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후 집값 급등하자 89년 노태우정부, 1기 신도시 발표후 수도권에만 벌써 신도시 20곳
강남 아파트 값 죄려 3기 신도시 내놓자 최근 일산 주민 반발 부르는 등 '졸속' 행정 목소리 커져
수도권 비대화로 난개발 등 부작용 …수도권 밖 '직주'(職住)가능한 ‘기업 도시’조성 모색할 때
국내 첫 '경제역사 전문채널'을 표방하는 이코노텔링이 창간 1주년을 맞아 특별취재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코노텔링은 1989년부터 시작된 '신도시 건설 30년'(1989년 1기 신도시ㆍ2003년 2기 신도시ㆍ2019년 3기 신도시 추진)의 발자취와 과제등을 점검하는 특별취재를 했습니다. 오늘부터 세 차례로 나눠 보도하는 이번 신도시 특집은 신도시 건설의 바른 방향과 주거안정이란 두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까라는 물음에 답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5월 7일 정부가 3기 신도시 사업지를 발표한 지 한 달 넘게 1․2기 신도시 주민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3기 신도시 사업지로 경기도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 등 1․2기 신도시보다 서울에 가까운 지역이 발표되자 집값 하락과 교통난 가중, 아파트 미분양 사태를 우려하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주민들은 2기 신도시 사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근 지역에 3기 신도시를 건설해 2기 신도시를 고사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고양 일산과 파주 운정 등 신도시 주민들은 7주째 3기 신도시 반대 집회를 이어갔다. 인천 검단 신도시 주민들도 3기 신도시 지정 철회 촉구 집회에 동참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 또한 정부의 추가 신도시 건설에 회의적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일산 주민들은 고양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와 주민세 납부 거부 운동까지 벌일 태세다.
주민들은 고양시 주민세가 1만2500원으로 성남(5000원)이나 서울시(6000원)보다 많은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서울)강남 집값 잡는데 왜 경기도민들이 희생해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린다. 실제로 인천 검단과 양주 옥정 등 2기 신도시 분양 아파트는 3기 신도시 입지 발표 여파로 청약미달 사태를 빚었다. 3기 신도시보다 서울 접근성이 떨어지자 수요자들에게 외면당한 것이다. 6월 중순에 이뤄진 파주 운정 신도시 분양 전망도 밝지 않다.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고양 창릉이 서울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소 규모 택지개발지구를 제외한 면적 330만㎡(약 100만평) 이상 3기 신도시 사업지로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 5곳을 발표했다. 여기에 2기 신도시 10개, 1기 신도시 5개를 더하면 수도권 신도시는 무려 20개에 이른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을 넘어 '수도권 공화국'이자 '신도시 공화국' '아파트 공화국'이다. 자동차로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서울로 향하면서 보면 고속도로 양쪽이 온통 아파트 숲이다. 화성 동탄(2기 신도시)부터 수원 광교(2기 신도시), 성남 분당(1기 신도시), 성남 판교(2기 신도시)가 차례로 이어진다.

신도시란 무엇인가?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도시가 아니라 계획적,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일컫는다. 기존 대도시에 의존적인 도시나 대규모 주택단지를 신도시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엄격한 의미의 신도시는 생산․유통․소비 기능을 고루 갖춘 경제적 독립도시(자족도시)를 말한다.
그러나 수도권에 이런 진정한 의미의 신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도시(new town)법'을 제정해 장기간에 걸쳐 직장과 주택을 근접시키고 편의시설을 갖추는 등 계획적으로 건설한 영국의 자족도시와 달리 한국에선 서울 집값을 진정시키기 위해 단기간에 주거용 아파트단지를 건설함으로써 '베드타운(bed town)화'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 신도시 개발 초기에는 나름 신도시 취지에 맞게 건설됐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석유화학단지 배후도시로 건설된 최초 산업도시 울산(1962년)이다. 1960년대 후반 서울시가 불량주택 정리 방안으로 세운 광주주택단지(성남 구시가지)는 서울 과밀을 완화하기 위한 신도시 성격이었다. 1970년대 들어 서울 인구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신도시가 건설됐는데 안산(반월), 창원, 과천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1980년 말 택지개발촉진법 제정을 계기로 신도시 공영개발이 활성화됐고, 정부가 신시가지를 조성하면서 '신도시' 용어를 사용했다. 서울의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목동(1983년)․상계지구(1986년) 신시가지 개발이 그런 경우다.
이른바 '수도권 신도시'란 명칭의 본격 개발은 1987년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였다.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며 주택 수요가 증가해 집값이 뛰었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서울 인근, 경기도에 신도시를 건설했다. 그러나 서둘러 짓는 바람에 도시 기능과 환경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자족 기능을 갖추지 못한 채 베드타운화하고 말았다.
1989년 1기 신도시 발표 이후 서울 주변에는 지속적으로 주택이 공급됐다. 1, 2기 신도시만 약 350만명을 수용하는 규모다. 그런데 수도권 인구는 그 이상 증가했다. 주택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안정되거나 하락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는 수요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 때 통하는 이야기다. 공급이 수요를 늘리는 상황에선 가격안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서울 주변 신도시 건설이 그랬다. 1기 신도시가 입주한 1992년 서울 인구는 1094만명, 경기도 인구는 661만명이었다. 이것이 2018년 말 서울 977만명, 경기도 1308만명으로 변화했다. 서울 인구가 117만명 줄어든 반면 경기도는 647만명 급증했다. 수도권 인구의 순증 규모가 530만명에 이른다.
같은 기간 전국에서 증가한 총인구 733만명의 72%에 해당하는 이들이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 몰려들었다는 의미다. 서울과 인천, 수도권 일부 기존 도시에 있는 일자리를 좇아 수도권에로 인구집중이 가속화한 것이다. 그 결과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에선 주택이 남아도는 사태를 빚었다.
공급물량 투하로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수도권 신도시 건설 확대는 적지 않은 문제점과 한계를 노출한다. 서울 집값은 정부의 신도시 건설계획 발표와 아파트 입주 시점에 일시적으로 진정됐다가 이내 되돌아왔다. 1989년(1기, 노태우 정부)-2003년(2기, 노무현 정부)-2018~2019년(3기, 문재인 정부) 등 약 15년 주기로 신도시 건설 계획이 발표됐지만, 집값안정 효과보다 수도권 비대화와 교통난, 난개발, 환경오염 등 여러 문제를 잉태했다.
국가의 균형발전을 꾀해야 할 정부가 수도권에 주택공급과 교통 인프라를 집중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이미 국토의 12%인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살고, 1000대 기업 본사의 74%가 위치하는 상태에서 수도권 신도시 추가 건설은 지방소멸을 부채질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일자리다. 서울 중심의 주택 수요를 줄이고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서울 밖, 수도권 밖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절실하다. 잠만 자고 일은 서울로 일하러 가기 위해 새벽부터 이동해야 하는 '수도권 베드타운' 말고 일자리와 교육시설을 갖춘 '수도권 밖 기업도시'를 곳곳에 만드는 것이 실효성 있는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