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5:25 (금)
[김성희의 역사갈피]나쁜 지도자들이 뽑히는 까닭
[김성희의 역사갈피]나쁜 지도자들이 뽑히는 까닭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3.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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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역할을 잘 할 사람들을 선택하는 이른바 '사바나 가설'
수렵본능 진화흔적…요란한 제스처는'석기시대 두뇌에 호소'
『권력의 심리학』(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웅진지식하우스)라는 책의 내용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석기시대였다면 훌륭한 전사나 사냥꾼이 됐을 ‘남자’들과 같은 신체적 특징을 가진 사람을 지도자로 고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권력의 심리학』(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웅진지식하우스)라는 책의 내용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석기시대였다면 훌륭한 전사나 사냥꾼이 됐을 '남자'들과 같은 신체적 특징을 가진 사람을 지도자로 고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권력의 심리학』(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웅진지식하우스)란 책이 있다. 영국의 국제정치학 부교수이자 정치컨설턴트가 나쁜 사람이 권력을 쉽게 쥐는지, 권력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지를 심리학 측면에서 분석한 책이다.

여기 '사바나 가설'이란 꽤 흥미로운 내용이 소개된다. 우리에게는, 석기시대였다면 훌륭한 전사나 사냥꾼이 됐을 '남자'들과 같은 신체적 특징을 가진 사람을 지도자로 고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렵채집민의 본능이 현대에도 유지되는 진화의 흔적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당대 남성들의 평균 키보다 컸으며, 대체적으로 키 큰 후보들이 작은 후보들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단다.

이렇게 권력을 잡은 '스트롱맨'들이 위세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데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책에 따르면 1675년 프로이센에서 포츠담 자이언츠(Potsdam Giants)란 보병대가 창설됐다. 키가 187센티미터 이상인 병사로 이뤄진, 말하자면 '특수부대'였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사람들로 구성된 부대였으니 말이다.

유별난 군주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이 부대에 어느 정도 애착을 보였느냐 하면 유럽 전역에서 키 큰 사람들을 납치해 병사로 만들 정도였다. 뿐이랴. 납치 계획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자 키 큰 사람들을 육성하기 위해 아예 키가 큰 남자와 여자를 강제로 결혼시키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효과는 어땠을까. 왕의 자부심은 꽤나 만족시켰겠지만 총이 등장하면서 "총 한 자루와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 하는 손가락만 있으면" 키라는 신체적 특징은 전쟁의 승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던 시대가 도래했다. 결국 포츠담 자이언츠는 결코 키가 크다고 할 수 없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군대에 격파되어 1806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나폴레옹은 '땅꼬마'라 불릴 정도로 키가 작았으며, 오히려 작은 키가 그의 성취욕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는 '나폴레옹 콤플렉스'설이 나왔을 정도였다.

이제 막 끝난 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한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유력 후보들의 유세에서 등장한 어퍼컷과 발차기가 떠올랐다. 누가, 어떤 의도에서 구상했는지 모르나 그런 공격적인 자세는 우리의 '석기시대 두뇌'에 호소하는 바가 있지 싶다. 한편으로는 21세기 명재상으로 꼽힌 독일 메르켈 총리는 과연 선거운동 때 '근육의 힘'을 제시했을까 의아하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의 진정한 정치 선진화는 휠체어에 앉은 여성이 대통령으로 뽑힐 때 이뤄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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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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