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단지 부지 메우느라 애쓰자 "돌멩이로 벽 쌓고, 버리 려고 쌓아 놓은 파일 깔아"
임원은 단잠자면 안 된다며"머릿속에 생각을 넣어놓고 자야 복잡한 문제해결"강조
1980년대 충남 서산에 석유화학단지를 개발할 때다. 공장 지역은 둑을 쌓아 만든 곳으로 해수면보다 낮았다. 공장을 지으려면 흙과 돌을 가져와서 메워야 했다.
하필이면 현대와 삼성의 공장이 철망 하나 사이로 붙어있었다. 삼성은 역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땅을 메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반듯한 공장 대지가 만들어졌다.
건설은 현대가 삼성보다 한 수 위였다. 기술이야 비교할 수 없었지만, 문제는 비용이었다. 당시 총책임자는 현대건설 이내흔 상무(후에 현대건설 사장)였다. 이 상무는 벽을 10m 정도 쌓고, 땅을 메우는 비용이 너무 많이 나와 정 회장에게 보고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보고를 받은 정 회장은 "그래? 어디야? 따라와 봐" 하더니 성큼 성큼 앞장서서 걸었다.
공사장 부지는 서산만 갯벌이었다. 지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갯벌에 수만, 수십만 개의 파일을 박았다. 깊이도 다르고, 지반 형태도 달라서 파일의 높이를 일정하게 맞추려면 들쭉날쭉한 부분을 다 잘라야 했다. 잘라낸 파일이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산업 폐기물이다. 이것들을 처리하는 비용만 수억 원이었다.
쓱 둘러보던 정 회장이 입을 열었다.
"비~영신."
이내흔 상무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욕먹을 일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을 이따위로 하면서. 그동안 얼마를 잡아먹었어?"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이 상무에게 지시가 떨어졌다. "이봐. 돌멩이로 벽 쌓고, 여기 버리려고 쌓아놓은 파일들을 눕혀서 깔아 봐."
기가 막혔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하다니.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해법이었다. 한 번만 둘러봐도 회장의 눈에 보이는 게 왜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하기야 정주영 회장은 이미 서산 간척지 물막이 공사 때 유조선을 가라앉히는 기상천외한 공법을 생각해낸 기인이었다.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유조선 공법'이다. 그러니 폐기물 파일 재활용 정도의 아이디어는 정 회장에게는 매우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까.
서산만은 물살이 세서 물막이 공사가 불가능했다. 1만 톤짜리 돌 수십 개가 필요했다. 결국 농업진흥공사도 포기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정 회장을 불렀다. '하면 된다'라는 신념이 묘하게 일치하는 두 사람이었다. "정 회장, 한 번 해보겠소?"
이 말이 정주영의 도전 정신을 흔들었다.
"해보겠습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철수한 장비들이 마침 서산에 있었다. 정 회장의 믿는 구석이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현장의 강한 반발에 부닥쳐야 했다. 현대 건설의 토목 전문가들은 일제히 "안 됩니다"라고 외쳤다. 이론으로나 기술로 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또 불같이 화를 냈다. "이봐, 해봤어? 생각 좀 해봐." 다음 날 정 회장이 콧노래를 부르며 나타났다. 직원들은 어제 그렇게 화를 내던 회장이 이상해졌다고 수군댔다.
"해체하는 배, 어디 있어?"
배라니 무슨 배? 직원들은 뜬금없는 질문에 허둥댔다. 인천제철은 폐선을 사서 해체한 뒤 고철을 재활용했다. 그때 마침 해체하기 위해 인천제철로 가던 유조선이 있었다. 그 얘기였다.
"그 배, 서산으로 돌려."
측근들은 정 회장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빠질 때마다 아이디어가 샘솟듯 솟아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정 회장은 평소에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무슨 아이디어를 내면 즉흥적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야. 절대로 즉흥적인 생각이 아니야."
정 회장은 특히 임원들을 엄청나게 야단쳤다.
"임원은 단잠을 자면 안 돼. 항상 머릿속에 생각을 넣어놓고 자야 해. 계속 생각하다 보면 결국 중요한 것만 남게 되거든. 그러면 복잡하던 문제도 단순 명확하게 된단 말이야."
결론이 나면 곧바로 행동에 옮겨 몰아붙이는 정 회장의 스타일은 결국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한 결과다. 실제로 "정 회장의 가르침대로 훈련하니 비슷하게 되더라"고 고백한 현대 임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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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