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5 07:10 (월)
[해외취재=신냉전의 '중재역' 튀르키예(옛 터키)를 찾아서]②에르도안의 승부수
[해외취재=신냉전의 '중재역' 튀르키예(옛 터키)를 찾아서]②에르도안의 승부수
  • 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
  • iexlover@hanmail.net
  • 승인 2022.08.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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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폭등과 리라화 폭락 등 경제난 이어지자 대선을 앞두고 '3선 가도'에 위기감 느껴
보수층 결집 노려 '튀르키예'로 국명 변경… 곳곳에 국기 내걸어 ' 민족의 자부심' 자극
내년 공화국 출범 100년…에르도안 대통령, 국부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 반열 노려
국기와 국부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 에르도안 현 대통령 얼굴 모습이 걸린 거리 플래카드. 사진=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
국기와 국부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 에르도안 현 대통령 얼굴 모습이 걸린 거리 플래카드. 사진=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

튀르키예 방문 기간 중 인상적이었던 장면의 하나는 곳곳에 펄럭이는 튀르키예 국기 모습이었다. 새빨간 바탕에 흰색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국기(月星旗=아이 이을드즈)는 건물이나 공공장소, 주택, 상점가, 도로변은 물론 다리 위나 구릉, 심지어 농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일단 집밖에 나서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드물 정도였다. 튀르키예인들의 민족적 자부심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은 자율적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국기를 내건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국경일에도 겨우 태극기를 내거는 한국인의 국기 사랑은 초라하다고나 해야 할까.

수년째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인플레로 인한 물가 폭등, 리라화 가치 폭락 등으로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지금 그들에게 펄럭이는 국기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외국인인 나에게는 곳곳에서 펄럭이는 국기가 그나마 그들을 위로하고 달래며 결속시켜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때마침 튀르키예 방문 직전인 지난 6월 우리에게 친숙했던 '터키(Turkey)'란 국명이 '튀르키예(Türkiye)'로 바뀌었다. 6월 2일(현지 시간)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이 터키 요청에 따라 국명을 터키에서 튀르키예로 변경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밝힌 게 물꼬를 텄다. 우리 외교부도 필요한 절차를 거쳐 6월 24일부터 튀르키예 국명을 공식적으로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오스만제국의 후예로서 민족적 자부심이 유달리 강한 튀르키예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잘 없는 국명 변경까지 하고 나선 데는 필히 무슨 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국부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이 숨을 거둔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사진=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br>
국부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이 숨을 거둔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사진=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

무엇보다 이전 국명 터키의 영어식 표기(turkey)가 튀르키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칠면조'를 가리키는 데다 '겁쟁이', '패배자'를 의미하는 속어로도 사용된다는 점을 든다. 그래서 들고나온 국명이 이 나라 말로 '터키인의 땅'을 의미하는 튀르키예(Türkiye)였다. '튀르크'라는 말에 '용감한 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 문화와 문명, 가치를 가장 잘 표현한 단어"라며 지난 연말부터 국명 변경 캠페인의 강도를 더욱 높여왔다. 이에 앞서 2020년 에르도안은 수출품 상표에 '메이드 인 터키' 대신 '메이드 인 튀르키예'를 써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스탄불 공항에 진열된 올 초 생산 제품에서 '메이드 인 튀르키예'가 적힌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와 관련, 물가 폭등과 리라화 폭락 등 심각한 경제난이 계속되자 내년 대선을 앞두고 3선 가도에 위기감을 느낀 에르도안 대통령이 보수층 결집을 노려 이런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도 들었다. 아무튼 국제 사회가 국명 변경을 완전히 수용하는 데는 적어도 수년은 걸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주지하다시피 튀르키예의 전신은 14세기부터 600여 년간 절대군주 술탄이 지배했던 서아시아 강성 대국 오스만제국이었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오스만제국이 쇠퇴하자 이들은 치열한 독립운동 끝에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을 출범시켰다. 내년(10월 29일)이면 공화국 출범 100주년을 맞는다.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나부끼는 국기 앞에 선 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 사진=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나부끼는 국기 앞에 선 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 사진=이코노텔링 성태원 편집위원.

튀르키예를 다니다 보면 국기와 두 대통령의 얼굴 모습을 함께 담은 대형 플래카드가 높다랗게 걸려 있는 모습을 간혹 보게 된다. 공화국 국부로 추앙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재 대통령의 모습이다. 이를 두고 에르도안이 자신을 국부 아타튀르크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고 한다.

아무튼 이들 두 지도자는 튀르키예 공화국 100년의 초반(16년)과 후반(19년)을 화려하게 장식해온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들이다. 두 사람이 공화국 100년의 3분의 1 이상을 통치해온 셈이다. 이들의 정치 역정만 잘 이해해도 튀르키예 100년 역사 공부에 큰 도움을 얻게 된다는 말도 들었다.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은 군인 출신으로 오스만제국 쇠퇴와 1차 대전이란 격랑 속에서 해체될 뻔한 조국을 치열한 독립운동 끝에 건져내 '터키 공화국'을 출범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민족주의와 세속주의에 기반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사실상 이슬람국인데도 국교를 인정 않고 정교분리를 하는 등 혼란기를 딛고 공화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술탄제와 일부다처제 폐지, 종교 자유화(이슬람 非국교화), 여성 지위 향상(운전·사회활동 허용·차도르 의무 폐지), 앙카라 행정수도 건설, 터키어 제정(27개 자모음 제정, 문맹 퇴치) 등이 서구화 개혁을 지향한 그의 주요 공적들이다.

그는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 신병 치료와 집무 차 머물렀던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서거했다. 국부 추모 열기에 빠진 당시 터키인들은 돌마바흐체 궁전 시계를 모두 9시 5분에 맞춰 세웠다. 84년 후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도 시간은 9시 5분을 가리켰다. 지금도 매년 11월 10일 오전 9시가 되면 5분간 묵념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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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22-08-02 12:02:42
기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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