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교체는 독재 정권의 특징…정치기반 닦아 정권 넘보지 않게 견제
어떤 정권에서는 무능함에도 장관으로 발탁될 수도 있다. 이건 『세계의 이면에 눈뜨는 지식들』(톰 스탠디지 엮음, 바다출판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들리지만 책에 따르면 여기에는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시하는 독재자라면'이란 단서가 붙긴 하지만 꽤나 설득력 있는 설명이 따른다.
콩고의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1930~1997)은 1965년 군사쿠데타를 이르켜 집권한 뒤 1997년까지 철권을 휘두른 독재자였다. 그는 내키는 대로 무의미한 내각 개편을 수시로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때문에 하루아침에 장관직에 올랐다가 갑자기 감옥으로 쫓겨나거나 외국으로 추방당했다가 다시 고위직으로 복귀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콩고만이 아니라 한 아프리카 15개국 연구에서는 잦은 장관 교체는 독재 정권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드러났다.
한데 미국 조지메이슨대학교의 일리아 라이너 등이 공동으로 개발한 모델에 따르면 독재자들은 장관 인사를 할 때 딜레마에 빠진다고 한다. 경험 많은 장관은 국정에 도움이 되겠지만 이들이 권좌에 오래 머물면 자신의 정치 기반을 닦아 쿠데타를 일으킬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독재자는 장관들이 충분한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전에 경질해야 하는 딜레마이다. 이는 결국 유능함과 충성심 간의 균형, 바꿔 말하면 장관 발탁 사유와 재임 기간의 상관관계에 미묘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독재 정권에서 장관들이 가장 큰 위험에 처하는 시기는 재임 4년 차로 나타났다. 장관직에 오른 뒤 첫 2년 동안은 독재자를 위협할 만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기 힘들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충분한 경력을 쌓으면 이번엔 굳이 쿠데타 위험을 무릅쓸 동기가 줄어든다. 성공이 불확실한 쿠데타를 일으키자고 현재의 안정된 지위를 포기하기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기 때문이란다.
결국 장관 4년 차가 되면 더 높은 자리를 노려볼 만큼 인망과 권력을 쌓았으면서도, 독재 정권하에서 야심을 버리거나 장래 안전을 완전히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딴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이런 점을 의식한 독재자들이 장관들을 감옥에 보낼 가능성이 가장 커진다는 설명이다.
연구자들은 또 가장 위험한 장관들은 국방이나 재무 담당 장관 등 핵심 요직에 있는 각료들은 그 중요성만큼 독재자에게는 위협적이기에 자리 주인이 자주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업무 지식과 경험을 쌓을 만하면 바뀌니 경제와 군대에 악영향을 미쳐 그 나라는 국력이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독재자의 통치 기반마저 흔들리게 된다고.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장관이 극히 드문 우리나라 현실이 꼭 이 모델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2인자 또는 잠룡을 견제하려는 심리가 우리 정치의 불안정 요인 중 하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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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