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산업 국유화하고 노동자에겐 13개월치 월급줘
국제 수지 파탄나고 인플레 격화되자 민주주의 조작
한때 선진국 문턱서 좌절한 후 ' 2류 국가 ' 못 벗어나
인기에 취한 대통령이 남긴 국가적 재앙은 반면교사
아르헨티나 하면 뭐가 떠오르는지? 메시와 축구 말고는 이렇다 할 자랑거리가 생각나지 않는 이 나라가 20세기 초반엔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초로 경제도약을 이룬 국가로, 제2차 대전 중에는 임금이 서유럽 수준까지 올랐고 그때까지는 남반구에서 호주 외에는 볼 수 없었던 번영을 이뤘었다.
아르헨티나를 망친 건 정치였다. 1920~66년 사이에 정권이 바뀌는 군사쿠데타가 7차례 일어났는데 그 중 주목할 것이 1943년의 '거사'였다. 당시 군사정부가 노동부 장관에 임명한 후한 페론 대령이 그 후 두고두고 아르헨티나의 운명에 영향을 끼쳤으니 말이다.
빈농의 아들인 페론은 미남이었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한때 사회학을 공부한 '사이비 지식인'으로 이념적 표현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매수를 통해 노조를 장악하여 대중적 지지 기반을 마련했는데, 자신을 추종하는 노동자 세력을 '셔츠를 입지 않은 사람들'-사실 그들은 좋은 보수를 받고 있었다-이라 부르고 자신의 철학을 '정의(正義)주의'라 이름 짓는 식이었다.
페론은 1945년 군부 동료에게 체포당하는 시련을 겪은 후-이때 그의 석방을 끌어낸 것은 호전적인 여성 운동가인 그의 정부 에바 두아르테였다-그해 아르헨티나 역사상 몇 안 되는 자유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중'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이 된 페론은 사회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름으로 어떻게 얼마나 국가 경제를 망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중앙은행을 비롯한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단번에 '큰 정부'와 '복지국가'를 만들어냈다. GNP에서 공공 서비스 지출 비중이 5년 만에 19.5%에서 29.5%로 늘어났다. 노동자들은 일 년 일하고 13개월의 월급을 받는 등 복지 혜택은 스칸디나비아 수준을 따라잡았다. 노동자에게 후한 회사를 찾아내 다른 회사들에게도 이런 관행을 따르라고 강요했다. 페론은 사람들에게 '즉시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재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폼나게!
그러나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는 법. 그렇게 50년대 들어 국가 자본이 탕진되고, 국제수지는 파탄나고, 인플레이션이 격화하면서 지지세력이 이탈하자 페론은 머릿수로 민주주의를 조작하는 정치적 독재를 시작했다. 대법원을 박살내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대학교를 타락에 빠뜨리고, 헌법을 조작했다. 무엇보다 '공공의 적'을 끊임없이 창조하는 신기를 발휘했다.
결국 1955년 군사쿠데타로 페론은 파라과이로 피신해야 했다. 그후 잠깐 대통령직에 복귀하기도 했지만 이른바 '페론주의'가 조국에 남긴 그림자는 짙고 컸다. 한때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한 이후 2류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폴 존슨이 쓴 『모던 타임스 Ⅱ』(살림)에 나오는, 포퓰리즘의 원조라 할 '페론주의'의 시말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다. 어째, 남의 나라 일로만 읽히지는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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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