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05:15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눈에 띄는 조선의 '핵관'
[김성희의 역사갈피]눈에 띄는 조선의 '핵관'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4.02.2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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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내시부 종3품 이봉정은 선조의 신임 믿고 세자궁 근무명령에 항명 사표
왜란 후 공신포상서 호종공신 탈락…선조가 나서 공신반열에 올렸으나 강등
광해군이"왜 뚱뚱하냐"고 묻자 "고달픈 일 없어 살쪄"라며 국정 소홀 비판해
조선 시대 임금들의 '핵관'으로는 환관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시대 임금들의 '핵관'으로는 환관을 빼놓을 수 없다.(어째 어감이 비슷하다) 임금의 지근 거리에서 입안의 혀처럼 굴며, 궁궐의 내밀한 사정까지 정통했으니 직위나 직책과 무관하게 권력이 따른 것은 자연스런 일이겠다.

14대 왕 선조(재위 1567~1608)에게는 내시부 종3품 이봉정이 그런 '핵관'이었다. 이봉정은 선조의 신임이 어찌나 두터웠던지 선조 29년 세자궁 근무를 명하자 인사 좌천에 항명에 '사표'를 내서 물의를 빚을 정도였다.

그런 이봉정을 두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6년(1603)에 논란이 불거졌다. 이봉정에 대한 공신 포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서였다.

이때 공신은 전란 중 의주까지 도망간 선조를 모신 호종공신과 전쟁에서 무공을 세운 선무공신으로 나뉘었는데, 선조를 모신 이봉정은 당연히 호종공신에 들 만했다.(참고로 선무공신 1등은 권율, 이순신, 원균이었다) 문제는 이봉정이 4등 호종공신에도 들지 못하고 일종의 공신 후보인 원종공신에 들었던 것이다.

평양까지만 선조를 모시고 잠시 떨어졌다가 용천에서 다시 호종했으므로 한양에서 의주까지 줄곧 모신 이들에 비해 공이 크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이봉정 측의 '로비'가 있었던지 그해 6월 선조는 이봉정이 평양에서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것은 부친상을 당했기 때문이었으니 이는 사사로운 이탈이 아닌 만큼 그를 4등 공신에 넣으라고 직접 명했다. 이 같은 선조의 자의적인 공신 책록에 신하들이 강력 반발하자 선조는 비사(祕史)를 털어놓았다.

즉, 명나라에 원군을 청하자는 아이디어는 조정의 공식 기구인 비변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봉정이 곁에서 적극 설득해서 정해진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조는 "환시(宦寺)라고 해서 어찌 이러한 공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2~3등에 녹훈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라 했지만 신하들의 반응은 선조의 기대와는 달랐다. 국가 대사를 공식 기구가 아닌 일개 '핵관'인 내시와 논의해 결정했다는 이야기에 더욱 반발해 결국 이봉정은 4등 공신에서 다시 원종공신으로 강등되었다.

한데 이 주목할 것은 이봉정이 임금의 신임에 기대 국정을 농단하는 인물이 아니라 제법 바른말을 하는 멋진 '핵관'이었다는 사실이다.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이 한번은 이봉정에게 "너는 왜 그리 뚱뚱하냐?"고 면박을 줬다. 그러자 이봉정은 "선왕(先王)께서는 온갖 일을 열심히 재결하시었기에 항상 옆에서 모시느라 밥 먹을 겨를도 없었고 잠도 편지 못 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하께서 공사청(公事廳)에 납시는 때가 없으므로 소신은 종일 태평하게 쉬고 고달픈 일이 없으니 어찌 살이 찌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국정에 소홀한 현직 임금 광해군에 대한 '돌려까기'이니, 이봉정은 그저 호가호위하는 '핵관'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눈을 번쩍 틔워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캐낸 『조선사 진검승부』(이한우 지음, 해냄)에서 만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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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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