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술집선 캐비아절임이 공짜 술안주 … 경제발전 혹은 진보는 어떤 의미일까
재미와 정보를 두루 갖춰 믿고 볼 만한 외국 저자 중 한 사람이 빌 브라이슨이다. 미국 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언론인인 그의 책은 유머가 풍부하면서 나름 알찬 정보를 가득 담고 있어 저자 이름만 보고 골라도 실패가 없는 저술가다.
그가 쓴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까치)는 자신이 영국에서 거주하던 목사관을 개조한 주택을 소재로 시시콜콜한 살림살이의 역사를 파고 들어간 책이다. 비록 구미의 생활사이긴 하지만 슬며시 웃음이 나오거나 무릎을 칠 만한 대목이 수두룩하다. 여기 이런 대목이 나온다.
"죄수와 고아에게 바닷가재가 공급되었으며 심지어 갈아서 비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요즘에야 아주 부유한 사람들이나 먹고, 보통사람들은 어쩌다 특별한 날 큰마음 먹어야 먹을 수 있는 롭스터가 19세기 영국에선 그야말로 발에 차일 지경이었던 모양이다. 빌 브라이슨은 당시 영국 해안 인근에선 바닷가재가 매우 풍부하게 잡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더 기막힌 것은 하인들은 주인들에게 바닷가재를 일주일에 두 번 이하로만 식사로 제공하겠다는 합의서를 요구하기도 했단다.
그럴 만도 했다. 이사벨라 비턴이란 영국 여성이 1861년 출간한 『가정관리서(Book of Household Management)』는 10년간 구미에서 200만 부 넘게 팔리고 20세기 초까지 영향력을 발휘한 베스트셀러이자 가정 상비 도서였다. 그 비턴이 책에서 "바닷가재는 소화가 불가능한 식품이며 일반적으로 간주되는 만큼 영양가가 많지는 않다"고 했으니 말이다.
브라이슨의 책에는 이런 웃지 못할 현상이 이어 나온다. 보통사람들은 평생 가야 몇 번 맛볼 기회가 없는 캐비아-철갑상어 알 절임-를 당시 뉴욕의 술집에선 공짜 술안주로 제공했단다. 짭짤한 캐비아를 안주로 제공하면 사람들이 맥주를 더 많이 마실 것이란 속셈 때문이었는데 이는 철갑상어가 많이 잡혔던 덕분이었다.
이뿐인가. 뉴욕항은 전 세계 굴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으니 1853년에 간행된 미국의 인기 요리책 『가정요리』에선 오크라 수프 한 솥에 굴을 100마리쯤 넣으면 맛이 "약간 향상된다"고 조언할 정도였다.
1960년대 그 어렵던 시절에도 '소주에는 오징어'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로 오징어는 흔한 먹거리였다. 한데 OECD 회원국이 된 마당에 오징어는 '귀한 몸'이 되어, 예전처럼 선뜻 손이 가지는 않는다. 200년도 채 안 된 바닷가재나 캐비아 일화나 오징어의 경우를 보면 과연 경제발전 혹은 진보라는 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한다면 지나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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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