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선 1890년대부터 '비만과의 전쟁'…공용 체중계 널리 유행
몸매 가꾸기 기구와 약물 인기 …기성복, 다이어트 붐에 큰 몫
고대 그리스 조각 중 '미로의 비너스상'은 여성미의 상징 중 하나로 꼽힌다. 한데 곰곰 생각해 보면 이 비너스는 현대 미인의 조건이라는 날씬함과는 거리가 있다. 비만형은 아니지만 좋게 말해서 풍만하다는 인상을 주어서다.
『다이어트의 역사』(운노 히로시 지음, 탐나는 책)에 따르면 날씬함이 중시되고, 그리하여 식단과 식사량을 조절하는 다이어트가 붐을 이루게 된 것은 불과 100년 남짓한 일이다. 19세기 말 이전에는 유럽에서도 뚱뚱한 몸매가 오히려 부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비만은 먹고 싶은 것을 양껏 먹을 수 있는 신분의 상징이었으니 말이다. 중류계급은 비만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살찔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산업혁명 이후 중류계급이 필요한 양보다 더 먹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기자 비만이 보편적 현상이 되면서 다이어트가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금도 '다이어트의 왕국'이라 할 미국의 경우를 보면, 1890년대부터 1910년 사이에 비만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날씬한 몸매를 만들어준다는 약물과 기구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공공장소에서 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체중계가 1891년부터 널리 유행했다. 우리나라 대중목욕탕에 가면 놓여 있던 그것 말이다. 1900년 무렵엔 뉴욕 등 주요 도시에 체중조절을 위한 체육교실이 등장했다.
이어진 제1차 세계대전은 여기에 불을 붙였다. 전시에 뒤룩뒤룩 살이 찐 사람은 비애국자 취급을 받았다. 뚱뚱한 사람들은 물자가 부족한 마당에 사치스런 입 호강을 하기에 살이 쪘다는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바야흐로 다이어트는 도덕적 추동력을 얻기에 이른 것이다.
그 결과 1900년 전후 미국에서 미녀의 전형은 '깁슨 걸'이었다. 가는 허리와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지닌 늘씬한 몸매의 '깁슨 걸'은 1895년에서 1914년에 걸쳐 활동한 찰스 데이나 깁슨이란 화가의 작품으로 각종 매체를 장식하며 뭇 남성의 시선을 빼앗고 많은 여성의 한숨을 자아냈다.
뜻밖에도 기성복이 다이어트 붐에 한몫했단다. 땅덩이가 넓은 만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20세기 초까지는 통신판매를 통한 옷 구입이 대세였다. 통신판매 옷 주문서를 작성하면서 사람들은 새삼 자기 몸매를 파악하고 체중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대형 의류회사와 백화점 등이 정한 '몸매 줄 세우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몸에 옷을 맞추는 게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춰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원하는 사이즈를 입으려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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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