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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③현실 왜곡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③현실 왜곡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2.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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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은 눈물 짜내려 관객의 현실적 시각 무시해
10.26 실제역사를 다룬 '그때 그 사람들'은 궁정동 '만찬상황' 각색

'내러티브' 연구의 역사는 오래다. 2000년도 더 된다. 반면 '프레임'연구의 역사는 짧다. 기껏해야 1950년대다. 초기에는 언어학이나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등 순수 학문 분과에서 중립적 개념으로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프레임' 개념은 '시선의 유도'나 '조작', '작위(作爲)의 성격이 강하다. 정치와 미디어 분야에서 이 개념을 쓰면서부터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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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곽재용 감독이 발표한 <클래식>은 우리나라 멜로 영화의, 말 그대로, '클래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믄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사랑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핵심 스토리는 이렇다. 남주인공 준하(조승우 분)는 사랑하는 주희(손예진 분)를 떠나 전장을 향한다. 그리고 주희가 준 목걸이를 줍다 포탄에 맞아 시력을 잃는다. 그 후 준하는 다른 여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다 일찍 세상을 떠난다. 십 수 년 뒤 준하의 아들 상민(조인성 분)과 주희의 딸 지혜(손예진 분)는 같은 대학에 다닌다. 그리고 이들은 운명처럼 서로에 이끌려 사랑을 맺는다는 이야기다.

영화에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명장면이 여럿 있다. 그중에는 전장으로 향하는 준하가 그를 찾아온 주희를 애써 외면하는 장면, 시력을 잃은 뒤 준하가 주희를 처음 만나는 장면, 주희가 보는 앞에서 그들의 추억이 담겨 있는 강물에 준하의 유골을 뿌리는 장면 등이 있다. 그야말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게다가 음악이 압권이다. 슬픔을 배가시킨다. 앞을 보지 못하는 준하가 주희를 만나는 장면에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준하의 '산골(散骨, 유골뿌리기)' 장면에는 한상민의 '사랑하면 할수록'이 배경 음악으로 깔린다.

‘생략’의 프레임 전략을 쓴 영화 '클래식'은 준하-주희, 상민-지혜의 사랑 외 스토리는 모두 버렸다.
'생략'의 프레임 전략을 쓴 영화 '클래식'은 준하-주희, 상민-지혜의 사랑 외 스토리는 모두 버렸다.

누구나 슬플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 '명장면'에서 오히려 가슴 답답함을 느낀다. 준하와 주희의 맺지 못한 사랑 때문이 아니다. 도대체 준하의 아내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남편이 결혼 전 사랑했던 여인을 그토록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알까? 그 여인 때문에 남편이 눈을 잃었다는 사실도 알까? 그 여인에게 남편의 유해를 넘겨준 이유는 뭘까? 그 여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다. 준하에 대한 그의 사랑 역시 지고지순했을 것이다. 그런 아내를 두고 죽어서까지 결혼 전 여인을 찾다니···.

상식선에서 보면, 준하의 행위는 그의 아내에 대한 명백한 배신행위다. 그의 아내나 아들 없이 옛 애인과 그녀의 딸만 앞두고 산골(散骨) 예식을 치른다는 것은 비상식을 넘어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에 대한 어떠한 해석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그뿐 아니다. 영화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준하는 고이 간직해 온 자신의 일기와 주희의 편지를 주희에게 전해 달라 유언을 남긴다. 영화는 '현실'과 '상식'보다 '비현실'과 '비상식'을 택했던 것이다.

■ 영화 <클래식> ··· "사랑만 봐!"

왤까? 답은 간단하다. 한 마디로 '닥사', 즉 '닥치고 사랑'이다. 영화는 오직 '준하-주희'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상민-지혜'의 사랑만 볼 것을 강요한다. 카메라 포커스는 이 두 커플에게만 '인-앤-아웃(in-and out)'한다. 다른 것은 모두 '스토리 밖'에 있다. 영화는, 준하 부부에 대한 얘기는 철저하게 버렸다. 어떻게 만났는지, 얼마나 사귀었는지, 사이는 좋은지, 예쁜지 안 예쁜지, 생계는 어떻게 꾸려 가는지···. 준하의 아내와 그들 부부에 대한 정보는 아예 없다. 우리는 이를 통해 '내러티브' 또는 '프레임'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전략'이다. 감독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진부한 '내러티브' 또는 '프레임'을 넘어, '지고지순한 사랑은 대를 잇는다'는 '내러티브' 또는 '프레임'을 짠 뒤 이를 위해 다른 모든 이야기는 스크린 밖으로 걷어차 버린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앞 못 보는 사람이 할 일은 많지 않다. 만일 영화를 '현실적' '상식적'으로 접근하겠다며 준하의 곤궁한 생활을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스토리 라인이 순식간에 붕괴되며 '명작' 아닌 '망작'이 됐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영화 <클래식>의 '내러티브' 또는 '프레임' 전략은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역사를 다룬 영화에서도 이 같은 내러티브ㆍ프레임 전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임상수 감독이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사건을 다룬 2005년 개봉작 <그때 그 사람들>을 예로 들어 보자. 영화는, 한 마디로, 특이하다. 모두가 아는, 실제 역사 속 사건을 대놓고 바꿔놓았다. 그야말로 '역사왜곡'이다. 법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존 인물의 연기를 맡은 캐릭터들은 이름을 바꿔 쓰거나 성씨만 쓰거나 직함만 쓴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이름 없는 영화 속 캐릭터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영화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궁정동 '최후의 만찬' 장면을 보자. 임 감독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심수봉 가수 대신 김윤아 가수를 등장시켜 일본 엔카(演歌)를 부르게 한다. 노래는 한국계 일본 가수 미야코 하루미(都はるみ)가 1975년 발표한 '북쪽 료칸에서(北の宿から)'다. 노래가 끝나고 한창 술이 돌 무렵 김 실장(백윤식 분)은 대통령(송재호 분)과 차 실장(정원중 분)을 쏜다. 차 실장은 팔에 한 방, 대통령은 가슴에 한 방이다. 그러나 둘 다 죽지는 않는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첨가'라는 프레임 전략을 써 박정희 정권을 '친일정권'으로 부각시킨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첨가'라는 프레임 전략을 써 박정희 정권을 '친일정권'으로 부각시킨다.

이윽고 김 실장은 차 실장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해 그를 살해한다. 그리고 천천히 대통령에게로 다가간다. 대통령은 두 여인의 부축으로 간신히 자리에 앉아 있는 상태. 이제 영화는 클라이막스로 향한다. 대통령의 머리에 총을 겨눈 김 실장. 뜻밖에도 대통령의 일본 이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를 외친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그에게 전한다. 이 역시 일본말이다. "누구나 죽으면 썩은 내 나는 쓰레기 같은 거야!" 이 말을 끝내고 김 실장은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이로써 대통령의 생은 끝난다.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궁정동 최후의 만찬장에서는 일본어가 오간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장면인 탓에 이 사건은 김재규 재판 일지에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임 감독은 이를 몰랐을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다. 왤까? 우리가 이 대목에서 봐야 할 것이 더 있다. 일본어가 등장하는 신은 여기 한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 실장과 몇몇 인물들이 영화 곳곳에서 일본어로 말을 한다. 그리고 '사무라이(侍) 정신' 등 일본 문화를 강조한다. 이 또한 역사왜곡이다. 하지만 확실한 극적 효과가 있다. 박정희와 그 주변인들이 일본에 깊게 물든 '친일파'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노골적인 역사 왜곡 영화. 우리는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역사를 왜곡했으니 폐기처분하는 게 마땅하다?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역사 왜곡 영화는 없애야 한다면 지구상 영화 절반은 없애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박수를 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역사를 왜곡해도 재미만 있으면 괜찮다는 얘기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에 대한 답은 일단 뒤로 미루자. 찰리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리뷰한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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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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