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이슬 디자이너 방탄소년단이 역동적인 춤 출 수 있는 '한복' 을 만들어 이를 본 세계인들 열광
세계화를 향한 한복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우리 옷의 세계화라는 기적을 어떻게 만들지 궁금
추석 연휴 마지막 날, 9월 18일 오후 3시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 1000여명의 인파가 모였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림과 동시에 한복의 세계화를 꾀하기 위한 행사였다. 섭씨 30도를 넘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거창한 궁중 의상부터 개량 한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복을 입고 참여했다. 둘래둘래 20~30여명씩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도 하였다. 주최 측(한복세계화포럼 대표 정순훈)이 놀랄 정도의 대성황이었다. 우리네 '전통 옷 사랑'의 현장이었다.
'한복의 세계화' 시도는 1986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패션쇼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양장과 한복, 두 파트로 나눈 쇼로 한국 정부가 주관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했다. 한복이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3년 3월, 한복 예술가인 고(故) 이영희(李英姬, 1936~2018년) 선생이 프레타 포르테(프랑스 기성복 쇼 prêts-à-porter)에 한복을 올리면서부터다.
이 쇼를 통해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이 세계에 전파됐다. 한복은 이듬해 연이어 프레타 포르테에 참가하면서 전통을 품으면서 세계인이 아름답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탄생한다. 바로 '바람의 옷'이었다.
이영희 디자이너의 바람의 옷은 프랑스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모던하면서도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변화무쌍하게 보여주는 옷이었다.
프랑스 유력 신문 <르몽드> 수석기자인 로랑스 베나임이 '바람을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 데 모은 옷'이라고 평하면서 '바람의 옷'이라고 이름 붙였다.
프랑스인들을 사로잡은 이 한복은 움직임에 따라 바람에 나부끼듯 아름답게 나풀거리는 한복 긴치마였다. 저고리도 없이 치마로 가슴만을 가린 채 어깨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맨발로 무대에 오른 '드레스(?)'였다.
바람의 옷이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감동의 박수갈채를 받은 것과 달리 고국에서는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통적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니 망측하게도 있을 수 없는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공격까지 받았다.
적잖은 논란과 고민을 뒤로 하고, 한복은 점차 세계적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이는 우리나라 국격이 높아지는 것과 괘를 같이 하였다. 힐러리 클린턴과 미셸 오바마 등 미국 대통령 부인, 조지 부시 대통령 등 정치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한복을 입어보고 감탄사를 외쳤다.
패션 외교를 벌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역대 대통령 부인들의 한복 차림도 한복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일회성 단발적 효과에 그치는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 한복이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박수갈채를 받기는 해도 세계화의 길은 멀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화의 벽을 깨겠다고 과감히 도전하는 젊은 디자이너가 등장하였다. 1987년생 MZ세대 황이슬 디자이너다. 나이 스무 살에 한복이란 신세계를 만나 '매일 입어도 좋은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그리고 치렁거리지 않아 간편하고, 막 빨아서 입을 수 있는, 그런 한복을 만들어냈다. 2018년 그룹 방탄소년단(BTS)에게 무대 위에서 역동적인 춤을 출 수 있는 옷을 만들어 주었고, 이를 본 세계인들을 열광케 하였다. 바야흐로 '모던 한복의 세계화'에 앞장선 것이다. 물론 그녀의 모던 한복을 과연 우리 옷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 한복산업 시장은 연간 7000억원 정도로 전해진다. 작은 규모다. 황이슬 디자이너는 2015년에 창업하였다. 2022년 매출이 27억8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99% 성장했다. 작지만 눈부신 발전이다. 모던 한복 세계화의 최전선에 선 그녀는 지금 미국과 중동 쪽에 한복 가게를 열 궁리를 하고 있다. 황이슬 디자이너 외에도 한복 세계화에 정열을 쏟는 이들이 문화예술 여러 분야에 포진해 있다.
세계 어느 민족이든 고유 전통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그들의 민속 의상을 세계화하진 못했다. 재미있는 현상은 저개발국들이 개발도상국 대열에 이르면 자신들의 고유한 민속 의상을 벗어버리고 만국 통용의 '서양복'을 입는다는 점이다. 물론 서양복은 그 어느 나라의 민속복이 아니어서 딱히 주인이 없다. 그럼에도 세계 패션은 주인이 불분명한 '서양복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왜 그럴까. 현대생활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서양복도 삶의 형태가 달라짐에 따라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비춰볼 때 과연 우리 옷, 한복의 세계화가 성공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도 '전통의 고수와 현대화'의 양날 속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곳곳에 존재하는 한, 세계화를 향한 한복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인은 그동안 많은 '기적'을 이뤄왔다. 그 힘이 우리 옷의 세계화라는 기적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