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포함해 4개국 7개사만 만드는 첨단 제품이어서 주변선 무리수라며 회의
핵심 칩 개발은 KIST가 맡고 선경은 제품화 기술 개발하는 역할분담했지만 난항거듭
1970년대 초반, 최종현은 석유화학공업 진출을 시도하면서 비섬유 분야인 폴리에스터 필름에 주목했다. 컴퓨터와 오디오의 자기테이프, 콘덴서, 엑스레이, 마이크로필름 등 용도가 다양한 폴리에스터 필름은 당시 세계 수요가 매년 20% 가까이 급증하고 있는 고부가가치 상품이었다.
기술을 보유한 곳은 미국과 일본을 포함 4개국 7개사에 불과해 국내 역시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최종현은 먼저 미국•영국•프랑스•일본의 메이커들을 상대로 기술협력 문제를 타진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선경의 합작 회사인 데이진은 "초고도 정밀기술을 요구하는 폴리에스터 필름 생산은 한국에 무리"라며 거절했다.
이때부터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을 향한 최종현과 선경의 도전은 시작된다.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고 그럼에도 기술 개발을 확신할 수 없는 까닭에 주위에서는 반대하는 경향이 강했다.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은 한마디로 오르지 못할 나무이니 쳐다보지도 말라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최종현의 생각은 달랐다. 언제까지고 돈다발을 들고 선진국의 꽁무니를 쫓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선경은 1975년 12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에 필요한 자료 조사 의뢰를 시작으로, 이듬해 9월 제조 기술의 핵심인 칩 개발을 KIST가 맡고 선경은 제품화 기술을 개발한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개발은 쉽지 않았다. 착수한 지 1년이 지나도록 개발은 난항을 거듭했다. 여기에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내외 경제 상황으로 자금사정 또한 악화되었고, 경영진은 연일 자금 조달을 위한 대책 회의를 열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