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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④ 친일 프레임의 덫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④ 친일 프레임의 덫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2.2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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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사건 다룬 '그때 그 사람들'의 박정희 정권은 '친일파 합작품' 해석
엔카와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 등장…다큐 영상 왜곡해 유족들에 패소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은 노골적인 역사왜곡 영화다. 유족이 소송까지 제기했다. 법정도 일부 내용에 대해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영화가 온전하게 극장에 걸리지 못한 이유다. 역사를 왜곡한 역사 영화. 우리는 과연 <그때 그 사람들>을 비난해야 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답하기 어렵다. 역사영화에 대한 관점이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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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들이 힘으로 탈취해 만든 정권.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한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정당성이 없다. 국민 반발이 당연하다. 그러자 또 국민을 힘으로 몰아세운다. 위기가 닥치면 비굴해 지는 게 이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영화 속 차 실장이나 양 실장(권병길 분)은 대통령의 목숨이 위급한데 자기들 살기 급급하다. 밥상 밑으로 숨어버린 양 실장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여대생과 가수가 오히려 용감해 보인다. 가수는 대통령에게 총을 겨눈 김 실장을 향해 "쏘지 말라"며 그를 제지한다. 물론 이 또한 '역사왜곡'이다.

■ "태어난 채로 버려진 우리"

'역사 왜곡'이라는 평가는 역사 영화에 질곡(桎梏)과도 같다. 그 한 마디가 영화를 대역 죄인으로 단죄한다. 그렇다면 영화는 역사를 '사실 그대로' 그려야 하는 것일까? "의상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고증을 받았다"는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 역사가는 역사를 사실 그대로 복원하는 것일까? 아니, 그게 가능할까? 역사를 내러티브의 시각에서 접근한 역사가 헤이든 화이트(Heyden White)는 "역사도 픽션"임을 주장했다. "역사의 재현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제 고민에 빠져야 한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역사를 심하게 왜곡했다. 당연히 '대통령'의 유족들이 이의를 제기했고 일부 승소를 했다. 개봉하려면 다큐 영상 3곳을 없애라는 것이었다. 극장에서 영화의 크레딧 시퀀스를 볼 수 없었던 이유다. 법도 인정한 역사 왜곡. 우리는 이 영화를 '나쁜 영화'로 봐야 하는 것일까? 역사를 왜곡한? 하지만 고민이 된다. 이 영화의 '역사 왜곡'에는 장점도 있어서다. 장점? '역사관'이 또렷하다. 역사에 대해 조금도 고민하지 않은 '몰역사적인 역사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또렷한 역사관'으로 무장한 이 영화는, 그래서, 그것이 싫든 좋든, 또 옳든 그르든, 가뭄에 단비처럼 느껴진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 '대통령'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김 실장'. 이때 김 실장은 대통령을 일본 이름 '다카키 마사오'라 부르며 그들의 친일 성격을 강화시킨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 '대통령'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김 실장'. 이때 김 실장은 대통령을 일본 이름 '다카키 마사오'라 부르며 그들의 친일 성격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극장을 찾아 영화를 직접 본 관객이 이 사실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극장에서는 크레딧 시퀀스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또렷한 역사관'은 궁정동 만찬장에서 김 실장이 '대통령'을 향해 외친 일본 이름 '다카키 마사오'와 사라진 크레딧 시퀀스를 하나로 연결시킬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난다. 크레딧 시퀀스는 자우림의 노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배경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 기록 필름을 흘린다. 궁금한 분은 일단 유튜브 영상을 보고 오시면 좋다(https://www.youtube.com/watch?v=a_r3y2tbX9g).

2022년에 보는 1979년 가을의 대통령 장례식 기록 필름은 기괴하다. 사람 키보다 큰 영정 사진 앞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등 세 종교의 수장이 번갈아 가며 진행하는 장례식이다. 당시 내로라하는 사람은 다 모였다. 하지만 그들보다 눈길이 가는 이들이 있다. 평범한 일반 국민이다. 장례 차가 지나가는 도로 옆에서 오열하는 국민. 친부모가 죽었을 때보다 더 슬퍼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그 노래가 흐른다. 포크와 록이 뒤섞인, 어둡고 슬프고, 그리고 절망적인 자우림의 그 노래다.

"폭풍우 치는 추운 밤을 우린 걸었지. 가난한 가슴의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 태어난 채로 버려진 우린 욕망의 배설물. ··· 태양은 다시 떠오르겠지 내일 우린 여기 없을 테니까 ··· 별 하나 없는 새까만 밤에 태어난 우린 다시는 오지 않을 태양의 그림자 속을 서성이네. 우리의 내일은 없을 테니까."

노래 속 '우리'가 누군지는 명확하지 않다. 친일 행각을 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그리고 그 수족에게 총살을 당한 그 수뇌와 그 일당일 수도, 아니면 그들 치하에서 살아온 국민 전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둘 모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러면 어떠랴. 감독의 역사 해석은 바뀌지 않는다. '절망의 역사', '부정의 역사'다. 영화는 '대통령'과 그 정권, 그리고 그들이 만든 역사 모두를 깡그리 부정한다. 친일파들이 세운 역사는 더럽고 추악하고 절망적이라는 얘기와 다름 아니다.

본 영화에서 상영하지 못한 크레딧 시퀀스. 자우림의 노래는 영화의 ‘절망’과 ‘부정’의 역사관을 드러낸다.
본 영화에서 상영하지 못한 크레딧 시퀀스. 자우림의 노래는 영화의 '절망'과 '부정'의 역사관을 드러낸다.

크레딧 시퀀스의 노랫말에서 이 같은 절망과 부정의 역사가 온전하게 느껴진다. 부당하게 정권을 잡은 그들 또는 그 정권 아래 사는 국민, 또는 이 둘 모두는 "태어난 채로 버려진 존재"이며 그저 "욕망의 배설물"일 뿐이다. "별 하나 없는 새까만 밤에 태어난 우리"가 없어져야 비로소 태양이 떠오른다는 것 아닌가. 영화가 보여주는 역사관의 '절망'과 '부정'의 정도는 가혹하리만치 철저하다. 관객 일부는 박수를 칠 테고 일부는 욕할 것이다. 영화는 그것을 바란다. 그 어느 영화보다 '또렷한 역사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두 영화 <클래식>과 <그때 그 사람들>을 통해 매우 기초적이며 간단한 '내러티브' 또는 '프레임' 전략을 알아 봤다. 그 핵심에 '더하기(첨가)'와 '빼기(생략)'가 있다. 일단 '진실'이 확실한 논리를 바탕에 둔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논리를 쌓는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더하거나 뺀다. 교묘하게. 그게 '전략'이다. 그럼으로써 감독은 관객의 시선을 자기 의도대로 끌고 간다. 어떤 건 보게 하고 어떤 건 못 보게 한다. 예수 말씀을 떠올려 보라. 누구의 눈은 가리고 누구의 눈은 뜨게 하지 않는가! 물론 다른 '전략들'도 있을 것이다. '줄이기(축소)'나 '늘리기(과장)' 등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클래식>에서 감독은 준하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뺐다. 관객의 시선을 준하와 주희, 그리고 그들의 자녀 상민과 지혜의 사랑에 고착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영화는 '비상식'과 '비현실'이 됐다. 하지만 그 덕에 끝까지 스토리 라인을 지켜내며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반면 <그때 그 사람들>에서 감독은 역사적 사실의 토대 위에 '친일(親日)'을 더했다. 일본 엔카와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 등이 그 '전략'을 구성하는 항목들이다. 이로써 감독은 '대통령'과 그 세력의 친일성과 저속성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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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이코노텔링 대기자❙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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