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16:45 (토)
[김성희의 역사갈피] 트로트의 반전
[김성희의 역사갈피] 트로트의 반전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12.27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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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수의 '타향살이'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등이 1930년대 중반 인기
일본서 다듬어진 '엔카' 한반도 상륙,'식민지 조선의 신세대'가 즐겨 들어
식민지 조선의 신세대가 즐겨 듣던 '세련된' 음악은 트로트였다. 사진=서울역사아카이브,KBS 프로그램 '가요무대'/이코노텔링그래픽팀.

지난 주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두 개나 시작됐다. '왜색 가요'니 뽕짝이니 해서 신파조의 퇴영적 대중가요로 손가락질 받던 시절과 비교하면 눈부신 반전이다. 한데 '트로트 전성시대'는 고복수의 〈타향살이〉(1934),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 등이 선풍적 인기를 모은 1930년대 중반이 그 시초였다. 적어도 주목할 만한 흥미로운 대중가요 에세이집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이영미 지음, 두리미디어)에 따르면 그렇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트로트는 당대의 '일본에서 들어온 세련된 노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식민지 시대에는 모든 조선인이 식민 당국과 경찰에 짓눌려 일본에 강한 반감을 가졌고, 젊은이들은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들키면 만주로 도망가서 독립군이 되었다고 흔히 생각한다. 이거 고정관념이고 선입견이다.

그런 정서는 1920년대 늦춰 잡아 1930년대 초까지였다. 30년대 중반이 되면 독립운동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열기가 식은 반면 일본은 만주국을 세우는 등 갈수록 위세를 떨치는 형국이다. 당대의 젊은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없었고, 약간의 서당 교육을 거쳐 식민지 제도교육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었다. 요컨대 일본인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일본어 실력을 갖췄고 일본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많았다. 특히 대도시에서 신교육을 받은 이들이 일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 일본 엔카풍의 노래를 빨리 받아들였다.

30년대 중반 서울, 아니 경성은 '댄스홀을 허(許)하라'라는 공개 청원이 나올 정도로 화려한 소비문화를 과시하던 곳이었다. 시대 풍조를 앞서가던 '모던 보이' '모던 걸'을 줄인 '모뽀모걸'이 판치던 시대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트로트는 동경하던 일본의 최신 트렌드였다. 최첨단의 미국 대중음악 영향을 받은 재즈나 블루스와 그리 다를 바 없는, 민요와는 다른 세련된 노래였다. 실제 가왕 이난영이 부른 〈다방의 푸른 꿈〉이나 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은 블루스적인 노래로 꼽힌다. 또한 인기 작곡가 손목인, 전수린, 김해송은 당시 가장 뛰어난 재즈 블루스 작곡가였다.

물론 트로트의 원류가 일본이라는 것은 정설이다. 일본이 서양의 단음계를 받아들이면서 '라시도미파'란 독특한 엔카의 5음계를 만들었고 이것이 식민지 시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한밤중 가로등이 휘황한 혼마치(현 충무로)의 카페에 앉아 유창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던 식민지 조선의 신세대가 즐겨 듣던 '세련된' 음악이 트로트였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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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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