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치부에 열올리고 관능적 소설도 써…정치 성향과 달리 돈 더 주는 신문에 기고
19세기 말 활약했던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1840~1902)는 『목로주점』 『나나』 등을 남긴, 자연주의의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하지만 그가 문학사를 넘어 세계사적 인물로 부상한 계기는 소설 작품보다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해 당대의 권력층과 대중 여론에 맞서 공개서한을 발표한 것이었다.
"대통령 각하, 정직하게 살아온 한 시민으로서 솟구치는 분노와 더불어 온몸으로 제가 이 진실을 외치는 것은 바로 당신을 향해서입니다. 저는 명예로운 당신이 진실을 알고도 외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졸라는 1898년 1월 13일 자 『로로르』지에 이렇게 시작되는 공개서한 「나는 고발한다」를 실었다. 프랑스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 대위 드레퓌스는 1894년 독일 간첩이란 혐의로 체포되었다. 뚜렷한 물증이 없었음에도 당시의 반유대주의의 열풍에 휩쓸려 군부와 여론은 드레퓌스의 유죄를 확신하던 상태였다.
여기에 베스트셀러를 여럿 낸 바 있던 졸라가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으니 파장은 컸다.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졸라는 감옥행을 피해 영국으로 달아났다가 이듬해인 1899년 사면되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졸라는 정치·사회적 대의를 위해 자신이 쌓아온 문학적 지위를 던지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세계 지성사에 자리매김 되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전의 졸라는 그렇게 한마디로 평가하기 힘든 복합적 인물이었다. 『유럽문화사 3』(도널드 서순 지음, 뿌리와이파리)에 따르면 그는 작가가 작품을 파는 상인이 되어 격을 떨어뜨린다고 비난하는 이들을 비판했다. 빅토르 위고와 조르주 상드의 재정적 성공을 강조했고 발자크를 '진짜 기업가'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창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선정적 소설이란 평가를 받은 대표작 『나나』는 덴마크, 독일에서 판매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표준도서'로 꼽힌 『제르미날』도 썼지만 백화점 소유주인 사업가를 주인공으로 한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을 쓴 친자본주의 작가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1880년 자신의 정치성향과 가까운 『볼테르』지에 칼럼을 싣다가 고료를 세 배나 주겠다는 제안에 군주제 지지 우익신문 『피가로』로 옮겨 갔을 정도로 치부에 열심이었다. 단지 한 정당의 편에 선 게 아니라 정당 정치인들의 지저분한 논쟁을 넘어선 칼럼을 연재했다는 점은 인정받아야 하겠다.
"연주창 환자나 크레틴병 환자, 뇌손상을 입은 환자를 데려오라. 그런 이들한테서도 정치인의 자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정치인이 되는 데는 지성도, 강인함도, 독창성도 필요 없고 그저 협력자들과 튀지 않는 무난한 성격만 갖고 있으면 된다."
졸라의 발언은 21세기 한국에서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