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차량 배출구 거푸집 높이에 맞춰 개조해 '주베일 항만공사' 1년3개월 단축해
정 회장, ' 생각하는 불도저 '로 불려 … 현장 근로자에 관대했지만 잘못하면 불호령
이런 일도 있었다. 주베일 항만 공사가 워낙 대규모다 보니 방파제 공사에 쓸 대형 콘크리트 블록만 16만 개가 필요했다.
하루에 최대 200개씩 만들어도 800일이나 걸렸다.
정 회장이 현장에 가서 보니 레미콘 트럭에서 콘크리트를 바로 거푸집에 넣는 게 아니라 크레인 5대가 동원돼 일일이 버킷에 담아 퍼넣고 있었다. 당장 현장소장을 불렀다.
"왜 콘크리트를 직접 거푸집에 넣지 않는 거야?"
"레미콘 트럭의 콘크리트 배출구하고 거푸집 높이가 맞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정 회장이 폭발했다.
"이런 빈대보다 못한 놈아!"
(정 회장이 인천 부두에서 막노동할 때 노동자 합숙소는 빈대 지옥이었다. 꾀를 내어 밥상에 올라가서 자기 시작했는데 잠시 뜸하더니 곧 밥상 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물었다. 다시 머리를 써서 밥상 다리 네 개를 각각 물 양재기에 담가놓고 잤다. 이번에는 올라오지 못하겠지 했는데 며칠 후부터 또 물었다. 이상해서 살펴보니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장에 올라간 뒤 사람 몸 위로 떨어져 물더란다. 정 회장은 장애물을 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빈대를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연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고 욕하곤 했다)
"레미콘 배출구를 거푸집 높이에 맞춰 개조하면 될 거 아냐." 말은 쉬워 보이지만 레미콘 트럭을 개조한다는 발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복잡한 설계도와 여러 공정을 거쳐 완성된 특수 차량이다. 가격도 비싸다. 더구나 고장 나지 않은 멀쩡한 차를 개조한다는 생각은 보통 사람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데 정 회장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해결해 버렸다. 레미콘 배출구를 개조하자 당장 하루 생산량이 200개에서 350개로 늘었다. 공사 기간이 1년 3개월로 줄고, 크레인을 쓰지 않아 작업 인력도 줄었다.
정 회장은 "머리는 그냥 얹혀 있는 게 아니야. 생각하라고 달린 거야"라며 임직원들을 다그쳤다. 요즘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라는 우스갯소리는 이미 50년 전에 정주영이 했던 말이다. 현대 임원들은 정 회장에게 '생각하는 불도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정 회장이 평소에 가장 많이 질책한 순서는 회장-사장-임원, 그리고 관리직원 순이었다. 질책할 때 항상 따라붙는 말이 "생각 좀 해봐"였다.
현장 근로자들에게는 거의 만점을 줬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아무리 현장 근로자라 해도 멍청하게 일할 때는 여지없이 큰소리가 나왔다. 자기가 쓴 파이버를 벗어서 근로자의 머리를 때린 적도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였다. 산을 깎아내는 작업을 하던 불도저 기사가 밑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흙을 떠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정 회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저놈 누구야. 저놈 데리고 와."
갑자기 회장의 호출을 받은 불도저 기사가 영문도 모르고 엉거 주춤 섰는데 느닷없이 회장이 파이버를 벗어 머리를 때렸다. 비록 쓰고 있던 파이버 위를 때린 거지만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봐, 불도저는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면서 작업해야 하는 거야. 밑에서 위로 깎으면 기름도 두 배로 들고, 능률도 떨어지잖아. 생각 좀 해봐.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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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