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합격한 현대건설 경리과 여직원과 결혼 …조카 경영 방어에 백기사役
정상영은 정주영과는 달리 좀체 언론에 얼굴을 나타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재계에 나돈 그의 창업과 결혼에 얽힌 에피소드는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용산고, 동국대 법학과를 나온 후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1958년 금강스레트공업 창업 당시 맏형 정주영은 해외 유학을 권했지만 그는 건자재 사업을 택했다. 당시 동국대 법학과 학생이었던 그는 6·25를 겪은 만큼 앞으로 건자재 분야가 유망할 것으로 보고 이 사업에 뛰어 들었다.
그는 또 맏형 정주영이 경영하던 현대건설을 제 집처럼 드나들다 우연히 경리팀에서 일하던 동갑내기 조은주씨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고 한다. 당시 조씨는 이화여대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직장생활을 하며 학자금을 모으는 중이었다는 것. 이들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연애를 하다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후 조 여사는 사업장 인부들의 밥을 직접 지어 나르는 등 내조에 큰 힘을 쏟았다고 전해진다.
정상영은 2000년대 중반부터 가솔이 많은 범 현대가의 사실상 최고 어른이 됐다. 맏형 정주영 밑에서 막내로 자랐지만 세월은 그에게 15년에 이르도록 범 현대가의 어른 역할을 맡겼다. 1915년생 정주영과 1936년생 정상영의 나이 차는 무려 21살이다. 정주영의 맏아들 정몽필(1982년 작고)이 1934년에 태어나고 2년 후 정상영이 출생했다. 장조카보다 두 살 어린 셈. 정주영의 2남으로 후에 장자 역할을 맡게 된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81) 회장은 정상영보다 2년 후 태어났다. 범 현대가 패밀리는 100명에 가까울 것으로 짐작되며, 정상영은 2세 3형제와 3세 3남 4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평소 독립적으로 사업을 일으킨 것을 자부해 왔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맏형 정주영과 범 현대가의 후광을 입었다고 보는 게 세간의 시선이다. 정상영은 생전에 자신을 누구보다 아끼고 챙겨줬던 맏형 정주영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따랐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대뜸 “정주영 명예회장”을 꼽을 정도였다. 외모나 말투 등이 정주영과 흡사해 호사가들은 그를 “리틀 정주영”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2001년 맏형 정주영 사후 범 현대가 후견인 역할을 많이 했다.
그는 2000년부터 KCC그룹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한발 비켜났다. 2003년엔 그 유명한 ‘시숙의 난’을 일으켜가며 현정은(작고한 조카 정몽헌의 미망인) 회장과 조카들이 물려받은 현대그룹 경영권이 정씨 피붙이가 아닌 제3자 손에 넘어가는 것을 돈과 실력 행사를 통해 막았다. 그 외에도 범 현대가 일이라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백기사 역할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