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주베일 공사 때 10층 높이 철구조물 울산서 만들어 바지선으로 사우디까지 운반해 공기단축

정주영 회장은 고정관념을 깨는 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아니다. 그게 천부적인 자질인지, 아니면 계속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하고 생각한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정 회장은 수시로 임원들에게 "이봐. 당신들 많이 배웠잖아. 그런데 왜 그래? 고정관념이 사람을 멍청이로 만드는 거야"라고 질책하곤 했다.
현대의 수많은 전문가와 기술자들이 '이론적으로' '현실적으로' '경험상' 안 된다고 했다가 번번이 정 회장에게 깨진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다.
정 회장은 그 이유가 고정관념에 있다고 봤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고정관념이 있으면 위기나 난관에 부닥쳤을 때 형편 없이 무능하게 된다고 믿었다. 정 회장은 스스로 '고정관념 깨기 전문가'로 자부했다.

정 회장의 고정관념 깨기는 '공기 단축'이라는 신념과 맞물려 있다. 정 회장은 유독 시간에 집착했다. '시간은 돈'을 넘어 '시간은 생명'이라고까지 강조했다. 인건비나 자재비를 아끼는 게 아니라 공사 기간을 줄이는 게 곧 돈을 버는 거로 생각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공사 때가 압권이었다. 10층 높이의 철 구조물을 울산에서 만들어 바지선으로 사우디까지 운반한다는 아이디어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무모함이었지만, 그걸 성공함으로써 공사 기간을 엄청나게 단축해버렸다.
울산조선소를 지을 때다. 아직 조선소 독dock이 완성되기 전이었다. 독이 없으니 골리앗 크레인을 설치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대형 엔진이나 블록 등을 인력으로 옮겨야 했다. 작은 조립품이야 특수 트레일러를 동원해서 해결했으나 선수船首 부분 조립이 끝난 1호선을 12m 깊이 바닥까지 운반하려면 골리앗 크레인을 설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골리앗 크레인 설치하려면 얼마나 걸려?"
"3개월 정도 걸립니다."
"그럼 그때까지 손 놓고 기다려야 하는 거야?"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기술적으로 그렇다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모든 기술자의 생각이 그랬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3개월을 허비하면 선박의 납기를 맞출 수가 없었다. 선주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하면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신용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위기였다.
이때쯤이면 조금은 무식해 보여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정 회장의 머리에서 나온다.
"그러면 조립한 블록을 실은 트레일러를 반대편에서 불도저로 당겨서 감속을 주면 경사로를 천천히 내려갈 수 있어 없어? 이론적으로 가능해 불가능해?"
기가 막힌 기술자들이 대답을 못 하자 정 회장의 채근이 이어졌다.
"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냐고."
"가능합니다."
그렇게 골리앗 크레인 없이도 쉽고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됐다.
조립 공장을 지을 때였다. 기둥을 세우는 문제로 정 회장과 전문 기술자들이 또 부딪쳤다. 기술자들은 굵은 기둥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계상 울산지역에 태풍이 불 때 최대 풍속이 초속 60m였으므로 그 강풍을 견뎌내려면 그 정도 강도의 기둥을 세우는 게 당연했다. 전문가들의 주장에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정 회장의 다음 질문에 모두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공장 벽은 뭘로 할 거야?"
"슬레이트로 합니다."
"그럼 슬레이트 벽은 초속 몇 m 바람까지 견딜 수 있어?"
말문이 턱 막혔다.
"왜 대답을 못 해? 초속 몇 m까지 견딜 수 있냐니까?"
"초속 40m까지는 견딜 겁니다."
"그럼 그 이상 바람 불면 남는 건 뭐야?"
"기둥입니다."
"다 날아가고 기둥만 남는데 그거 남기려고 굵은 기둥 박자는 거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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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