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5:50 (수)
[김성희의 역사갈피]접이우산은 '18세기 사치품'
[김성희의 역사갈피]접이우산은 '18세기 사치품'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6.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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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시대의 발명가 장 마리우스, 가방 여닫는 금속장치 기술 우산에 접목
발명 50년후도 '명품' 대접…佛왕립과학원은 '어떤 제품보다 가볍고 튼튼"호평
루이 14세 시대의 발명가 장 마리우스는 1705년 가방을 여닫는 금속장치를 만드는 기술 등을 우산에 접목시켜 '접이우산'을 만들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장마가 시작됐단다. 집을 나서기 전에 일기예보를 살피고 우산을 챙기는 것이 일상이다. 설사 우산을 잊고 나섰다가 소나기를 만나더라도 도시라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편의점엔 비교적 저렴한 우산들이 상비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요즘은 우산이 일회용품으로 여겨질 정도지만 '접이식 우산'이 등장했던 18세기엔 사치품이었다. 그것도 과학자들의 검증을 받은.

우산의 역사는 오래됐다. 이집트 시대 벽화나 그리스 화병에 등장하는 우산 비슷한 물건은 양산이었다. 방수 효과가 없는 햇빛 가리개였기 때문이다. 우산을 가리키는 영어 'umbrella'는 '그늘'을 뜻하는 'umbra'란 접두어를 가진 라틴어에서 비롯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단 이때 양산은 신분의 상징이었다. 고대 그림에서 양산을 받쳐주는 하인들이 등장하는 데서 보듯 양산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를 들어줄 종을 따로 둘 만한 부와 권세를 가졌다는 의미였다.

그러던 것이 1677년 프랑스에서 방수 처리된 천으로 만든 우산이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 우산은 육중한 비막이에 지나지 않았다. 고래 뼈나 나무로 짠 우산살에 가죽을 씌워 만들었기에 무게가 1.8킬로그램, 길이는 1.2미터에 달해 여성들은 들고 다니기에 만만치 않아 남성들이 대신 들어줬다. 몽테뉴는 저서 《수상록》 중 '허영에 대하여'란 글에서 "양산이 머리의 피로를 덜어주기는커녕 팔만 아프게 한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 처치곤란했던 우산을 앙증맞고 세련된, 멋쟁이들의 동반자로 만든 것은 루이 14세 시대의 발명가 장 마리우스 덕분이다. 본래 가방장인이었던 마리우스는 1705년 가방을 여닫는 금속장치를 만드는 기술 등을 우산에 접목시켜 '접이우산'을 만들었다. 쇠로 만든 우산대에 기름이나 고무를 입혀 방수효과를 낸 마리우스의 '작품'은 쉽게 펼치고 접을 수 있는 데다 우산대 길이도 반으로 줄일 수 있는 획기적 발명이었다. 무게 140~170그램에 19~23센티미터로 접을 수 있는, 접이식 우산은 발명된 지 50년 후에도 일반 우산의 몇 배 가격이었을 정도로 '명품' 대접을 받았다.

루이 14세는 얼마나 맘에 들었던지 몰래 접이우산을 만든 이에게는 5만 달러에 상당하는 벌금을 물리겠다는 엄포로 마리우스에게 5년간 접이우산 생산 독점권을 부여했다. 뿐만 아니다. 무려 프랑스 왕립과학원은 '어떤 제품보다 가볍다' '견고하고 튼튼하다'는 등 호의적 평가를 내려 마리우스의 발명품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결과 접이우산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 풍경을 바꾼 것은 물론 우산을 받쳐 들 하인을 데리고 다닐 필요가 없어진 여성들에게 활동의 독립성을 키워줘 문화사의 작은 전환점을 마련했다.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에 관한 역사를 정리한 『스타일 나다』(조안 드잔 지음, 지안)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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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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