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에 주인 아주머니 눈에 들어 뽑혀…먼저 일어나 일 준비해 사랑 받아
소학교만 나왔지만 한자를 잘써 '치부책'정리 맡겼더니 경리 업무도 척척
1981년 경포대서 열린 현대 신입사원 연수회때 쌀집 점원시절 일화 공개

할머니는 한눈에 알아봤다. 기골이 장대해 꽤 힘을 쓸 것 같았다. 덩치는 남산만 한데 하회탈같이 웃는 모습이 순진해 보였다.
강원도 시골 청년은 힘쓰는 쌀집 배달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말을 나눠보니 믿음도 갔다. 바로 일을 하라고 했다. 어린애같이 좋아했다. 얼굴은 촌스럽게 생겼는데 눈빛은 살아있었다. 꾹 다문 입매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정주영의 쌀집 아주머니'인 차소둑 할머니와 정주영 회장의 기나긴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할머니 나이 마흔, 정주영 스무 살 때인 1934년이었다.
고향인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峨山리를 떠난 정주영은 이곳저곳 막노동을 하다 경성에서 할머니가 운영하던 쌀가게(복흥 상회)를 찾아왔다. 할머니는 그 6년 전인 34세 때 청상과부가 되어 남편이 남겨준 쌀가게와 정미소(이창 정미소)를 운영해야 했다. 혼자서 딸과 아들을 키우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아주버니와 친척들이 도와주긴 했으나 여전히 벅찬 일이었다.

"참 힘도 세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어. 쌀 두 가마니를 양어깨에 짊어질 정도로 힘이 장사였지. 새벽같이 일어나 가게 주위를 깨끗하게 쓸고 물을 뿌렸어. 남들 잘 때 혼자 일어나 일할 준비를 다 한 거지. 종업원이 7명 정도 있었는데 제일 막내가 주인공 역할을 하는 거야."
할머니는 훗날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 담이 바로 이 양반을 보고 하는 말이었어"라고 술회하셨다.
할머니는 그에게 글씨를 써보라고 했다. 청년 정주영은 한글은 물론 한자까지 척척 써 내려갔다. "소학교만 다녔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깜짝 놀랐어. 글씨도 큼직큼직하게 써서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몰라. 머리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정주영은 계산도 빨랐다. 치부책(장부)을 맡겼더니 깔끔하게 정리했다. 배달, 회계, 창고정리 등을 전부 만족스럽게 처리했다. 할머니는 정주영이 너무 기특하게 일을 잘해서 식사 때마다 밥을 한 그릇씩 더 퍼주었다고 했다.
정주영 회장은 1981년 강원도 경포대에서 열린 현대 신입사원 연수회에서 자신의 쌀집 점원 시절 이야기를 처음 꺼냈다. "처음엔 배달꾼이었습니다. 복흥상회라는 쌀 도매상에서 배달원을 모집한다기에 얼른 뛰어갔어요. 다행히 주인아주머니가 보자마자 일을 하라고 했어요. 이창 정미소를 같이 운영하는 이 쌀 가게는 매일 재고와 현금, 외상 등 숫자를 맞춰야 하는데 창고가 정리가 안 된 채 뒤죽박죽이었어요. 그래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한 겁니다. 쌀은 열 가마씩 줄을 지어서 쌓고, 팥·깨 등도 보기 좋게 따로 놓고, 쌀은 얼마, 참깨는 얼마 하고 적어 놓았어요. 주인아주머니가 보더니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나보고 글을 한 번 써보라는 겁니다. 글 쓰는 건 자신 있었어요. 다섯 살 때부터 3년 동안 서당을 다니면서 천자문, 명심보감, 동몽선습, 소학 등을 다 써봤으니까. 그 뒤 아주머니가 치부책을 나에게 주셨죠."
이후 정 회장은 장부 정리는 물론 경리 일까지 보게 됐다. "경리 일을 보라고 했을 때 얼마나 좋던지요. 펄쩍펄쩍 뛰었다니까요. 주인에게 인정받은 것도 좋았고. 그래서 뭐든지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정 회장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인재'를 강조할 때마다 어김없이 자신의 쌀집 경험을 풀어놓았다. 이 일화를 통해 나의 할머니, 쌀집 아주머니인 차소둑 할머니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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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