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8 ~1519년 45권의 저술 쏟아내 유럽서 50만 부 이상 팔려
인류의 오늘을 있게 한 문명사의 '대사건'들을 꼽는다면 종교개혁을 빠뜨릴 수는 없다. 그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 앞에 내건 마르틴 루터의 고발문 하나로 시작되었다.
로마가톨릭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 논제를 담은 루터의 고발문은 중세에 종언을 고하고 인간을 되찾게 해준 '폭탄'이었다.
한데 혁명아 루터가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뒤 루터는 자신의 신념을 알리는 작업을 이어갔는데 그 방법이 저술이었다.
루터는 1518~1519년에 라틴어로 25권, 독일어로 20권 모두 45권의 저술을 쏟아냈다. 신학과 목회자를 위한 지침을 포함해 다양한 주제를 다룬 루터의 저술은 판을 거듭하며 당대 유럽에 일대 센세이션을 몰고 왔다. 그전까지 무명의 대학교수였던 루터는 1520년까지 3년 새 그의 저작물이 50만 부가 넘게 팔려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 가장 많은 작품을 출간한 생존 작가가 되었다.
물론 루터의 저서 대부분은 극히 짧았다. 45개 작품 중 21개는 8페이지 이하였으니 요즘으로 치면 찌라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인쇄업자들은 환호했다. 제작기간은 짧고, 독자들은 사거나 읽는 데 부담이 적었으니 이른 시기에 전부 팔릴 것이 예상되는 기대주였으니 당연했다. 이 중 라이프치히의 인쇄업자 멜리오르 로터는 루터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였다. 로터는 전형적인 사업가였다. 루터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비텐베르크에 지점을 낼 정도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루터에 맞선 로마의 반박문도 출판했으니 말이다.
로터 말고도 루터의 저작물 판매에 크게 기여한 이가 그의 동업자였던 프리드리히 선제후의 궁정화가 루카스 크라나흐다. 예술가이자 사업 감각이 뛰어났던 크라나흐는 제지공장에서 인쇄 컨소시엄과 서적 유통망까지 포함하는 인쇄기업을 세웠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라 크라나흐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루터의 저작물에 매력적인 표지와 삽화를 넣었다.
목판화로 제작한 표지는 아름답기도 했거니와 서점을 들른 잠재 독자의 눈길을 잡아끌 수 있도록 이미지 중앙에 루터의 이름을 두드러지게 배치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소박한 팸플릿을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는 이 같은 '마케팅 수법' 덕분에 루터의 사상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
인쇄가 인류사의 한 획을 그은 이야기는, 신대륙 발견 등 15세기 말~16세기 초 40년간에 있었던 인류사의 격변을 정리한 『창발의 시대』(패트릭 와이먼 지음, 로크미디어)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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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