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건 회장 "내가 덮고 잔다면" 고민 끝에 이불 도안으로 봉황새 문양 넣어
1958년 출시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 철야 작업해도 수요 감당하지 못해

재고를 소진하고 여유 자금을 확보한 선경식물은 새로운 제품 개발에 나섰다. 대폭 견직물의 부가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조용광이 한 폭짜리 이불감을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대폭 문직기로 짜낸 72인치 양단에 10인치 색동 끝단을 달면 92인치, 여덟자 이불 한 폭이 나온다는 계산이었다.
최종건은 무릎을 쳤다. 당시 국내에는 대폭 양단을 찍어내는 문직기가 선경직물밖에 없었다. 한 폭짜리 이불감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독점 사업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어떤 도안을 그려야 이불감으로 제격일까 하는 것이었다. 조용광은 잠을 줄여가며 이불감 도안을 궁리했다. 이것저것 다 해보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걸 찾지 못했다. 무궁화,원앙,용 등 다양한 문양을 그리고 지우길 반복해야만 했다.

그렇게 여러 날을 고민하고 있을 때 최종건에게 최고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새 중에서 최고의 새인 봉황을 생각해낸 것이다. 과연 내가 덮고 자면 어떤 문양일 때 기분이 좋을까를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였다.

1958년 3월 봉황새 이불감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두 달 뒤인 1958년 5월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한 봉황새 이불감은 출시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철야 작업을 감행해도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봉황새 이불감은 당시 모든 신혼부부의 로망이 되었다. 이후 봉황새 이불감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판매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선경직물은 봉황의 날갯짓으로 더 크게 세상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는 타성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최종건의 도전 정신과 열린 경영 마인드의 결과물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