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5:25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보잘 것 없는 백성'이라니?
[김성희의 역사갈피]'보잘 것 없는 백성'이라니?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2.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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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신종 재위 때 개혁파 신당 이끌던 왕안석의 좌절
선생이 서서 황제를 가르치는 '관례' 깨려다 벽에 부닥쳐
치국 놓고 사대부와 백성 비교하는 '국민 개돼지론' 등장
송나라에서는 개국 초부터 황제에게 제왕학 교육을 하는 경연 때 황제는 앉아서 듣고 교사는 서서 강의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를 두고 1068년 왕안석(그림(왼쪽))은 유가에서는 스승을 존중해 왔으니 선생이 앉아서 강의를 하는 것이 옳다고 건의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송나라에서는 개국 초부터 황제에게 제왕학 교육을 하는 경연 때 황제는 앉아서 듣고 교사는 서서 강의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를 두고 1068년 왕안석(그림(왼쪽))은 유가에서는 스승을 존중해 왔으니 선생이 앉아서 강의를 하는 것이 옳다고 건의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중국사에서 개혁과 반개혁이 극명하게 부딪친 때는 11세기 송나라 7대 황제 신종 시절이다. 요와 서하의 위협에 나라의 운명이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놓여 있을 때 왕안석을 중심으로 한 '신당'은 부국강병을 위해 '변법운동'이란 불린 강력한 개혁조치를 시행했다. 춘궁기에 농민들에게 저리로 대출해주었다가 수확기에 갚도록 한 청묘법, 농민을 주축으로 한 상비군제도을 위한 보갑법, 모든 성인 남자에 국가 노역 의무를 부과한 면역법 등이 대표적이다.

한데 사마광을 중심으로 한 '구당'의 사대부들은 이에 극렬 반대했다. 변화를 두려워 한 일종의 본능적 반응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했기 때문이었다. 청묘법은 고리대금업을 통해 빈농의 토지를 합병할 수 있는 길을 막았고, 그간 국가 노역을 면제받았던 사대부들도 평민과 똑같이 노동을 하라는 면역법이 그랬다.

그렇다고 '구당'이 대놓고 자기들 기득권을 해치지 말라고 주장하는 멍청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다. 이들은 '조상의 법도'를 지킨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이를테면 송나라에서는 개국 초부터 황제에게 제왕학 교육을 하는 경연 때 황제는 앉아서 듣고 교사는 서서 강의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를 두고 1068년 왕안석은 유가에서는 스승을 존중해 왔으니 선생이 앉아서 강의를 하는 것이 옳다고 건의했다.

이에 대신 유빈은 선생이 서서 강의하는 것은 조상이 정한 법도로 50년 넘게 시행해 왔으니 절대 바꿀 수 없다고 반론을 폈다. 다른 대신 여회는 한 걸음 더 나갔다. "황제의 존엄을 희생하고 선생의 존엄을 과시하려 했으니 이는 상하의 예를 모르는 것이며 군신 간의 분수도 모르는 것"이라며 왕안석을 엄벌에 처하라고 주청했다.

이런 사소한 문제로도 부딪쳤으니 기득권을 건드리는 변법운동을 둘러싼 다툼은 그야말로 벼슬자리와 생명을 건 투쟁이었을 수밖에. 여기서 재미난 일화를 전한다.

하루는 황제 신종이 구당의 문언박에게 백성들이 모두 개혁을 찬성한다고 말하자 그는 즉각 반문했다. "폐하께서는 사대부들을 기용하여 나라를 다스리십니까, 아니면 보잘 것 없는 백성을 데리고 나라를 다스리십니까?"하고.

타이완의 반체제 지식인 백양이 쓴 『맨얼굴의 중국사』(창해)에서 이 대목을 보고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21세기 한국의 몇몇 '높으신 분들'의 발언이 떠올랐다. 아울러 왕안석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그에게 개혁 반대파인 '구당'의 일부라도 중앙 정부에서 내칠 권한이 없었다는 점이란 지은이의 지적도. 아마도 왕안석이 그랬다면 그걸 '정치보복'이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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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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