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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1919년 4월 '국민대표기구' 출범
[김성희의 역사갈피] 1919년 4월 '국민대표기구' 출범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4.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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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국회의원(임시의정원 의원) 임기는 해방직전까지 종신제
독립운동 중이어서 친일파나 밀정 등 가려내려 의원 자격심사 제도 운영해
안창호"과거 대한에 황제는 한 명이었지만 지금은 2천만 국민이 모두 황제"
 3·1운동 직후 수립된 임시정부는 통념과 달리 하나가 아니었다. 잘 알려진 상하이 외에도 연해주에 대한국민의회, 국내에도 잠시지만 한성임시정부가 만들어졌다. 사진(상하이대한민국임시정부 초기 청사(왼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이코노텔링그래픽팀.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은 지 한 달 남짓 되었는데 여전히 시끄럽다. 선거라는 것이 으레 그렇기도 하지만 이번 경우엔 그야말로 박빙의 차로 승부가 갈린 데다 신구 정권 간의 갈등이 불거져 더욱 그런 모양새다.

이쯤에서 문득, 대한민국 정부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상하이 임시정부는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우리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의의나 활약은 배우지만 그 운영을 알 기회는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마침 『만인만색 역사공작단』(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미디어팀 지음, 서해문집)에 이에 관한 글이 실려 흥미롭게 읽었다.

우선 3·1운동 직후 수립된 임시정부는 통념과 달리 하나가 아니었다. 잘 알려진 상하이 외에도 연해주에 대한국민의회, 국내에도 잠시지만 한성임시정부가 만들어졌다. 임시정부 통합과정은 젖혀두고 당시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융희제가 살아 있음에도 민주공화정 체제를 꾀했다는 사실은 꽤나 자부심을 가졌던 듯하다. 1919년 4월 제정된 '대한민국임시헌장'은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라고 민주주의 정부 지향을 명문화했는데 이를 두고 1920년 상하이 임시정부 신년축하회에서 도산 안창호가 "과거의 대한에 황제는 한 사람이지만 지금은 2천만 국민이 모두 황제이다"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임시헌장' 제2조는 임시의정원이 정부를 운영한다 했으니 이것이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국민대표기구다. 하지만 식민 치하에서 이국에 몸을 둔 마당에 의정원 의원들은 어떻게 뽑았을까. 1919년 제정된 대한민국임시의정원법에 따르면 의정원 정원은 총 57명이었다. 국내 선거구는 도 단위로 경기·충청·전라·경상·함경·평안도에선 각 6명, 강원·황해에선 각 3명의 의원을 뽑았다. 망명 정부답게 국외 선거구도 두었으니 중국·러시아에선 각 6명, 미주에선 3명의 의원을 뽑았다.

임기는 개정을 거치면서 2년에서 종신제로 변경된 후 1944년 헌법 개정으로 3년제가 될 때까지 종신제였다. 민주 정부를 지향하면서 의원 임기를 종신제로 한 것은 현실적 이유가 있었다. 의원 정원을 채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기할 것은 의원 자격심사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유권자(?)의 실질 투표가 불가능했기에 선거는 사실상 상하이 거주 독립운동가들이 출신 지역별로 나눠 대표를 뽑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그 당선 증명서를 임시의정원장이 심사해서 등록하게 했다. 이를 두고 의원을 선출한 인민의 권리 침해라는 반론도 있었지만 독립운동 중이었고 친일파나 밀정 등 부적격 의원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현실론이 우세해 의원 자격 심사는 해방까지 내내 유지되었다 한다.

따져 보면 상하이 임시정부는, 특히 임시의정원은 '국민의 대표'라기보다는 '독립운동가의 대표'라는 성격이었지만, 이는 시대 상황이 낳은 어쩔 수 없는 한계라 하겠다. 그렇다 해도 광복 후 직접·비밀·자유·보통선거로 뽑은 '선량' 나으리들이 당파나 사익 대신 민의를 제대로 반영했느냐는 여전히 의문이 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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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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