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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⑤ '호모나랜스'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⑤ '호모나랜스'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2.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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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 …"인간의 프레임에 대한 사용과 인지는 무의식적ㆍ즉각적"
모든 영화 역시 프로파간다…갱스터 영화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벌 받는다는 선전물

내러티브나 프레임에는 '전략'이 있다. 말하는 화자(話者)가 듣는 청자(聽者)의 시선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고 싶어서다. 화자는 청자에게 이것 또는 저것을 보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략'은 다양하다. 중요한 내용을 빼거나 더하거나 키우거나 줄이는 등의 전략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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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질문 하나 해 보자. 영화에서 내러티브ㆍ프레임 전략은 반드시 필요하냐는 것이다. 어떨까? 답은 '예스(yes)'다. 영화뿐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조차 내러티브ㆍ프레임 전략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왜? 그것이 바로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한한 행동 요소를 모두 말할 수 없다. 의미 있는 것만을 간추려 '이야기' 형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 즉 '호모나랜스(Homonarrans)'인 것이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프레임에 대한 사용과 인지는 무의식적ㆍ즉각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간의 특성은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일찌감치 연구대상이 됐다.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에서 말하는 '자연적 태도(Natural Attitude)', 이를 사회학과 접목시킨 사회학자 알프레드 슈츠(Alfred Schutz)의 '즉각적인 재고지식(Stock Knowledge at Hand)' 등의 개념을 생각해 보라. 내러티브나 프레임 개념과 중첩되는 부분이 많다. 사회학에 처음 '프레임' 개념을 도입한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이 이들 '현상학적 사회학'의 후예임은 우연이 아니다.

■ 내러티브, 프레임, 그리고 프로파간다

내러티브ㆍ프레임 논의에서 '화자의 의도'에 대한 것은 더 많은 얘기가 필요하다. 내러티브ㆍ프레임 개념 안에는 "상대방의 시각이나 세계관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는 어느 정도의 의도가 포함된다"고 했다. 따라서 내러티브ㆍ프레임 개념은 흔히 이데올로기 개념과 연결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개념들이 정치나 미디어 영역으로 넘어가며 이 '의도'라는 측면이 더욱 강조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정치나 미디어 영역에서의 내러티브ㆍ프레임 개념은 매우 부정적이다. '조작'이나 '덫' '거짓' 등의 의미를 포함하는 경향이 강하다.

최초의 프로파간다 영화로 여겨지는 1912년 작 '루마니아의 독립'
최초의 프로파간다 영화로 여겨지는 1912년 작 '루마니아의 독립'

우리는 또한 정치와 미디어 영역에서 이 같은 성격을 반영한 또 하나의 개념이 발전해 왔음을 안다. 그래, 바로 '선전(宣傳)'으로 번역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다. 프로파간다 개념은 고대사회로까지 소급된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개념도 400년 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용어 자체가 1622년 개신교와 대항하기 위해 가톨릭교회에서 만든 것이다. 이후 1776년 미국 독립혁명, 1789년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점차 그 중요성을 인식하다 20세기 들어 터진 두 개의 세계전쟁에서 실질적인 진가가 발휘됐다.

영화도 프로파간다의 도구다. 최초의 프로파간다 영화는 1912년 만들어진 <루마니아의 독립(Independența României)>이란 게 정설이다. 하지만 1898년 미서전쟁 당시 미국에서 만들어진 일부 영화들도 프로파간다 성격을 띤다는 주장이 있다. 이들 영화들은 ➀특정한 자신의 시각이나 논리를 기반으로 ➁무한한 행위 요소 중 일부만을 선택ㆍ구성해 ➂전쟁 또는 싸움의 명분을 제시하거나 애국심을 고취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프로파간다 영화의 역사는 영화 자체의 역사와 거의 동일하다 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의문이 제기된다. 프로파간다 영화는 세상이 말하는 '일반적인' 프로파간다 영화에 한정되는가라는 의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내러티브와 프레임에 대해 공부했고 이를 프로파간다와 연계시켰다. 내러티브와 프레임, 프로파간다 등 세 개념의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내러티브ㆍ프레임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의 '필연적 요소'임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프로파간다 역시 모든 영화의 속성일 수 있지 않을까? 다음 논리를 다시 한 번 따져 보자.

➀ 인간은 내러티브와 프레임을 도구로 해 말하고 이해한다. 즉,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➁ 내러티브와 프레임의 의미구성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작위성(作爲性)'은 필연이다.

➂ 정치ㆍ미디어 영역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역시 내러티브ㆍ프레임은 꼭 필요하다.

➃ 다만 정치ㆍ미디어 영역에서는 '작위성'의 성격이 특별히 부각된다.

➄ '작위적인 성격이 강한 커뮤니케이션'은 곧 프로파간다다.

➅ 영화도 미디어다. 내러티브ㆍ프레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작위'의 성격이 강조되는 것도 다른 미디어와 같다. 따라서 모든 영화는 프로파간다의 성격을 갖는다.

1941년 9월 12일자로 상원에서 채플린에게 보낸 소환장.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제작 배경을 조사할 필요가 있어 부른다는 내용이다.
1941년 9월 12일자로 상원에서 채플린에게 보낸 소환장.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제작 배경을 조사할 필요가 있어 부른다는 내용이다.

묘한 논리다. 이 논리대로라면 "모든 영화는 프로파간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편으로는 맞다. 모든 영화는 "관객의 시선이나 세계관을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는 강한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영화는 프로파간다"인 것이다. 다시 강조한다. 모든 영화는 프로파간다다! 이 말, 이 결론은 필자의 해석일까? 그리고 새로운 해석일까? 필자가 창의적으로 만든 용법일까? 아니다. 이는 80년 전 이미 찰리 채플린이 했던 말이다. 그는 1941년 미국 상원의회 소환을 앞두고 성명 하나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모든 영화는 프로파간다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영화는 사랑의 프로파간다이며 갱스터 영화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프로파간다입니다. 그리고 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민주주의의 프로파간다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채플린의 혜안(慧眼)을 볼 수 있다. 내러티브나 프레임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때였음에도 그는 이미 영화의 진수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하면 안 된다. <위대한 독재자>에 대한 비평을 끝내고, 거기에 역사가 헤이든 화이트(Hayden White)의 말을 덧붙여야 한다. "역사는 내러티브요, 픽션"이라고 말한 그다. 화이트를 공부한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채플린의 이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영화와 역사의 접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자,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접자. 그리고 경제로 넘어가자. 세계대공황은 히틀러의 등장과 성장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우리는 이 얘기를 마친 뒤 다시 영화 <위대한 독재자>로 돌아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패전➨하이퍼인플레이션➨히틀러의 등장➨대공황➨히틀러의 대응➨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독일 역사의 맥락을 보고 그 안에서 영화 <위대한 독재자>가 차지하는 위치를 정리하려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또한, 영화와 역사가 뒤얽혀 하나가 되어가는 아주 기묘한 현상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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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이코노텔링 대기자❙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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