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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초나라 장왕의 인사
[김성희의 역사갈피] 초나라 장왕의 인사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3.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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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희라는 장왕의 비는 사심 없이 미인을 골라 왕에게 바쳤다며 왕의 '사람 보는 눈' 질타
측근이 유능한 사람 천거 안한 사실 빗대…'쓸 만한 사람'은 그가 추천한 인사 보면 알아
정권이 바뀌면 벼슬자리도 물갈이 되며 이 과정에서 자천타천 여러 인재들이 거론된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리더를 위한 고전을 꼽는다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와 더불어 동양권에선 『정관정요』가 흔히 꼽힌다. 왜 있잖은가. '정관의 치'를 이룬 당 태종과 신하 간의 치국 논담을 엮은 책, 다산의 『목민심서』와 더불어 유명 정치인의 서가를 장식하던 책.

한데 당 태종이 역대 제왕의 통치술 중 요체를 뽑아 엮도록 한 『군서치요(群書治要)』는 정작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중국에선 실전되고 일본 천황들의 애독서였다가 근대 들어 조명을 받게 된 기구한 사연 탓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샤오샹젠이란 중국 학자가 추려 엮은 『군서치요』(김성동·조경희 옮김, 싱긋)를 보다가 마침 요즘 뉴스의 중심인 대통령 인수위가 떠올라 한 대목 소개한다.

초 장왕(楚莊王)은 기원전 6세기 인물로 춘추전국 시대에 천자를 대신해 패권을 쥐었던 오패(五霸) 중 한 명이다. 그는 다양한 일화를 남겼는데 즉위 후 3년간 정사를 돌보지 않고 가무음곡만 즐기다가 나라를 일으킨 '불비불명(不飛不鳴·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음. 큰일을 위해 때를 기다리는 모습)', 신하들에게 무한 신뢰를 표시한 '절영지연(絶纓之宴·갓끈을 끊고 즐기는 연회)' 등이 그런 예이다.

여기서 소개하려는 일화는 그의 비 번희(樊姬)가 주인공이다. 번희는 새와 짐승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사냥에 빠져 국사를 등한히 하는 장왕을 깨우쳤다는 현명한 여인인데 하루는 밤 늦게 '퇴청'하는 장왕에게 이유를 물었다.

장왕이 충성스럽고 현명한 심영윤(沈令尹)과 정사를 논하느라 늦었다 답하니 번희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하는 말.

"제가 군왕을 모신 지 십일 년이 되었는데 그간 밖에서 미인을 찾아 군왕께 바쳐, 지금 소첩과 지위가 같은 이가 열 명, 소첩을 뛰어넘은 이가 두 명입니다. 소첩이라고 설마 군왕의 총애를 독점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감히 개인의 이기심으로 많은 미녀들을 막을 수 없었던 겁니다. 심영윤은 초나라 재상이 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그가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거나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을 파면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어찌 충성스럽고 현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장왕이 번희의 말을 심영윤에게 전하니 그가 두려워하며 즉시 손숙오(孫叔敖)를 천거했다. 손숙오는 이후 초나라를 3년 다스려, 장왕이 제후의 맹주가 되도록 했다.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벼슬자리도 물갈이 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자천타천 여러 인재들이 거론될 터다. 기용 여부는 능력과 도덕성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겠지만, 친분보다는 어떤 사람을 추천했는가도 '쓸 사람'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의미 있는 잣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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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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