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2명을 둔 기계공작소로 출발 … 우리나라 포함 전 세계서 30만명 고용
소유와 경영 분리…창업자 설립 공익재단 지분 92% 소유…자손우대 없어

'보쉬'라는 이름의 광고를 만난 적이 더러 있을 터다. 정밀기계와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독일 기업으로 정식 이름은 로베르트 보쉬 게엠베하(Robert Bosch GmbH)이다.
'게엠베하'는 유한회사란 뜻으로 여느 세계적 대기업들과 달리 주식회사 형태가 아니다. 소비재 생산이 주업이 아니기에 일반인들에게는 규모에 비해 덜 알려진 이름이지만 관련 분야에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탄탄한 기업이다.
전 세계 상속제의 형태와 영향, 그 변천을 다룬 『상속의 역사』(백승종 지음, 사우)는 이 보쉬와 관련해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적 기업 보쉬가 장자상속제가 아닌 균분상속제의 산물이란 것이다.
책에 따르면 상속에 관한 한 유럽의 대세는 장남에게 몰아주는 장자상속제가 대세였다. 한데 게르만 문화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던 독일 서남부의 슈바벤 지방은 자녀들에게 골고루 재산을 분배하는 균분상속제가 유지되었다고 한다. 한데 이 균분상속제란 것이 당장은 공평한 것 같아도 몇 세대를 거치게 되면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조그만 땅덩어리를 가진 자작농의 재산이 거듭 쪼개지니 당연히 생계를 잇기 어려운 형펀이 되지 않겠는가.
19세기만 해도 독일 법률은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선거권을 주었기에 슈바벤의 많은 영세 농민들은 끝까지 토지를 지켜내느라 도시의 임금노동자로 이주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전업농 대신 가내수공업에서 살길을 찾았다. 이를 위해 지식과 기술을 중시하는 이런 풍조에 따라 슈바벤의 시골 사람들의 문자 해독 능력이 어지간한 도시 사람들을 능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튀빙겐대학과 프라이부르크대학 등 독일의 대표적 명문 대학이 슈바벤에 위치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에서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 불리는 강소기업들이 대거 등장해 독자적인 기술과 상품으로 영국식 대기업의 틈새시장을 공략하기에 이르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회사 메르세데스 벤츠와 더불어 보쉬가 꼽힌다.
보쉬는 1886년 슈바벤의 중심지 슈투트가르트에서 로베르트 보쉬가 직원 2명을 둔 기계공작소로 창업한 것이 그렇게 커진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30만 명을 고용하면서 특히 자동차부품 업계에선 매출 1위를 놓치지 않는 보쉬의 탄생에는 균분상속제로 인한 가난의 대물림을 벗어나려는 안간힘이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배경을 가진 보쉬는 지배구조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독특한 형태다. 창업자 로베르트 보쉬가 만든 공익재단이 92%, 보쉬 가문이 8%의 지분을 가지되, 창업자 손자 2명은 이사회 멤버지만 특별한 권한이나 우대는 없다. 오히려 72세가 되면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되어 있다나. 또한 로베르트 보쉬 재단은 배당금 수익을 모두 자선사업에 쓴다니 여러모로 부러운 기업문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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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