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06:40 (수)
[김성희의 역사갈피] 공상에 가깝던 '경제 개발'
[김성희의 역사갈피] 공상에 가깝던 '경제 개발'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3.27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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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경제개발 4차년도인 1965년 서울 남산은 60만이 사는 '거지소굴' 방불
美경제전문가는 일본의 지원이 불가피하다며 '일본과 배상협상'상황 주시
사진((왼쪽)1965년 중구 충정로에서의 조기청소 모습)=서울역사아카이브/이코노텔링그래픽팀.

"…온갖 잡동사니로 너저분한 서울. 중앙청 앞 거리는 배추를 실은 손수레, 짐을 한가득 실은 지게를 짊어진 짐꾼들, 무수한 지프의 행렬로 어지럽다.…행상들은 길가에 각종 책과 견과류, 이상하게 생긴 식물뿌리와 열매, 그리고 미군 PX에서 빼내온 온갖 물건을 펼쳐 놓았다.…버려진 네 살배기 아이가 넝마조각만 걸친 채 벽에 기대서 목이 터져라 울어도 누구 하나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남산 근처 비탈길에는 천막과 나무를 얼기설기 이어붙인 판잣집 수천 채가 서 있다. 추산에 따르면 60만 명이 이 더러운 헛간 같은 곳에 살며 서울 인구 350만 명 중 10%는 원조물자에 의지해 산다.…달러를 잔뜩 가진 미국인과 결혼 내지는 잠자리라도 같이 하겠다고 달려드는 한국 여성들의 모습은 이 나라의 가난을 표상하는 또 하나의 징표다.…"

이게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제3공화국 정부가 야심차게 밀어붙인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4차 년도인 1965년 서울의 모습이었다. 이는 미국의 대표적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1965년 1월 4일 자에 실린 글이다.

그때는 그랬다. 국민총생산은 해마다 5% 이상씩 증가하고, 수출은 드디어 1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푸른 눈에 비친 한국민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비참한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 무렵에는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깊숙이 빠져들면서 대한(對韓) 원조가 줄어들까 눈치를 봐야 하는 상태였다.

이에 앞서 뉴스위크는 1962년 10월 29일 자 기사에서 제강공장과 정유시설을 세워서 석탄·강철·시멘트·비료 등 중공업을 키우겠다는 '김종필의 5개년 계획'을 공상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아무 기술인력도 없고, 그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할 만한 도로나 항만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무엇보다 자금이 문제였다. 5개년 계획에는 32억 달러가 소요될 텐데 그중 9억 달러는 외국 차관과 투자로 충당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한이 일본이라는 '쓴 약'을 삼키지 않는 한 아무리 해외원조를 쏟아부어도 경제 성장은 요원하다"는 미국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기술·자본·시장 등 남한에 필요한 모든 것이 일본에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남한이 강제 노역 임금, 몰수재산, 약탈 등을 이유로 배상금 8억 달러를 요구하는 데 반해 일본은 단 1억 5,000만 달러만 주겠다고 해서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이건 194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발행된 뉴스위크에서 한국 관련 기사를 골라 번역해낸 『Korea 넌 누구니』(중앙일보 시사미디어)에서 눈에 들어온 대목이다. 강제징용 배상 방법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 시끄럽지만 60여 년 전의 우리는 그런 '터널' 속에 있었다. 그저 그랬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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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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