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23:55 (목)
[김성희의 역사갈피]미국의 해묵은 진영갈등
[김성희의 역사갈피]미국의 해묵은 진영갈등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4.11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예해방 둘러싼 미국의 분열 … 링컨의 암살로 진영 갈등 고조
남부 거들던 전 대통령이 조기 안달자 시위대 몰려 가 해명 요구
피어스"애국심 증명하기 위해 조기 달 필요있나"시위대 따돌려
1865년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암살당한 노예해방을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프랭클린 피어스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코노텔링그래픽팀.
프랭클린 피어스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1865년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암살당한 노예해방을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코노텔링그래픽팀.

"나의 슬픔에 대한 가장 큰 위로는 타인의 불행"이란 말이 있다. 인간 심리를 갈파한 지적으로 나름 일리가 있다. 이를 위함인지 인류 역사상 사건 사고, 불행 등을 날짜별로 정리한 '역사'책이 있다. 미국 칼럼니스트 마이클 파쿼가 쓴 『지독하게 인간적인 하루들』(추수밭)이 바로 그 주인공.

이 책의 4월분을 뒤적이다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띄었다. 1865년 4월 14일 노예해방을 이끈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암살당했다. 암살범은 남부연맹 지지자인 존 윌크스 부스였다. 노예해방은 나라가 남북으로 갈려 4년간 전쟁을 벌였을 정도로 뜨거운 이슈였던 만큼 링컨 대통령에 대한 지지자와 혐오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형세였다. 당연히 링컨 대통령의 피살은 온 미국을 들끓게 만들었다.

슬픔과 분노에 젖은 지지자들은 무리를 지어 남부를 동정한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링컨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이들을 공격했다. 구타를 하기도 하고, 칼로 찌르는 등 린치가 난무했다.

4월 16일 이들 중 일부가 뉴햄프셔주 콩코드에 있는 프랭클린 피어스 전 대통령 집 앞에 몰려들었다. 링컨의 전전임으로 14대 대통령이었던 피어스는 남부에 기울어진 정책을 취해 훗날 역사가들이 미연방 붕괴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한 인물이었다.

어쨌든 당시 문제는 민주당 출신의 피어스가 링컨을 "미국 내 모든 악의 매개체"라 공격하며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판단력 부족과 부정의 극치이자 흑인들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빌미를 주었다"고 비난했다는 점이다. 링컨의 피살에 흥분한 군중은 피어스에게 왜 다른 사람들처럼 집에 검은색 천을 두르지 않았는지-링컨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은 집에 검은 천을 둘렀다-왜 조기(弔旗)를 달지 않았는지 이유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피어스는 의연했다. 군중 앞에 나선 그는 자신도 링컨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응수하면서도 "그렇다고 애국심을 증명하기 위해 꼭 조기를 달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 덕인지 성난 군중은 잠잠히 흩어졌다.

"내 피를 끓게 하는…독재라"라고 링컨을 매도했던 13대 대통령 밀러드 필모어는 성난 군중이 버펄로이 있는 그의 자택을 아예 검은색 페인트로 칠해 버리는 수난을 겪었다. 이에 필모어는 병든 아내를 간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고 해명하고서야 더 이상의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제20대 대선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그야말로 박빙의 표차로 승부가 갈린 탓인지 대립, 갈등, 불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듯하다. 이 와중에 그나마 파쿼가 들려주는 이 역사적 사실을 보면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는 국론 분열, 진영 간 대립으로 '총'을 겨누는 데까지는 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