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진주만 공습 등 일본으로부터 입은 피해 소재로 한 영화 나와
자, 이제 영화를 보자. 1910년대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에 대한 일본 영화가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별로 없다. 당대에도, 이후에도 일본 군국주의를 다룬 일본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일본과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들에는 많다. 특히 미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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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과 일본'이라는 주제의 글은 무척 길다. 복잡한 역사를 그 배경 또는 결과로 다뤄야 한다. 시기적으로, 이번 시리즈 글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를 아우른다.
20세기 전반 거의를 다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11년 신해혁명에서 1937년 중일전쟁까지의 26년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지역적 주 무대는 동아시아, 그중 일본과 중국이었다. 20세기 전반의 동아시아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사건과 지명(地名)과 인물이 차고 넘친다. 우선 일본을 보자. 전후공황, 관동대지진, 진재공황, 진재어음, 쇼와금융공황, 금해금, 쌀소동…. 여기에 지명과 인명까지 따지면 글을 읽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중국은 어떤가? 신해혁명, 국민당, 공산당, 북양군, 만주사태, 중일전쟁, 국공합작, 난징대학살, 쑨원, 장제스, 장쭤린, 장쉐량, 위안스카이, 마오저뚱….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그야말로 '난세(亂世)'라 할만하다. 사건도 인물도 많다. 하지만 이는 곧 스토리가 많다는 말과도 통한다. 당연히 관련 영화도 많다. 길고 복잡한 역사를 '영화로 쓰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인물의 삶을 ①한 가지 사건을 배경으로, 또는 ②장기역사(長期歷史), 즉 긴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그 배경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단일 사건을 배경으로 할 경우 임팩트는 있으나 역사의 호흡이 짧다는, 장기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 대작(大作)이 될 수 있으나 자칫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공황과 일본경제'를 '영화로 쓰는' 작업인 만큼 일본 영화를 우선 찾아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 감독의 1929년 작 <대학은 나왔지만(大学は出たけれど)>이다. <동경이야기(東京物語, 1953)>로 잘 알려진 오즈 감독은 <우게츠 이야기>(雨月物語, 1953)의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산소리(山の音)>의 나루세 미키오(成瀬巳喜男), <라쇼몽(羅生門, 1950)>의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함께 '일본 영화계 4대 거장(巨匠)'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영화 <대학은 나왔지만>은 오즈 감독의 열 번째 영화. 유성영화 <재즈싱어>가 나온 뒤였지만 무성으로 만들진 영화다. 이전 영화는 필름이 거의 남아 있는 게 없으니 거의 첫 영화로 볼 수도 있다. 대공황을 겪던 당시 일본은 대졸자 3명 중 2명이 실업자였을 만큼 힘든 나라였다. 오즈 감독은 대졸 실업자의 구직 과정을 코미디풍으로 그렸다. 원래 70분짜리였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11분뿐이다. 이 귀한 영화를 유튜브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는 것(https://www.youtube.com/watch?v=osBvjTrnjQA)은 우리 시대 행운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후, 원폭(原爆)에 대한 영화 몇 편을 제외하고는, 20세기 전반의 일본 내 정치ㆍ경제ㆍ사회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를 다룬 논문이나 글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몇 가지 추정은 가능하다. 우선 당대에는 군국주의가 지배적이었다. 전쟁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전후에는 패전의 아픔이나 군국주의에 대한 반감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1980년대 이후에는,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가벼운 상업영화가 일본을 지배하고 있었다. 군국주의라는 무거운 주제는 어울리지 않았다.
반면 이 시기 일본과 관련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나라들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로 엄청난 피해를 본 한국이나 중국 등 동아시아 나라들, 그리고 일본과 국가의 명운을 걸고 한 판 승부를 걸었던 미국 등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이 시기 일본과 관련된 영화들이 지금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이들 나라 많은 이들은 이 시기 일본이 저질렀던 악행을 추궁하며 결국에는 이 악(惡)을 물리쳤다는 승리감과 해방의 카타르시스를 공유한다.
미국의 경우 진주만과 이후 벌어진 태평양전쟁에 대한 영화가 유달리 많다. 초창기 영화로는 프레드 진네만(Fred Zinnemann) 감독의 1953년 작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를 떠올리는 분이 많을 것이다. 버트 랭카스터(Burt Lancaster), 몽고메리 클리프트(Montgomery Clift), 데보라 카(Deborah Kerr), 도나 리드(Donna Reed),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영화다. 1953년 최고의 화제작으로 195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다.
■ 미일 합작 태평양전쟁 영화 <도라,도라, 도라>=진주만 관련 영화는 이후에도 꽤 나왔다. 그중 1973년 개봉된 영화 <도라, 도라, 도라(Tora! Tora! Tora!)>는 그중 특별한 관심을 가질 만하다. 전쟁 당사국인 미국과 일본이 합심해 만든 전쟁영화인 탓이다. 영화 역사에 이런 영화가 있었을까? 우리로 치면,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자금을 대고 시나리오도 쓰고 감독도 선임해 안중근 의사와 일본의 초대 총리를 지낸 이토 이로부미(伊藤博文)의 일대기에 대한 영화를 만들자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이게 가능할까?
취지는 좋을 수 있다. 잘만 하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전쟁을 다룰 수 있을 것 같고 양측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 단계 높은 역사의 화합도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쉽지 않다. 나라의 역사와 얼굴이 달린 문제다. 서로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칫 '적국(敵國)을 이롭게 한 매국노'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러니 영화 <도라, 도라, 도라>가 제작 단계부터 화제에 올랐던 것은 당연하다. 당초 계획은 시나리오를 함께 쓰고 제작 경비는 미국이 1, 일본이 3을 대기로 했다. 미국 측 제작사는 20세기 폭스가 일본 측 제작사는 도에이(東映) 영화사가 맡았다. 경비를 일본이 3배나 많이 대니 그 반대급부도 있어야 했다. 감독은 일본 감독을 쓰기로 했던 것이다. 물망에 오른 이는 놀랍게도 당대 세계 최고로 평가받던 일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였다. 이름만 들어도 몸이 움찔할 수준의 감독이었다. 실제로 구로사와 감독은 일본의 A급 배우들과 함께 촬영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곧 귀국길에 오른다. 시나리오도 제작도 모두 감독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일 두 나라의 제작사 측은 몸이 달았을 것이다. 부랴부랴 새 감독을 내세웠다. 미국 측은 <해저 2만리(20,000 Leagues Under The Sea, 1954)>와 <바바라(Barabbas, 1961)>로 이름을 알린 50대 중반의 리처드 플레이셔(Richard Fleischer) 감독을 선임됐다. 일본 측에서 선임된 감독은 후카사쿠 긴지(深作欣二)와 마스다 도시오(舛田利雄) 등 두 명. 지금은 <배틀로열>의 감독으로, 또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신예라 할 수도 있는 40대 초반의 감독들이었다.
다행히 평가는 좋았다. 미국 측 제작사인 폭스(Fox)는 애초부터 각종 구설수를 의식해서였는지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될 것"이라 말했다. 영화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영화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한 사실(史實)을 가장 중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독과 작가의 상상력은 가급적 배제됐다. 그야말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을 줬다는 평가가 많다.
영화 <도라, 도라, 도라>를 <다운폴(The Downfall, 2013)>과 비교해도 재미있을 법하다. 독일의 올리버 히르비겔(Oliver Hirschbiegel) 감독의 영화 <다운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축국이자 전범국이었던 세 나라,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힘을 합해 만든 영화다. 나치즘과 파시즘의 잔재를 일소했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 측이 만든 히틀러 영화와는 다소 다르지 않을까? 그래서일까? 확실히 히틀러의 인간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비난이 일고 그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기게 한다.
21세기 들어서도 미국 영화계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선보였다. 2001년 마이클 베이(Michael Bay)감독이 대놓고 <진주만(Perl Harbor)>이란 이름으로 영화를 내놓은 것이다. <트랜스포머(Transformers, 2007)>로 한때 할리우드 최고 흥행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누리기도 했던 그다. 그가 만든 전쟁영화이니 어떤 스타일일 것인지 알기는 어렵지 않다. 1억4500만 달러를 쏟아 부은 영화는 그해 '할리우드 최대의 블록버스터'로 꼽혔다. 틀에 박힌 삼각관계에 미국의 영웅주의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20분 넘는 진주만 폭격장면은 그야말로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하며 베이 감독의 명성을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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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대기자 ❙ 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 ❙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 ❙ 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 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식민과 제국의 길』『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