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4:30 (금)
[김성희의 역사갈피] '망국의 지도자' 고종의 즐거움
[김성희의 역사갈피] '망국의 지도자' 고종의 즐거움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3.2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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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한 뒤 권세는 잃었지만 '이완용의 도움'으로 일신의 부귀 영화 탐익
한일합병 이듬해부터 조선총독부로부터 매년 천문학적인 세비(歲費)받아
광무개혁 추진하고,헤이그에 밀사 파견한 ' 계몽군주 '란 평가는 재론 여지
고종(왼쪽)을 비롯한 조선 왕족들은 한일합병 후 비록 권세는 잃었을지 몰라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사진=서울역사박물관/이코노텔링그래픽팀.

고종 하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비운의 군주'가 떠오른다. 중고등학교에서 받은 국사 교육 덕분이다. 조금더 나아가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개혁을 추진하고, 헤이그 밀사를 파견하는 등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 '계몽군주'?

그런데 머리가 굵어지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대한제국은 왜 전투 한 번 없이 망했을까, 한일합병 후 고종은 어떻게 지냈을까, 울분에 차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심했을까 등등 말이다.(1907년 퇴위한 고종은 1919년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란 부제가 붙은 『매국노 고종』(박종인 지음, 와이즈맵)에 나온다.

"옥돌장(玉突場·당구장)에 나가서 공을 치시는데 극히 재미를 붙여 여관(女官)들을 함께하신다. 여름에는 서늘한 때에 석조전에서 청량한 바람을 몸에 받으시며 내인들을 데리고 이야기도 시키고 유성기 소리도 즐거워하신다더라."

이게 1913년 8월 29일, 그러니까 한일합병 3년 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실린 고종의 일상을 다룬 기사이다. 그해 고종 회갑연이 성대하게 열려 광교와 다동기생조합 소속 예기(藝妓)들이 잔치에서 노래하고 춤을 췄다는 기록도 있다.

그렇다. 고종을 비롯한 조선 왕족들은 나라가 망한 뒤 비록 권세는 잃었을지 몰라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어쩌면 이완용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1910년 8월 22일 병합 담판을 벌일 때 일본 측이 황제 순종을 왕보다 아래인 대공(大公)으로 격하하려 하자 이완용은 "중국에 조공할 때도 왕 호칭은 유지했다"며 반대했으니 말이다. 그 결과인지 전문 8개 조의 '한일합병조약' 중 2개 조가 조선 황실의 신분·경제적 보장 조항이었다. 이렇게 해서 순종의 직계는 일제 천황가의 일족인 왕족, 그 형제들은 공족(公族)으로 일본 황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조약에 따라 이들은 합병 이듬해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줄곧 조선총독부로부터 세비(歲費)를 받았는데 그 금액이 막대했다.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50만 엔, 이후 1945년까지 180만 엔을 받았다. 이게 어느 정도인가 하면, 1911~1913 회계연도의 조선총독부 세출예산이 5,046만 엔이었으니 그중 2%가 넘는 비중이었다. 올해 우리 정부 예산이 600조가 넘으니 현 화폐가치로 이 왕가가 어느 정도 받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역사적 인물에 관한 평가는 어렵고, 그만큼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지만 이 책 말미에 실린 이런 사실을 보면 고종은 나라와 백성이야 어찌 됐든 개인의 안위에만 골몰했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또는 순진했을진 몰라도 아주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였다는 평가도 벗어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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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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