이다.

어느 부잣집 자제가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시체를 건진 사람이 부자에게 이를 팔려고 했다. 가격 차이로 그 거래(?)가 삐걱거리자 문제의 부호가 등석에게 상담했더니만 "당신 말고는 그 시체를 다른 사람에게 팔지 못할 것"이라며 버틸 것을 권했다. 그러자 시체를 건진 사람은 시신이 썩는 것이 두렵기도 해서 역시 등석에게 조언을 구했다. 등석은 "부호는 당신 말고는 다른 데서 그 시체를 사지 못할 것"이라며 역시 버티기를 권했다. 같은 사안에 대한 다른 결론이 가능한 양가론(兩可論)으로 유명한 '부호색시(富戶索尸)' 고사다.

등석이 이처럼 뛰어난 궤변술을 거듭 발휘하니 마침내 옳고 그른 것을 종잡을 수 없고 법도와 기강이 어지러워졌다. 『여씨춘추』에는 자산이 이를 명분으로 등석을 처형하고 시체를 저잣거리에 버리자 나라가 안정되었다고 쓰여 있단다.

정의보다 자기 이익을 위해 법지식을 활용하는 '법꾸라지'들이 판치고, 정치가 법에 휘둘리는 세태를 맞아 문득 떠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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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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