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시장서도 집단의 힘을 빌리고 싶어해 밴드왜건 효과에 기대려는 성향 나타나

가난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당장 먹을 것을 살 돈도 없어 마지막 남은 재산인 당나귀를 팔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자신은 당나귀의 고삐를 쥔 채 시장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걷는 도중에 이 광경을 본 어떤 남자가 어린 아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 놈이 자기만 편하게 당나귀를 타고 아버지를 걷게 하다니 아주 불효막심한 놈이군."
이 말을 듣고 놀란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당나귀에서 내려놓고 자신이 당나귀를 타고 갔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당나귀에 탔으니 어린 아들이 불효막심한 놈이란 욕은 안 듣겠지 하고 안심하고 길을 갔습니다.
잠시 후 어떤 남자가 이 광경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비란 작자가 어째 부모답지 않게 어린 아들을 걷게 하나. 어린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자기가 걸어야지. 그게 부모 아닌가?"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놀라 당나귀에서 급히 내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에게 욕을 듣기는 싫은데 아버지가 당나귀를 타고 가도 욕을 듣고 아들이 당나귀를 타고 가도 욕을 들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고민 끝에 아예 둘 다 당나귀를 안 타고 아버지가 당나귀의 고삐만 잡은 채 아들과 함께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두 부자가 당나귀를 데리고 걸어가는데, 잠시 후 지나가던 여자가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호호. 세상에 별 희한한 바보들도 다 봤네. 둘 다 당나귀를 타고 가면 될 텐데 당나귀와 함께 걸어가다니. 바보 아빠와 아들이 따로 없네. 호호호."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또 놀라서 여자가 말한 대로 당나귀에 아들을 태우고 자신도 당나귀에 올라탔습니다. 아버지는 '이제는 욕할 사람이 없겠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당나귀를 타고 시장을 향해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며 수군댔습니다. "아니, 당나귀에 두 명이나 타고 뭔 짓이래? 당나귀가 힘들어서 제대로 걷지고 못하는군. 애비나 자식이나 못돼먹었어."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고민 끝에 자신과 이들이 당나귀를 혹사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긴 막대기에 당나귀 네 다리를 묶은 후 아들과 함께 이를 메고 걷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걷다가 시장 가는 길에 있는 개울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아버지와 아들은 힘들게 당나귀를 메고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건넜습니다.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마을 여자들이 이 광경을 보며 모두 어이없어했습니다.
"아니 저게 뭔일이야? 당나귀를 어깨에 메고 개울물을 건너는 사람은 처음 보네."
"완전히 미쳤어. 당나귀를 타고 건너면 될걸." 마을 여인들의 웃음과 비난을 들은 아버지는 너무 부끄럽고 어깨에 멘 당나귀 때문에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린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 당나귀가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치자 두 부자는 그만 쓰러져 개울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틈을 타 당나귀는 개울물을 건너 도망쳐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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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귀'들의 행진= 우리 속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말에 이끌려 의도한 것과 다른 행동을 한다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당나귀를 팔러 시장에 가는 아버지도 친구 따라 강남을 가다 낭패를 당했습니다. 줏대를 잃고 주위에서 비판하는 대로 따르다 그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당나귀를 잃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 옳은 길을 가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의 한마디에 쉽게 휩쓸리고 맙니다. 하다못해 무언가를 결정할 때 나의 생각과 판단보다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당나귀를 팔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우화는 경제학의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를 잘 설명합니다. 밴드왜건 효과란 어떤 선택이 대중적인 유행과 관련이 있다고 인식되면 옳다고 믿는 경향을 말합니다. 밴드왜건이란 축제나 행사의 행렬 맨 앞에 위치해 악대를 이끄는 차량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때 금광을 발견하면 밴드왜건이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며 사람들을 이끌고 금광으로 향하곤 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밴드왜건 효과를 '악대차 현상', '쏠림 현상'이라고도 합니다.
밴드왜건 효과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선거판입니다. 좋은 공약을 내세운 정치인보다는 밴드왜건을 몰고 다녀 더 많은 사람이 그 뒤를 따르는 정치인이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진지하게 공약 같은 것을 비교하거나 따질 필요 없이 선거에서 이길 것 같은 후보, 이미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후보가 정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선거에서 중요한 건 후보의 인품이나 공약이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얼마나 높으냐가 관건이라는 겁니다. 함량 미달의 후보라도 선거에서 이기면 그를 지지한 유권자는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될 사람 찍어주자'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밴드왜건 효과입니다.
실제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밴드왜건이 당선에 도움을 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정치인들은 밴드왜건을 동원하며 유세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1920년대 들어 밴드왜건은 사라졌고, 'Jump the Bandwagon'이란 말은 시류에 편승하거나 대세를 따른다는 의미로 남았습니다. 밴드왜건 효과를 처음 학문적으로 접근한 인물은 미국의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Harvey Leibenstein, 1922~1994)입니다. 그가 1950년 발표한 논문에서 밴드왜건 효과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남이 사면 덩달아 사고 싶어지는 마음= 밴드왜건 효과의 원인은 무엇보다 인간의 '동조현상(conformity)' 때문입니다. 동조란 집단의 묵시적 압력 혹은 규범 때문에 개인이 자발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집단이 기대하는 가치관이나 행동에 따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동조는 객관적인 판단 기준이 부족할 경우 집단의 일관된 행동을 사회적 기준이라고 보고, 이를 따름으로써 안전한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유행하는 옷을 앞다투어 구매하며 멋있다고 느끼고, 처음 등산할 때 앞서가는 등산객을 따라 산을 오르며, 줄이 아주 긴 음식집은 맛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적응을 위한 동조는 객관적인 판단 기준이 충분하더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집단에서 배척당하지 않고 타인의 호감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척을 방지하기 위한 동조현상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에서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할수록 남들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행위를 꺼리고 집단 압력에 굴복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밴드왜건 효과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시류에 편승한다, 대세를 따른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아서 자신도 그런 의견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빠르고 쉽게 결정을 내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참고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이 효율적으로 행동하게 도움을 줍니다. 또 유행에 동조함으로써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심리도 작용합니다. 이는 사회적인 소속감과 인정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스트레스를 줄여줍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정보를 따라 상품을 구매하는 현상은 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밴드왜건 효과는 단점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을 잃어버리거나 감추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해치고 비판적 사고력을 약화합니다. 타인과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유행에 동조하는 심리는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무시하고 타인의 영향력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또 필요치 않은 소비를 유발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주식투자자의 밴드왜건 효과= 밴드왜건 효과가 강하게 작용하는 곳은 주식시장입니다. 주식시장은 잠시라도 방심을 허용치 않는 위험한 곳이죠. 투자 손실은 일상사이고, 어렵게 쌓은 공든 탑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기도 합니다. 개인들은 혼자 이런 위험한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 집단의 힘을 빌리고 싶어 합니다. 밴드왜건 효과에 기대려고 하는 것이죠. 위험이 닥쳐도 여러 사람이 함께 있으면 안정감이 생깁니다. 위험이 언제 어느 곳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선 남들을 따라 행동하는 게 살아남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또 집단이 가진 정보에도 귀를 기울립니다.
여행을 할 때 괜찮은 식당을 고르는 확실한 방법은 손님이 많은 곳을 찾는 것입니다. 현지인들이 싸고 맛있는 식당을 잘 아는 법이니까요.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면 그것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고 믿습니다. 그대로 따라 하면 직접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습니다. 개인은 집단이 답을 알고 있다고 단정 짓습니다. 주식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개인들은 '사자'가 많은 주가 상승기에 주식을 사고 '팔자'가 많은 하락기에 매도에 나서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 결과는 비쌀 때 사고 쌀 때 파는, 투자 실패의 길을 걷는 것이죠.
하지만 주식 투자는 맛집을 고르는 것과 다릅니다. 손님이 많다고 찾아간 식당의 음식 맛이 없다면 기분이 나쁜 것으로 끝나지만, 주식 투자를 잘못하면 바로 금전적 손실로 이어집니다. 누구나 손실을 보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많은 사람이 주식을 사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된다면 재앙이 서서히 고개를 듭니다. 작은 사건이나 실수 하나만으로도 주가는 모래성 무너지듯이 와르르 주저앉습니다. 시장은 손실을 피해 빠져나오려는 투자자들로 아수라장이 됩니다. 그동안 숱하게 발생했던 증시 위기는 밴드왜건 효과가 부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밴드왜건 효과를 노리는 홈쇼핑=소비시장도 밴드왜건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홈쇼핑이 있습니다. 홈쇼핑에서는 자극적인 멘트로 시청자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 합니다.
"어?, 다른 사람들도 많이 샀구나"
"나도 사야 하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주로 마감 임박, 이번 시즌 마지막 세일, 오늘만 제공하는 한정판 상품과 같은 말로 밴드왜건 효과를 유도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 제품을 구매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서둘러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만 같은 심리를 불러일으킵니다. 판매 수량을 과장함으로써 구매를 유도할 때도 있습니다.
마케팅 상술에 걸려들어 대책 없는 소비로 이어져서는 곤란합니다. 소비는 내가 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책임한 지출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 맹목적으로 구매하는 것은 가계 재정에 빨간불이 켜지게 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매체들을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시대에 살고 있어 광고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지만 충동구매를 하지 않도록 평소 합리적 소비를 고민하고 계획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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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