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 흐르는 초원, 러시아국경까지 200Km이어져
새벽 3시가 지난 것 같은데 바깥이 그다지 어둡지 않고 좀 훤한 느낌이다. 좀 이상하지만 실제 그랬다!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면서 흔들거리는 기차여행을 모처럼 즐겼다. 과거와 달라진 기차여행 분위기와 문화가 아주 마음에 든다.
이곳의 풀밭은 풀의 밀도가 높고 또 풀의 키가 크다. 멀리서 보면 두꺼운 양탄자처럼 보인다. 사진이나 영상물 등을 통해 본 후룬베이얼 초원의 풍광과 아주 근사한 모습이다.
이런 광대한 초원과 함께 대륙 내에서 아주 큰 담수호인 후룬호수와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인 만주리의 이국적 풍물도 이 지역관광의 두드러진 관광포인트라 생각된다. 지금 열차내에서 문서작업을 하는 순간도 차창 밖에 펼쳐지는 녹색의 거대한 양탄자 그리고 드문드문 늘어서 있는 백양수 숲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우리 산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자연에 몰입된다. 어제 밤늦게까지 확인한 바지만 하얼빈에서 치치하얼까지 고속철 건설공정이 진행중이었다.
아침 6시 20분쯤 후룬베이얼의 가장 중심지역이자 市안의‘작은 市’하이라이얼역에 도착하였다. 거의 12시간 걸린 셈이다. 날씨가 하얼빈과 달리 쌀쌀한 느낌이 든다. 이 역사도 새로 지은 것 같다. 역사의 돔이 몽골의 전통문양으로 처리되어 있어 이곳이 몽골족의 땅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오니 같은 기차를 타고 온 수많은 관광객들과 가이드들이 서로 뒤엉켜 자신의 고객과 가이드를 찾느라 어수선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필자를 안내할 가이드를 만나 우리가 오늘 탈 버스를 확인하고 주변의 식당으로 갔다. 훈둔 한그릇과 죽 한그릇을 주문했다. 죽값은 1위안이나 거의 맹물 수준이었고 훈둔이 7위안이었다. 7시 25분께 버스에 올라 가장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미 왼쪽 좌석에는 몇 명이 자리잡고 앉았다. 나중에 인사를 나누니 은퇴한 노부부와 딸 그리고 손자 2명 등 모두 5명이 일행으로 산서의 타이웬에서 왔다고 한다. 버스가 곧 떠날 줄 알았는데 여행객들과의 연락이 여의치 못해 결국 1시간 반이나 지체된 9시 넘어 출발하였다.
관광버스는 우선 시내에 있는 징기스칸광장에 가서 30여분간을 관광하였다. 징기스칸과 그의 부하들의 전투장면을 묘사한 동상과 거대한 폴대 그리고 징기스칸광장임을 알리는 표지석 등이 있었고 광장은 매우 넓었다.
이곳을 둘러본 후 버스는 내몽골 후룬베이얼지역의 최북단이자 러시아와의 국경지역인 만주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이라이얼 시내를 벗어나자 바로 온 천지가 거대한 초원이었다. 초원은 작년에 보았던 후허하오트 근교의 시라무런초원과는 질과 양 그리고 규모에 있어서 완전히 달랐다. 풀이 자라는 밀식 정도와 풀의 크기 풀의 질적인 측면에서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초원이었고 마음속으로 그리던 바로 그 초원이었다.
풀에서 윤기가 흐를 뿐 아니라 촘촘히 풀이 자라고 키도 크다. 하이라이얼에서 만주리까지 200여km인데 줄곧 이 거대한 초원이 이어진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믿기지 않았으나 끝까지 버스로 달려보니 하나로 이어진 거대한 초원이었다! 이런 초원은 필자의 상상을 넘는 것이었다. 11시 40분쯤 한 몽골족 빠오가 쳐진 곳에 들어갔다.
물론 이 시설은 이미 상업화한 빠오집단으로 큰 장막과 작은 장막 여러 채가 같이 있었는데 단체관광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간단한 매점도 있고, 말을 타볼 수도 있는 곳이었다.
작년에 본 시라무런 초원의 몽골족 빠오와 유사한 시설이었다. 진정으로 몽골족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단체관광이 아닌 개별여행으로 빠오를 방문해야겠지만 교통수단이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이곳 식당에서도 작년 시라무런 초원 여행과 같이 채소요리 8가지가 나왔고 밥 대신 큰 흰빵덩어리인 만두가 나와 이점이 좀 아쉬웠다. 다시 버스에 올라 만주리로 북상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녹색의 초원이 이어졌으나 만주리로 갈수록 초원은 약간의 구릉형으로 지형이 변화되고 있었으나 크게 봐서 평원이었다.
두어시간을 달려 만주리 시내를 우회하여 이지역 최북단인 만주리 國門 관광지 주차장에 정차하였다. 관광지로 조성된 이곳 바로 옆에는 철로가 놓여 있는데 러시아와 내몽골을 연결하는 철로였다. 철길에서는 철도 노동자들이 작업중이었다. 그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이곳 날씨와 생활에 대해 물어보았다. 한시간 정도 주변지역을 어슬렁거리다가 버스에 올라 만주리 시내로 들어와 호텔방을 배정받았다.
무엇보다 30여시간만에 샤워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샤워후 10여명의 관광객과 함께 인근의 다른 호텔 지하식당 겸 공연장에 가서 러시아식 식사와 공연을 관람하다. 식사는 아주 조잡하고 형편없었다. 멀건 수프와 빵 몇조각 그리고 말라 비틀어진 소시지 조각과 양배추 샐러드가 전부였다. 분위기도 흡사 장터처럼 어수선하고 소란스럽다. 적어도 수백명이 식당좌석을 차지하고 있다. 공연도 젊은 무희들이 나와 몸을 흔들어대는 것과 러시아 가수가 높은 앰프소리에 맞춰 악쓰는 듯한 그런 음악수준이었다. 10분도 채안돼 밖으로 나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