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3 04:00 (수)
[김성희의 역사갈피] 프랑스 혁명과 바스티유 감옥
[김성희의 역사갈피] 프랑스 혁명과 바스티유 감옥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4.12.3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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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 감옥은 14세기에 세워졌을 때는 파리 동쪽을 방어 하기 위한 요새
시민의 원성 사는 전제 군주의 상징도 아냐…부정한 귀족들 위한 '호화감옥'
습격 이유에 절대왕권의 상징을 무력으로 무너뜨리자는 정치적 의도 없었어
국왕측과 무력충돌 대비해 바스티유에 보관되어 있던 대포 압류하려 들어가
혁명은 때론 개인 혹은 집단 의사와 무관하게 ' 우연과 착오 '로 신화 만들어
프랑스혁명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3대 혁명으로 꼽힌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프랑스혁명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3대 혁명으로 꼽힌다. 1789년 파리 시민이 들고일어나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국민주권과 인권을 내세운 '공화국'이 들어섰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프랑스에선 이를 기념하는데, 이를 상징하는 국경일이 7월 14일이다. 이날 노동자 등 시민 수천 명이 절대왕권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죄수들을 풀어주어 "진정으로 국민적 반란의 절정"을 이룬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한데 이것은 공식적인 역사일 뿐이며 실은 진실과 허위, 과장과 희망이 뒤섞인 '신화'에 불과하단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파헤친 『상식의 오류사전 747』(발터 크래머 외 지음, 경당)에는 바스티유 함락에 관한 이야기가 실렸다.

우선 바스티유는 당초 감옥이 아니었다. 14세기에 세워졌을 때는 파리 동쪽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다. 여기에 죄수들이 수감된 것은 루이 13세 때부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바스티유가 시민의 원성을 사는 전제 군주의 상징이라 하기도 힘들었다. 평소 50여 명의 죄수가 수감되어 있었는데 귀족 사기꾼이나 사드 후작 같은 부정한 귀족들을 위한 호화 감옥에 가까웠다. 수감 귀족들은 시종도 거느리고 외출도 하는 등 보통 파리 시민보다 안락한 생활을 했다. 그나마 1789년에는 수감자가 불과 7명이었는데 이들 중 양심수는 한 명도 없었다. 잡범뿐이었다.

습격 이유도 절대왕권의 상징을 무력으로 무너뜨리자는 분명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바스티유에 보관되어 있던 대포를 압류하는 것이 시민들의 목적이었다. 루이 16세가 시민에 호의적이었던 네케르 재무장관을 해임하면서 국왕 측과 시민들 간에 무력충돌 기운이 무르익으자 파리 시민들이 자위를 위한 무기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처음부터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당시 바스티유는 상이군인과 노병 110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드 로네 사령관과 파리 시의회 사절단 간에 협상이 이루어져 평화롭게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단지 시의회 사절단이 물러간 후 그들을 따라왔던 많은 시민이 수비대의 경고를 아랑곳하지 않고 성안으로 밀고 들어오면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수비대가 성을 넘겨주기로 한 이날 오후 5시경까지 사망자는 10여 명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들이 폭도로 돌변하면서 로네 사령관과 많은 수비대 병사들이 살해되었다.

이렇게 우연이 겹치면서 일어난 '바스티유 습격'의 파장은 컸다. 루이 16세는 7월 17일 반란의 지휘부였던 파리 시청을 직접 방문해 '항복'했으며, 7월 12일의 '친위 내각'은 뒤집어지고 수많은 왕족과 귀족들이 망명했다. 바야흐로 혁명의 수레바퀴가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혁명'이 때로는 개인 혹은 집단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 우연과 착오에 의해 또는 소망의 투영으로 '신화'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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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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