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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훈의 세상만사]① 여사란 무엇인가
[이만훈의 세상만사]① 여사란 무엇인가
  • 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 mhlee108@hanmail.net
  • 승인 2024.11.0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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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女史)는 고대 중국서 왕후(王后)의 예지(醴胑)를 관장하는 여자 벼슬 아치를 일컫던 말
일제 거치며 우리나라서도 경칭으로 자리 잡았고 영부인 '프란체스카'에 여사란 호칭 첫 사용
여사타령서 '여사'는 사실 죄가 없어…'의혹' 풀려도'여사'란 말이 존칭 의미 잃지 않을까 걱정
'여사'란 표현은 일제를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경칭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사진(1959년 제9회 어버이날 한복을 입은 어린이가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카네이션을 전달하는 모습)=서울역사박물관/이코노텔링그래픽팀.

#요즘 눈을 뜨면 나라가 온통 두 여자 얘기로 왁자하다. 한 명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이고, 다른 한 명은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이다. 한 켠은 기분 좋고 희망을 주는 얘기이고, 다른 켠 얘기는 국민을 짜증나게 하고 때론 분노하게 한다. 독가스 같다. 한 작가는 노벨문학상이라는 엄청난 성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다"며 "우리는 좀 더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주목받는 것을 피하고 있다.

반면 다른 편의 주인공은 나대지를 못해 안달이라도 난 것 마냥 오지랖 넓게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거나 낸 흔적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연배도 비슷한 여인네들이지만 향기가 이리도 다를 수 있을까. 그런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한 작가 얘기는 슬그머니 잦아들고 오로지 그놈의 여사 타령뿐이다. 그토록 수십 년 동안 학수고대하던 노벨상 스토리도 쌩쌩한 권력의 '치맛바람' 앞에선 한낱 등잔불이든가. 자나 깨나 그저 여사, 여사, 여사-. 도대체 '여사'가 뭣이관대 이 난리일까?

#여사(女史)는 고대 중국에서 왕후(王后)의 예지(醴胑)를 관장하는 여자 벼슬아치를 일컫는 말이었다. 일종의 여자 서기(女子書記) 로 왕후를 따라다니며 그 언행을 기록하게 했는데, 만약 왕후의 과오를 기록하지 않으면 처형당하기도 했다. 진(晉)의 장화(張華)가 '여사잠(女史箴)'을 지었고 이를 동진(東晉)의 고개지(顧凱之)가 그림으로 그렸는데 이를 베낀 '여사잠도권(女史箴圖卷)'이 전해진다.

이 같은 여사의 직무가 나중에는 황제나 왕과 동침할 비빈들의 순서를 정해주는 일로 확대돼 비빈들에게 금, 은, 동 등으로 만든 반지를 끼게 하여 황제나 왕을 모실 순서를 정했고, 생리 중인 여성은 양 볼에 붉은색을 칠하게 하는 등 비빈들의 건강 상태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실질적인 궁중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면 때문에 이후 여사란 호칭을 잘 쓰지 않았는데 그래도 간혹 여류명사의 호칭에 사용되기도 했다. 청나라 초 화훼화(花卉畵)로 이름을 날린 운빙(惲冰) 역시 난릉여사(蘭陵女史)라고 자신의 호에 '여사'를 붙여 사용했다. 하지만 점차 후대로 내려오면서 '여사(女史)'란 말이 술집의 포주나 창녀를 뜻하는 말로도 격하전의(格下轉意)되는 바람에 거의 사명되다시피 했다.

이에 따라 여사의 한자를 '女士'로 바꿔 쓰기도 했는데 명말, 청초의 여류 화가로 화조(花 鳥)를 잘 그린 이인(李因·1616 ~ 1685)이 감산여사(龕山女士)란 호를 썼다. 

#일반적으로 '女史'는 결혼한 여자한테 붙이는 존칭이거나,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로 주로 이름아래 붙여서 쓴다는 게 사전적 의미이다.

일찍이 일본에선 개화하면서 결혼한 부인의 성씨 뒤에 '여사'를 존칭어로 붙여 썼는데 학계에선 조선에서 일제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한 1910년 전후로 우리나라에도 쓰이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 1854~1931)이 저술한 '여사수지(女史須知)'란 책이 1907년 간행됐고, 곽찬(郭燦)이 중국 상고부터 청(淸)나라까지의 중국 여류문인 500여 명과 한국 여류문인 50명, 일본 여류문인 20명 등의 시(詩) 5050여 수를 담아 편찬한 책의 이름도 '동양역대여사시선(東洋歷代女史詩選)'으로 1908년 (隆熙 3)간행됐다.

1911년 11월에 결성된 전국 규모의 한시 시사(詩社)인 '신해음사(辛亥吟社)'에는 여사(女史) 담도(潭桃), 여사 구소(九簫) 이봉선(李鳳仙), 여사 소춘풍(笑春風), 여사 음송(陰松), 여사 정작앵(鄭雀嫈), 승려 혜정(慧定), 여사 정숙자(鄭淑姿), 여사 정현(丁絢) 등 한국 여성시인은 물론 중화국인(中華國人)인 여사 초서(楚西) 오자란(吳自蘭)과 초남(楚南) 오자혜(吳自蕙), 15세 여사 채현하(蔡玄霞) 등 700여명이 참여해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 한시 문단의 마지막 세대로 조선·일본·중국 등을 오가며 개화기의 모습을 한시로 표현하였던 소파(小坡) 오효원(吳孝媛·1889~?)도 자신의 시집 이름에 '여사'를 넣어 《소파여사시집》이라고 했다. 이밖에 1932년 조각가 문석오가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백선행 여사(白善行女史)'의 흉상을 제작하였다.

일제 때의 대중잡지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삼천리(三千里)》의 자매지로 1932년 10월 1일 창간된 여성잡지 '만국부인(萬國婦人)' 의 칼럼〈만국부인 싸롱〉에 '절세(絶世)미인 구성안'과 '당대 호남(好男) 구성안'은 장안의 큰 화제를 모았는데 전자에 여러 명의 '여사'가 등장한다. '…이(齒)는 박인덕(朴仁德) 양의 이로, 코는 송계월(宋桂月) 양의 코로, 눈썹은 황귀경(黃貴卿) 여사의 눈썹으로, 눈은 장덕조(張德祚) 양의 눈으로, 귀는 최정희(崔貞熙) 여사의 귀로, 입은 현송자(玄松子) 양의 입으로 (이상으로 얼굴을 만든 다음에), 손은 정칠성(丁七星) 여사의 손으로, 발은 김활란(金活蘭) 씨의 발로, 키는 강숙열(姜淑烈) 여사의 키로, 다리는 최승희(崔承喜) 여사의 다리로, 체격은 김원주(金源珠) 양의 체격으로, 목소리는 박경희(朴慶姬) 여사의 목소리로…'

이렇듯 '여사'란 표현은 일제를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경칭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광복 이후에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영부인에게 '프란체스카 여사'란 호칭을 함으로써 그 이후 대통령의 아내에 대한 경칭의 관용으로 사용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59년 가수 권혜경이 부른 '이 여사의 노래'(조병화 작시 김성태 작곡)가 있는 가하면 1967년 서울신문에 연재를 시작해 1994년까지 무려 27년간이나 시사만화 '카투리 여사'와 1970년 '여성중앙'에 연재돼 인기를 끈 길창덕(吉昌德·1930~2010)화백의 '순악질 女史'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사가 등장해 친근한 용어가 됐다.

#요즈음 난리치는 여사타령에서 '여사'는 사실 죄가 없다. 대통령 영부인이라는 어마어마한 위호(位呼)에 덧붙여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 난리의 주인공한테 절대로 여사란 호칭을 붙이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시끄러운 게 대부분 '범죄 의혹'과 관련된 것이니-. 혹여 이 사태가 해소된다 해도 '여사'란 말이 존칭의 의미를 잃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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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이코노텔링 이만훈 편집위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 다니다 1982년 중앙일보에 신문기자로 입사했다. 주로 사회부,문화부에서 일했다. 법조기자로 5공 초 권력형 비리사건인 이철희ㆍ장영자 사건을 비롯,■영동개발진흥사건■명성사건■정래혁 부정축재사건 등 대형사건을, 사건기자로 ■대도 조세형 사건■'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유명한 탄주범 지강현사건■중공민항기사건 등을, 문화부에서는 주요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들을 시리즈로 소개했고 중앙청철거기사와 팔만대장경기사가 영어,불어,스페인어,일어,중국어 등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엔 초짜기자임에도 중앙일보의 간판 기획 '성씨의 고향'의 일원으로 참여하고,1990년대 초에는 국내 최초로 '토종을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종자전쟁에 대비를 촉구하는 기사를 1년간 연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토종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 대한상의를 비롯 다수의 기업의 초청으로 글쓰기 강의를 했으며 2014인천아시안게임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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