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9:35 (수)
'경주 최부자' 臨政돕고 국채보상 앞장 입증史料햇볕
'경주 최부자' 臨政돕고 국채보상 앞장 입증史料햇볕
  • 고윤희ㆍ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19.08.14 20: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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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74주년 기획취재)

임시정부 지원 '위장업체' 백산상회 쪼들리자 家産담보 근저당계약서 발견
11대 종손 최현식이 앞장선 국채보상 운동 참여 명단 책자와 약정서도 나와
임시정부를 돕던 백산상회가 어려워지자 12대 '경주 최부자'는 여의도땅의 80% 규모인 전답을 근저당해 35만원을 조선신산은행으로부터 빌렸다. 이 근저당 계약서가 이번에 발견됐다./촬영= 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임시정부를 돕던 백산상회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최부자'는 여의도땅 80% 규모인 전답을 담보로 35만원을 조선식산은행으로부터 빌렸다. 사진은 근저당 계약서.촬영= 김승희 이코노텔링 기자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경주 최부자'의 독립운동 내력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12대째 만석의 부(富)를 일군 '최부자'가문, 그러니까 이 집의 12대 종손인 최준(호 汶坡)이 나라를 되찾는 일에 가산을 총동원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최근 나왔기 때문이다.

또 그의 아버지(최현식)가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고 자신은 '백상상회'(훗날 백산무역으로 사명변경)란 회사를 내세워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을 대는 비밀루트를 만들었다는 입증자료등이 햇볕을 본 것이다.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하던 백산상회의 설립 두 주역. 경주 최부자 12대 종손(왼쪽) 최준과 안희재.
임시정부의 자금줄 역할을 하던 백산상회의 설립 두 주역. 경주 최부자 12대 종손 최준(왼쪽)과 안희제(호 백산).

물론 이와 관련해 해방후 국내에 들어온 김구 주석은 "임시정부의 운영자금의 6할(60%)은 백산상회에서 나왔고 그 중심에는 최준 선생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어 '경주 최부자'의 노블리스오블리주(명문가 솔선수범)는 이미 정평이 나 있었지만 이번에 '구체적인 자료'로 한층 증명된 셈이다.

실제로 김구 주석은 환국하자마자 경교장에서 최준 선생을 만나 서로 맞절하면서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자금을 보내준 것은 3천만동포가 우러러 볼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가 힘을 합쳐 백산상회의 경영 자료가 발굴됐고 이 기운데 백산상회가 경영이 어려워지자 최준 선생이 집안 부동산을 담보로 조선식산은행으로부터 35만원을 빌린 계약서가 나왔다. 회사 간판은 사업을 하는 곳이지만 돈이 들어오면 이의 대부분을 임시정부로 보낸 까닭에 경영은 부실해졌다. 그래서 운영자금을 꾸기 위해 집안 보유의 땅을 담보로 잡힌 것이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일부 창립 주주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에 따라 백산 안희제는 최준에게 주주문제를 도와달라며 보낸 편지이다.
백산상회에 큰 적자가 나자 일부 창립 주주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에 따라 백산 안희제는 최준에게 주주간 갈등 문제를 도와달라며 보낸 편지이다.

당시 백산상회의 사장 최준과 그의 부친인 최현식(11대 종손)이 연대보증을 섰다. 부동산 담보물건은 경주와 울산에 걸쳐 모둔 773건이다. 규모는 모두 66만평으로 지금 여의도 면적의 75%에 달한다. 나중에 백산상회가 임정의 자금루트란 사실을 일본경찰이 파악한 후 최준은 모진 고문을 견디면서도 끝까지 토설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현식은 나라빚 갚는데(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 기울어가는 나라를 구하려는 노력을 경주했다. 최근 발견된 국채보상의연금 성책(의연금 명단을 책으로 묶은 것)을 보면 가장 앞줄에 최현식이 1백원을 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최현식은 1907년 1월22일 국채보환단연동맹회에 의연금 100원을 약정하겠다는 서신도 찾아냈다.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는 것을 둘러싸고 창립주주들사이에 갈등을 빚어지자 안희제가 최준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도 있다. 이처럼 부자(夫子)가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찾는데 일조한 기록이 속속 밝혀지면서 새삼 '경주 최부자'는 졸부(猝富)가 아니라 명부(名富)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고 있다.

11대 종손 최현식은 국채보상운동에 발벗도 나섰다. 먼저 1백원을 약정한다는 내용을 편지로 확약했다.
11대 종손 최현식은 국채보상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먼저 1백원을 약정한다는 내용을 편지로 확약했다. 20원으로 쓰여진 것을 백원으로 고친 흔적이 보인다.

백산상회 회사이름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대동청년단을 이끌던 안희제의 호(백산)에서 땄다. 안희제는 1910년 대동청년단을 기반으로 국권회복의 저항운동을 지휘하면서 최준에게 손을 내밀었고 최준은 흔쾌히 자금을 대는 일은 물론 회사의 대표로서 활동하는 모험을 했다.

겉으론 곡물과 면포,해산물 등을 판매하는 회사였으나 그 구성원을 보면 대동청년단을 비롯해 조선국권회복단,기미육영회 등 일제 저항세력의 조직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지하결사조직'이나 다름없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승운 책임연구원은 "백산상회가 독립운동 지원의 국내 거점 활동을 했고 최준이 이에 가담한 사실은 알려졌으나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자료가 이번에 발견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경주 최부자'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연구하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채보상운동에 의연금을 낸 명단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가장 먼저 최현식의 이름이 보인다.
국채보상운동에 의연금을 낸 명단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가장 앞에 최현식의 이름이 보인다.

고증을 거쳐 문화재 등재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에 나온 사료는 우연히 발견됐다. 김 책임연구원은 "경주 교촌의 최부자댁에 쌓아놓은 자료가 많았고 그중 대부분이 전답 관리, 가내 관혼상제와 관련한 기록 등으로 파악했었는데  다시 목록을 정리하는 과정에 독립운동과 관련한 자료가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경주 최부자' 는 영남의 최고 부자였다. 하지만 품격이 달랐다. 이 가문의 가훈 중 눈에 띄는 것은 '재산을 만석이상 불리지 말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나눔과 부의 사회환원 뜻이 담겨져 있다. 그 정도의 재산을 가지면 돈이 붙는 속도가 빨라져 그 이상의 부를 축적하기가 쉬운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구한말까지만해도 소작료는 대개 수확량의 7할정도였다. 그대로 받으면 만석을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때 '최부자'는 소작료를 내려 들어오는 쌀의 규모를 조절했다. 이러니 소작농들은 서로 최부자집 농사를 지으려고 했다. 덕을 쌓으니 동학혁명때 활빈당들이 할거 할때도 최부자댁은 무사했다.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이 임시정부 설림 100주년을 맞아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라는 주제의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전시회포스터. 10월13일까지 열린다.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이 임시정부 설림 100주년을 맞아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라는 주제의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전시회포스터. 10월13일까지 열린다.

최부자의 연간 소출은 대략 3천석쯤 됐다. 그런데 이를 3등분했다. 1천석은 집안일에 쓰고 나머지 1천석씩은 손님접대와 빈민구제에 투입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실천한 가문인 셈이다.

손님접대용으로 최부자의 집안대대로 전해지는 특산품 있다. '경주법주'는 최부자의 가양주가 상품화 된 것이다. 술을 빚는 기술은 지금도 종부에게만 전해진다고 한다. 남석 안경,한지,미역은 이 집안에서 직접 만들었다. 집안 일꾼들에게 경주 남산에서 나는 수정을 갈아 안경알을 만들게 하고 안경테의 재질로 거북이 등껍질를 활용했다. 이 안경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김이 서리지 않아 안질에 안걸린다고 한다. 이 안경은 귀한 손님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1926 국내 왕릉 탐사차 방한한 스웨덴의 쿠스타프 왕(당시는 왕세자)이 경주 교촌의 최부자댁에 며칠 머물렀는데 이 안경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또 하나는 한지다. 소작인들에게 닥나무 밭을 일구도록 해 한지를 만들었는데 그 종이 질이 좋았다고 한다. 마직막으로 미역이다. 미역은 경주 해안가 감은사의 해중릉 인근 미역바위를 사들여 미역을 양식했다.

 연중 관리하면서 소출이 날때마다 말려 뒀다가 집안행사에 쓰거나 소작농의 부인 등 주변의 산모들에게 산후독을 풀라고 나눠졌다고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경주 최부자'의 독립운동 자료를 엄선해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라는 주제의 전시회를 열고 있다.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전으로 기획됐다. 8월9일부터 시작된 전시는 10월13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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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혁 2022-04-13 17:56:16
조상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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