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08:45 (수)
[김성희의 역사갈피] 군자와 신사
[김성희의 역사갈피] 군자와 신사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2.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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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이후 개화와 문명의 상징으로 '신사' (紳士) 등장해
1914년 "선의의 진보로 인도하는 모범적 인물"로 묘사
양복 등 '요건' 갖추려면 당시 의사 다섯 달치 월급 들어
조선은 1881년 일본의 선진문물을 시찰하기 위해 파견된 '신사유람단'에서 근대적 개념의 신사가 등장했으며 이때 유람단의 일원이었던 서광범이 양복을 사 입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사진(1937년  종로양복점(鍾路洋服店))=서울역사박물관/이코노텔링그래픽팀.

"식덕을 겸비한 사람을 이름하니 사회의 중축이 되어 그 사회를 선의의 진보로 인도하는 모범적 인물."

"양반과 상인의 계급적 관념을 발제(拔除)하고 관존민비의 누풍을 타파하며…한인의 발달과 개선의 역할을 부여받은 인물."

누굴까? 지식과 덕성을 모두 갖추고, 사회를 이끌 시대적 사명을 띤, 이 완벽한 인물은. 바로 개항 이후 개화와 문명의 상징으로 등장한 '신사(紳士)'였다. 1914년 발표된 〈신사연구〉는 '신사'란 영어 'gentleman'의 번역어라며 앞에 든 구절로 신사를 정의했다.

바야흐로 '군자'의 시대는 가고 '신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사가 근대에 하늘에서 떨어진 말은 아니었다. 중국 명청대에 지방 관리나 퇴임 관리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며, 조선에서도 관리를 가리키는 '진신지사(縉紳之士)' 또는 '진신사'란 말이 쓰였다고 한다. 원래 '신(紳)'이란 예복에 갖춰 매는 큰 띠를 뜻했기에 신사는 이를 맨 선비를 가리켰다. 그러던 것이 서양 문명이 물밀 듯이 몰려오면서 1895년 일본에서 내부고시에서 남성의 서양식 정장을 일컫는 '양복'이 공식 사용되면서 신사의 상징은 양복으로 옮겨갔다. 조선은 1881년 일본의 선진문물을 시찰하기 위해 파견된 '신사유람단'에서 근대적 개념의 신사가 등장했으니 이때 유람단의 일원이었던 서광범이 양복을 사 입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한데 신사의 외양을 갖추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1934년 잡지 『삼천리』에 실린 '말쑥한 신사 숙녀 만들기'란 기사를 보자. 이 글은 '청년 남녀들의 최신 유행품을 판매하는' 백화점에서 신사 되기에 필요한 용품을 구매할 수 있다면서 양복과 와이셔츠, 넥타이, 지팡이, 구두, 모자에서 시계와 만년필, 머리빗, 포마드, 반지 등 30여 중을 예시했다. 여기 드는 총비용은 400원이 넘었으니 당시 의사 월급이 75원, 은행원이 70원, 신문기자가 50~60원이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신사 꼴을 갖추려면 요즘 돈으로 대략 2,000만 원이 넘게 들었던 셈이다.

뿐이랴. "남자는 모양을 내면 못 쓰는 줄 알지만…남 보기 흉업지 않게 하는 것은 자기의 품위를 높이고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것"이라며 각종 화장품 광고가 쏟아져 바야흐로 '남자도 화장하는 시대'가 닥쳤다. 요즘은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화장하곤 한다는데 100년 전 조선의 젊은이들은 신분 상승을 위해 화장을 했던 것이다. 이래저래 신사 되기란 그만큼 어려웠다.

이는 한국 회화사 관련 논문을 묶은 『예술의 주체』(고연희 엮음, 아트북스)에 실린 김지혜(건국대학교 사학과 강사)의 '신사의 시대'란 흥미로운 글 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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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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