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0 00:55 (화)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60) "핵보다 무서운게 배고픔"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60) "핵보다 무서운게 배고픔"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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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9.03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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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위원장,'불편한 이야기' 나오는 자리에는 장군들 배석 시켜
군부 시각 바꾸려는 '의도'…아버지를 대하듯 정주영 회장에 깍듯
"미군이 계속 남아 북과남이 전쟁 하지 않게 해야"란 뜻밖 발언도

정 회장은 동행했던 이익치 회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 회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외람되지만 한마디로 남측에는 정주영 회장이 있고, 북측에는 정주영 회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주영, 이병철 같은 기업인이 남측의 경제발전을 이끌었습니다. 핵보다 무서운 게 배고픈 겁니다. 또 하나는 지정학적으로 북측은 중국, 소련과 가깝게 지냈고, 남측은 미국, 일본과 가깝게 지냈다는 겁니다. 잘 살려면 부자나라와 가까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만든 물건을 사줄 수가 있죠. 미국과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인데 중국과 소련은 아직 가난한 나라입니다."

어찌 보면 불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는데 김정일은 그런 기색 없이 경청했다. 배석자들은 열심히 받아적었다. 김 위원장은 그런 자리에 꼭 장군들을 배석시켰다고 한다. 아마 군부의 시각을 바꿔놓으려는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김 위원장이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북측은 미군이 남측 지역에 주둔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 다."

정 회장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미군이 계속 남아서 북과 남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선 반도의 평화가 유지됩니다."

정 회장은 김정일의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매우 고무됐다고 한다. 97년에 대북 사업 재개를 추진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으니까.

김정일은 정 회장을 깍듯하게 대했다. 너무나 예의 바르고 공손해서 마치 '자식이 아버지를 대하듯'하는 인상까지 받았다고 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정 회장을 가운데 세우고 자신이 왼쪽, 정몽헌 회장을 오른쪽에 서게 했다. 사진=현대그룹.

정 회장은 이날 이후 북한도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안정적인 경제교류가 가능해진다면 현대가 할 일이 더 많아질 거라는 기대감도 더 커졌다.

정주영과 김정일은 서로 좋아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결정하기까지는 신중하게 검토하지만, 일단 결정하면 전광 석화처럼 해치우는 스타일이 너무 비슷했다.

김정일은 정 회장을 깍듯하게 대했다. 너무나 예의 바르고 공손해서 마치 '자식이 아버지를 대하듯'하는 인상까지 받았다고 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정 회장을 가운데 세우고 자신이 왼쪽, 정몽헌 회장을 오른쪽에 서게 했다. 항상 "정주영 회장 선생"이라고 불렀고, 정 회장이 방북 기간에 좀 불편하다 싶으면 수시로 스케줄을 변경할 정도로 정 회장을 챙겼다. 냉면을 좋아하는 정 회장의 식성까지 파악해서 매일 아침에 냉면을 대접할 정도였다. 그러니 송호경 아태위 부위원장은 정 회장에게 극존칭을 썼다.

정 회장 역시 김정일 위원장을 매우 좋아했다. 특히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에 대한 그의 지극한 효심을 부러워했다. 유교의 엄격한 교육을 받은 정 회장은 부모 3년 상을 실천한 그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은듯했다. 내심 자기 자식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공식 자리가 끝나면 북한 관계자들이 현대 임원들을 찾아와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았다. 물론 주로 돈(달러)이었다. 현대 임원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매우 곤란하고 불편했다.

정 회장은 임원들이 불편해하자 "웬만하면 들어줘라. 이 사람들 얼마나 어렵겠나"라고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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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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