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8:15 (목)
[김성희의 역사갈피] GM의 어리석은 선택
[김성희의 역사갈피] GM의 어리석은 선택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5.3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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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美소비자 보호운동 이끈 랄프 네이더 GM에 ' 자동차 안전성 ' 제기해
GM은 사설 탐정에 돈줘 사생활을 감시하고, 창녀 고용해 스캔들 만드는 등 역공작전
의회청문회서 들통나 GM은 거액의 합의금 지불하고 네이더의 저서는 베스트셀러에
1960년대 중반 미국 소비자보호운동의 기수 랄프 네이더와 당시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 제너럴 모터스 사이에 자동차 안전성 논란이 벌어졌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메시지 대신 메신저를 공격하기. 이건 크든 작든 논쟁에서 종종 등장하는 수법이다. 진흙탕 싸움을 벌여 논점을 흐리고, 장기전으로 몰고 가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이 전략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1960년대 중반 미국 소비자보호운동의 기수 랄프 네이더와 당시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 제너럴 모터스와 벌어진 자동차 안전성 논란이 그랬다.

하버드대 출신 변호사인 네이더는 청년 시절 히치하이킹으로 미국 일주를 하면서 고작 시속 24km로 달리던 자동차가 충돌하자 조수석에 앉았던 아이가 앞으로 튕겨 나가 목이 잘려 숨지는 참사를 보고는 충격을 받아 자동차 인명사고의 법적 책임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설계부터 위험한 미국의 자동차』란 책을 내며 자동차회사들의 안전 불감증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네이더는 자동차회사들이 안전보다 스타일을 중시하며, 이윤을 키우기 위해 안전기술 채택에 소홀하다는 점을 여러 과학적 근거를 들어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이에 대해 자동차회사들은 "대중은 안전벨트에 관심없다" "자동차 사고는 설계 결함이 아니라 '운전대를 잡은 미친 놈' 때문" "충돌 시 차체 안에 있는 것보다 튕겨 나가는 편이 더 안전" "기계적 결함이 있다면 차주의 관리 소홀 탓"이라는 둥 어처구니없는 항변을 했다.

이에 네이더는 의료, 보험, 법정, 차 수리, 장례 관련 산업은 사고가 날수록 돈을 벌지만 차량사고 사상자 예방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며 "인간적인 사회라면 사고 처리보다 사고 예방에 노력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여론이 부정적으로 변하자 GM 임원들은 최악의 선택을 했다. 네이더의 지적을 반영해 자동차의 안전성을 높이는 대신 네이더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한 전략을 택했다.

사설탐정을 고용해 재무 상황과 사생활을 감시하고, 친구와 가족에게 협박 전화를 걸고, 아니면 창녀를 고용해 스캔들을 만드는 등 GM의 '적'에게 항용 쓰던 수법을 동원하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책 출간 후 무상으로 민주당 상원의원 아베 리비코프의 자문 역할을 하던 네이더는 자신이 미행당하는 것 같다고 의원에게 말했고 결국 그의 도움으로 상원 청문회가 열렸다. 여기 증인으로 소환된 GM CEO 제임스 로슈는 사설탐정 고용을 실토했고 이 장면은 전국에 TV중계 되었다.

승자가 된 네이더의 책은 1966년 미국 비문학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GM은 소송 끝에 당시까지는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에 관련된 최대 합의금인 42만 5,000달러를 네이더에게 지불해야 했다. 이후 네이더는 2000년 대통령선거에 나설 정도로 '거물'로 성장했으니 GM의 '어리석은 선택'이 기여한 바가 컸다 하겠다.

이는 『죽음의 역사』(앤드로 도이그 지음, Bronstein)의 일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원래 책 의도와는 거리가 있지만, 정치판을 비롯한 요즘 우리 사회에서 귀 기울일 만한 사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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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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